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효도폰이래" 알뜰폰 찾는 2030

머니투데이 김수현 기자 2020.10.1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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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무시 못하죠" 젊은층 유입에 알뜰폰 시장 폭풍 성장 …시장 안에선 '빈익빈부익부' 뚜렷

"누가 효도폰이래" 알뜰폰 찾는 2030


주춤하던 알뜰폰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 8월 정부의 알뜰폰 활성화 정책 발표 이후 결합할인과 제휴카드 할인 등이 담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쏟아지는 등 알뜰폰 사업자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는 중이다. 하지만 신규 가입자들이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 계열 알뜰폰으로 쏠리면서 업계 내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지난달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에서 알뜰폰으로 넘어온 순증 가입자수는 1만2433명으로 올들어 가장 많았다. 알뜰폰으로의 번호 이동자는 6월 5138명, 7월 6967명, 8월 9909명에 이어 4개월 연속 광폭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통신사들의 대대적인 5G 마케팅 공세로 위축됐던 알뜰폰 시장이 활력을 띠고 있는 것. 코로나19로 저렴한 알뜰폰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었고, 때마침 정부의 알뜰폰 활성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가입자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누가 효도폰이래" 알뜰폰 찾는 2030
속내를 들여다봐도 의미 있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 그간 고령층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알뜰폰은 최근 '가성비'를 따지는 젊은층의 선택지로도 자리잡았다. 주변 편의점에서 유심을 구입해 대리점 방문 없이 직접 알뜰폰 홈페이지에 접속해 개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온라인 서비스 이용에 친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셀프 개통'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시작한 KT엠모바일에 따르면 지난 8월 '알뜰폰 셀프개통'을 진행한 소비자 가운데 2030세대 비율은 49.0%에 이른다.



지난 4월을 기점으로 알뜰폰 가입자가 선불, 3G 요금제 중심에서 후불, LTE요금제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지난 7월말 기준 과기정통부의 알뜰폰 가입자 통계를 보면, 3G 요금제 가입자는 317만9106명, LTE 요금제 가입자는 411만5958명이다. 이 중 선불요금제 가입자는 305만3085명, 후불요금제 가입자는 333만6223명으로 집계됐다.

알뜰폰 시장이 회복 기미를 보이자 최근 이통사와 알뜰폰 사업자들도 선제적으로 상품 강화에 나서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최근 통신 3사 중 최초로 자사 고객만 받을 수 있던 '가족결합(휴대전화+인터넷+인터넷TV)'을 자사 알뜰폰 고객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LG유플러스 자회사 미디어로그의 알뜰폰 브랜드 U+알뜰모바일은 지난달부터 네이버페이 포인트를 적립해 사용이 가능한 '10% 적립 요금제'도 출시했다.

KB국민은행 알뜰폰 리브엠(Liiv M)은 지난달 군인 전용 요금제인 '나라사랑 LTE 요금제'를 내놨다. 현역병, 예비역, 입영대기자 등 나라사랑카드 발급 대상자를 대상으로 데이터(월 71GB·소진 이후 3Mbps 무제한), 음성통화, 문자서비스 모두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2만9900원 요금제다. 또 KB국민카드와 연계하면 월 2200원도 추가할인 받을 수 있다.


"알뜰폰 시장, 중소사업자 버티기 힘든 구조"
/사진=알뜰폰 허브사이트/사진=알뜰폰 허브사이트
다만 이처럼 경쟁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전체 54개 알뜰폰 사업자 중 이통 자회사들의 가입자 점유율은 지난 6월 기준 37.4%다.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따지면 이들 비중이 전체 알뜰폰 시장의 65.1%에 육박한다. 해가 거듭할수록 이 비율은 늘고 있다. 한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알뜰폰 시장은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저렴한 요금제로 경쟁해 중소사업자가 도태될 수밖에 없는 사업 구조"라고 호소했다.

우선 알뜰폰 업체는 이통사의 망을 빌려쓰기 때문에 이통사에 망 도매대가를 지불한다. 종량제 방식의 경우 음성서비스는 분당 18.43원, 데이터는 1MB당 2.95원을 지불한다. 업계 관계자는 "음성 100분, 문자 100건, 데이터 500MB를 제공하는 4400원짜리 요금제 하나를 팔면 기타 전산 대행비와 망 도매대가가 5193원이 든다. 고객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남김없이 다 썼을 때를 가정한 계산이지만 기본적으로 1000원 가량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데이터 비중이 큰 LTE 대용량 요금제와 5G 요금제는 요금제 판매 가격의 66~75%가 이동통신사에 돌아간다.

여기에다 각종 판매창구에 판매수수료도 지불한다. 우체국 입점 업체의 수수료는 접수 1건당 2만5000원이다. 여기에 유심발급, 기기변경 등에 들어가는 업무 지원 수수료도 낸다. 월 3300원짜리 요금제를 팔든 1만원짜리 요금제를 팔든 똑같이 접수 1건당 최소 2만5000원을 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우체국에서 팔리는 요금제가 대체로 저렴한 요금제이다 보니 한 이용자가 가입을 3년 정도는 계속 유지해야 수익이 겨우 발생한다"고 전했다.

최근 개편한 알뜰폰 허브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초기 입점 수수료 100만원에 고정 분담금 매달 50만원, 접수 1건당 1만원을 수수료로 낸다. 여기서 1만원의 건당 수수료를 내는 기준은 '개통 건수'가 아니라 '접수 건수'다. 업계 관계자는 "접수가 100건 들어오면 절반 가량인 50건 정도는 개통을 취소한다"며 "개통을 하지 않은 건에 대해서도 1만원의 수수료를 내야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알뜰폰 사업은 기본적으로 상품 자체의 수익성으로 먹고 사는 모델이 아니라 이통사의 판매 장려금으로 유지되는 구조"라며 "당연히 판매장려금을 많이 받는 이통사 자회사에선 저렴한 요금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원가 이하로 팔아 중소사업자들은 경쟁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과연 진짜 알뜰폰 활성화라고 봐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통3사 경쟁 확장판 vs 자연스런 현상"
"누가 효도폰이래" 알뜰폰 찾는 2030
알뜰폰을 투입해 고착화된 이통3사간 경쟁구도를 흔들어보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이통사 영향력이 알뜰폰 시장으로 확장되는 결과만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2014년 정부는 '이통자회사의 점유율 50% 금지' 및 '이통사 자회사 직접 지원 금지' 등 등록조건을 걸고 이통사의 알뜰폰 진출을 허용했다. 그러나 현재 이통사들이 이 같은 '룰'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 중소업체의 불만이다. 우회적인 자회사에 대한 자금 지원으로 요금 경쟁력 차이가 발생, 공정한 경쟁 체제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너무 과열돼서 요금 가격은 계속 낮추고 있고 수익성은 악화하는데, 이를 이통사 리베이트로 채워야만 연명할 수 있는 환경인 건 거시적으로 봤을 때 자승자박인 셈"이라며 "정부가 활성화 정책은 물론,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정책도 내세워 중소 업체들의 숨통을 틔워줘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알뜰폰 시장이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선 이 같은 분위기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란 시각도 있다. 알뜰폰 시장이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자금력과 사업 운영력을 갖춘 대기업 위주로 자연스럽게 재편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오히려 KB국민은행 같은 대기업 계열사들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해 판을 흔들어놓는 '메기' 역할을 해줘야만 경쟁이 더욱 활성화돼 국민의 통신비 절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불공정 행위는 철저히 견제하되, 시장 활성화를 위한 사업 협력은 적극 모색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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