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盧정부 독려한 '지주사'…삼성이 3년 전 포기한 까닭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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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제 일방통행 기로에 선 재계]2-①공정거래법 개정안 논란

편집자주 정부와 정치권이 '공정경제' 명분을 앞세워 그간 기업이 반대해온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강행에 나섰다. 재계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개정안의 독소조항을 점검하고 대안과 함께 기업 활성화를 위한 추가 입법사항을 찾아본다.

DJ·盧정부 독려한 '지주사'…삼성이 3년 전 포기한 까닭


"지주사 전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건의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중략) 지주사로 전환하지 않기로 했다. 향후에도 지주사 전환 계획이 없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두고 지주사 역차별 논란이 커지면서 3년 전 삼성전자 (80,800원 ▲1,000 +1.25%)가 지주사 전환 백지화를 발표할 때 내놓은 입장문이 다시 회자된다. 재계와 학계에서 주목하는 문구는 '지주사 전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건의 법 개정 추진'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규제강화 움직임이 법안 시행 전에 이미 기업의 지주사 전환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 사례다.

정부가 그동안 '투명한 지배구조'를 이유로 대기업의 지주사 체제 전환을 장려해놓고 절대 과반의 국회 의석수를 앞세워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정책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40년만의 첫 개정…사회적 비용 외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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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1980년 법 제정 이후 전부개정'이라고 부를 만큼 대대적인 개편 계획이 담겼다. 지주사가 의무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 지분율을 상장사의 경우 20%에서 30%로, 비상장사는 40%에서 50%로 높이는 방안이 골자다.

사익편취, 이른바 내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범위를 총수 일가 보유지분이 30% 이상인 회사에서 20% 이상인 회사로 넓히고 현재 공정위가 전담하는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는 방안도 담겼다.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도 추진한다.

3년 전 삼성전자의 이사회 결정에서 드러나듯 재계에서는 지주사의 매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규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아직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은 기업 입장에서는 높아지는 문턱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지주사 전환시 의무보유 지분율 상향에 따른 자금 부담이 지난해 기준 34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금융그룹 제외·상장사 한정) 가운데 16개 비지주사 기업집단만 합해도 31조원에 달한다. 이 비용을 전부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24만4000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규모다.

"지주사 독려할 땐 언제고"…기업 숨통 턱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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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 제도는 대기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등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한 최선의 방편으로 김대중 정부가 허용하고 노무현 정부가 장려한 제도다. 지배구조가 모범적이라고 평가받는 LG (87,600원 ▼1,600 -1.79%)그룹을 비롯해 SK (182,600원 ▼2,600 -1.40%)·롯데·GS (48,500원 ▼1,150 -2.32%)·현대중공업·한진 (22,950원 ▼600 -2.55%)·CJ (122,200원 ▲6,200 +5.34%)·LS (114,200원 ▼1,400 -1.21%)·효성 (62,300원 ▲4,800 +8.35%) 등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사 전환을 백지화한 삼성그룹을 비롯해 현대기아차그룹 등 지난해 기준으로 자산총액 5조원 이상 59개 대기업집단 가운데 36개는 지주사 전환 전이다.

4대 그룹 한 인사는 "정부가 말로는 지주사 체제 전환을 독려하면서 실제 규제는 지주사 전환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강화하면 어느 기업이 선뜻 지주사 전환을 결정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다른 그룹 인사는 "당근을 줘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지주사로 전환하기 쉽지 않은 기업이 수두룩한데 규제를 늘리는 것은 기업의 숨통을 조르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고발 남발 우려…대기업보다 중기가 더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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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해선 중소기업에서 더 큰 우려가 나온다. 중소기업 형편상 법무팀이나 담당 직원을 따로 두기 어려운 만큼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회사 존립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염려가 크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은 법무팀이나 법률 전문가가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전문인력을 갖추지 못해 수사가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려면 중소기업에 법률 전문가를 지원할 수 있는 안전망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국회 당시 논의에서도 이런 문제가 지적됐다. 2018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속고발제를 폐지할 경우 대응력이 약한 중소기업에 더 많은 형사처벌이 이뤄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경총 관계자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무분별한 고소·고발, 공정위와 검찰의 중복조사 등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비용 증가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내부거래 기준 다듬어야…"이대론 대주주 경영 포기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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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쟁 보장과 부의 편중화 방지라는 측면에서 내부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재계에서도 원칙적으로 공감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부당한 내부거래의 모호한 기준을 정부가 보다 구체화한 데 대해서도 뒤늦게나마 제도 개선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부당 내부거래의 기준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나 '상당한' 규모의 거래 등으로 규정한 것을 두고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정상가격과 차이가 7%를 넘거나 당사자간 연간 거래총액이 200억원 이상이고 매출의 12%를 넘어서는 거래로 구체화했다.

재계는 다만 지주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일반기업보다 높아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정위의 지적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지주사는 내부 자원을 공유하는 등 내부거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만큼 지주사 체제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예외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이 현행 209개사에서 595개사로 늘어난다. 삼성생명·현대글로비스·KCC건설·넷마블·GS건설·㈜LG·SK㈜ 등이 새로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안은 대주주의 보유지분은 낮추게 하면서 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을 높이기 위해 돈을 더 쓰라고 하는 셈"이라며 "대주주 중심의 경영을 포기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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