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회사에 새로 온 인턴은 '58년생 개띠'

머니투데이 이민하 기자 2020.10.0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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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썸레이 등 스타트업, 경험·지식 갖춘 '멘토+인턴' 영입...성장 촉진제 역할 톡톡

김세훈 대표(앞줄 가운데)와 최준영 팀장(앞줄 오른쪽 첫번째) 등 어썸레이 임직원들이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제공=어썸레이김세훈 대표(앞줄 가운데)와 최준영 팀장(앞줄 오른쪽 첫번째) 등 어썸레이 임직원들이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제공=어썸레이


#최준영 씨는 1958년생 개띠다. 지난해 8월 스타트업 '어썸레이'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자식뻘인 20대 청년들과 같이 3개월 동안 인턴 기간을 거쳤다. 입사는 인턴이었지만, 생산 부문에서는 경영진의 멘토 역할을 맡았다. 그는 사실 부품 생산업계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이다. 한때는 한국과 중국에서 생산인력만 100명이 넘는 중소기업을 직접 경영했다. 제조업 현장 경험이 없었던 어썸레이는 최 팀장을 영입하면서 시제품부터 양산까지 실제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지난해 말 첫 매출도 올렸다.

현재 공기살균장비 개발팀장으로 생산 총괄을 맡고 있는 최 팀장은 "잔디나 슬랙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도구를 사용한 새로운 업무방식이나 우리 때랑은 완전히 달라진 회사 분위기, 소통 방법을 인턴처럼 처음부터 배우고 있다"며 "생산 관련 업무만은 '내가 책임진다'라는 생각으로 전문성을 더 높이고, 경영진에게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 맞춰 업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방사선 취급감독자(SRI) 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이다.



'멘턴'은 인턴과 멘토를 합친 신조어다.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 니로처럼 신세대의 업무 방식을 배우면서 젊은 창업자나 임직원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중장년 베테랑들이다. 에어비앤비의 멘턴 '칩 콘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글로벌 부티크 호텔 브랜드 '주아 드 비브르 호스피탈리티'를 창업한 뒤 24년간 호텔업계 최고경영자(CEO)로 근무하다가 52세에 은퇴했다. 이후 에어비앤비에 인턴으로 재입사, 고문 역할을 맡아 200개국 호스트들에게 접객 방법을 전수했다.

인턴 겸 멘토 '멘턴'"스타트업 성장 촉진제"
사진=네이버 영화 홈페이지사진=네이버 영화 홈페이지
국내에서도 중장년 멘턴을 찾는 스타트업들이 늘고 있다. 경험과 지식을 갖춘 멘턴이 임직원 대부분이 20~30대인 청년 스타트업의 길라잡이 같은 존재로 떠오르면서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차세대 X-선 발생장치를 개발하는 어썸레이에는 최 팀장을 포함해 전체 직원 23명 중 50~60대 중장년 직원이 4명이 정규·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중장년 인력의 현장 경험과 실무 지식이 회사의 경험치를 몇 단계 압축 성장하는 '촉진제' 같은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권정우 어썸레이 부대표는 "회사가 소재부터 부품, 장비까지 모두 개발·생산하는데 연구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실제 생산이나 실무 과정 등 사실상 현장에서 필요한 경험들이 부족했다"며 "중장년 멘턴들의 현장 경험을 더한 덕에 단시간 내에 현재 단계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여명 안팎의 임직원 대부분이 20~30대인 스타트업 '알고케어'나 '더트라이브' 등도 중장년 직원을 1~2명씩 채용 중이다. 각각 대기업과 금융권 등에서 20~30년간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해당 분야의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개인별 맞춤형 영양제를 개발·생산하는 알고케어는 대기업과 벤처 창업 경험이 풍부한 중장년 멘턴을 영입했다. 미세제형 생산과 시험, 양산 전 과정의 조언을 받고 있다. 중고차 구독서비스를 운영하는 더트라이브도 비슷하다. 중고차 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설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가 JP모건 등 국내외 금융권에서 잔뼈가 굵은 펀드매니저 출신 김종식 씨를 멘턴으로 영입, 현재 구독서비스를 완성했다.

중장년 인력을 고용한 스타트업은 혹시 모를 조직 내 갈등을 막는 데 신경쓰는 모습이다. 전민수 더트라이브 대표는 "중장년 인력은 전문 분야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젊은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수용하려는 유연성이 돋보인다"며 "그럼에도 직원간 세대간 차이로 부딪히는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에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창업·보육기관도 늘어난 중장년 인력 '재취업' 프로그램 내놔
우리회사에 새로 온 인턴은 '58년생 개띠'
국내 창업 보육·지원 기관에서도 멘턴 교육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내놨다. 인구학적인 측면에서도 중장년의 경제활동이 중요해지고 있어서다. 2017년 한국은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14%가 넘는다. 2025년이면 고령인구 비율이 20%가 넘어 ‘초고령사회’로 들어설 전망이다. 청년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은행권 청년창업재단(디캠프)는 이달부터 삼성멀티캠퍼스와 중장년 인력의 역량과 경험을 스타트업 성장으로 연결하는 멘턴 육성 프로그램 '40플러스 청년을 위한 멘턴살롱'을 운영할 예정이다. 전직 지원 의무화 대상인 40세 이상이 교육 대상이다. 스타트업계 관련 교육부터 채용 연계까지 '올인원 패키지' 방식이다.

김홍일 디캠프 센터장은 "중장년 인력은 성장 단계의 스타트업한테 경험치를 안정적으로 쌓게 해주는 부스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세대간 간격을 좁힐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실제로 스타트업과 중장년 인력간 연결이 가능한 다양한 시도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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