나이키 신발 제조사 '창신', 계열사 부당지원…"경영권 승계 목적"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2020.10.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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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AP/뉴시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샬럿에 위치한 나이키 건물의 모습. 2020.3.2.[샬럿=AP/뉴시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샬럿에 위치한 나이키 건물의 모습. 2020.3.2.


나이키 신발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조하는 창신INC가 해외생산법인을 동원해 오너 자녀의 회사를 부당 지원한 사실이 밝혀졌다. 본사 지시에 따라 해외생산법인은 오너 자녀의 회사에 과도하게 높은 수수료를 지불했는데, 이런 행위는 결국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었다.



해외생산법인에 “수수료 올려라”
/사진=창신 홈페이지/사진=창신 홈페이지
공정거래위원회는 창신그룹 본사인 창신ICN와 3개 해외생산법인, 창신그룹 회장의 자녀가 소유한 서흥에 과징금 총 385억원을 부과하고, 창신INC는 검찰에 고발한다고 13일 밝혔다.



창신INC는 연간 매출액이 1조원 이상인 국내 2위 신발 제조업체다. 미국 나이키로부터 신발 제조를 위탁받아 해외생산법인(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공장)에 물량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한다. 이번 사건은 신발 제조 과정에 서흥이라는 자재 구매 대행업체가 끼어들면서 발생했다.

서흥은 2004년 정환일 창신그룹 회장 자녀들을 최대주주(지분율 99%)로 설립된 자재 구매대행 회사다. 공정위에 따르면 다른 주요 신발 제조사들은 보통 자재 구매대행을 그룹 본사가 수행하는데, 창신그룹만 서흥이라는 오너 자녀의 회사를 중간에 끼워넣었다.

창신INC의 부당지원은 2013년 본격화된다. 이 회사는 2013년 5월 3개 해외생산법인에 서흥에 지급하는 신발 자재 구매대행 수수료 인상을 지시했다. 해외생산법인들은 창신INC의 생산기지 역할에 불과해 이런 지시를 거절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2013년 6월부터 3년 동안 종전보다 약 7%포인트 인상된 수수료율을 적용, 이 기간 서흥에 수수료로 총 4588만달러(534억원)를 지급했다. 공정위 산정 결과 이는 경쟁사와 비교한 정상가격보다 2628만달러(305억원) 많은 수준이었다. 이처럼 과도하게 지급된 305억원은 해당 기간 서흥의 영업이익(687억원)의 44%에 달하는 금액이다.


정진욱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해당 기간 서흥은 구매대행 관련 역할 변화나 추가 비용 투입 등 수수료를 인상해 받을 사유가 되는 어떤 변경도 없었다”며 “오히려 해외계열사들은 완전자본잠식, 영업이익 적자 등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수수료를 서흥에게 지급해야 했다”고 말했다.

목적은 ‘경영권 승계’
공정거래위원회/사진=유선일 기자공정거래위원회/사진=유선일 기자
창신INC의 부당지원은 결국 ‘경영권 승계’가 목적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흥은 2011년 6월부터 창신INC의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왔는데, 이는 향후 창신INC와 서흥 간 합병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합병을 통해 정환일 회장의 자녀가 창신INC 최대주주로 등극, 손쉽게 경영권을 물려받는다는 계획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창신INC는 실제로 2018년 서흥과 합병을 검토한 바 있다.

부당지원이 이뤄진 것은 2012년 서흥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창신INC 주식 매입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당지원을 통해 서흥은 위기를 무사히 넘겼고, 2015년 4월에는 창신INC 주식을 대량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공정위는 창신그룹 사례가 종전 문제로 불거졌던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 방식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우선 △총수일가가 대부분의 지분을 가진 계열사를 설립하고 △부당지원 등으로 해당 계열사 가치를 극대화한 후 △해당 계열사를 그룹 내 핵심계열사와 합병하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이다.

정 국장은 “정환일 회장 자녀가 창신INC의 최대주주가 된다면 5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서흥을 통해 연매출 1조원이 넘는 우량회사의 경영권을 얻게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이 ‘중견기업의 부당지원’ 적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학계, 시민사회의 관심을 많이 받는 대기업과 비교해, 중견기업은 내·외부 감시, 자정기능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정 국장은 “기업집단 규모와 관계없는 공정위의 엄정한 법 집행 의지를 보여준 사례”라며 “특정 시장에서 높은 지배력을 보유한 중견기업집단의 부당지원행위를 지속 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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