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수술·무릎에 난 12개의 구멍, 그래도 최석기가 웃는 이유는

뉴스1 제공 2020.09.30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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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상의 발리톡] "지금 뛸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2018-19시즌 방출 뒤 우리카드 입단, 주전으로 재도약

(인천=뉴스1) 이재상 기자
4차례 무릎 수술을 이겨낸 우리카드 센터 최석기. (한국배구연맹 제공) © 뉴스14차례 무릎 수술을 이겨낸 우리카드 센터 최석기. (한국배구연맹 제공) © 뉴스1


(인천=뉴스1) 이재상 기자 = 4번의 왼쪽 무릎 수술. "왜 그렇게까지 해서 뛰려고 하느냐"는 주위의 안타까운 목소리에도 우리카드의 센터 최석기(34)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버티고 또 버텼고' 당당히 우리카드의 주전 센터로 2019-20시즌 V리그 속공 2위, 블로킹 8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8-09시즌 남자부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은 최석기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석기의 왼 무릎에는 무수히 많은 수술 자국이 있다.

최근 우리카드 훈련장인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만난 최석기는 "4차례 수술을 했고, 무릎에 구멍만 12개를 뚫었다"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평소에 웃는 얼굴인 최석기였지만 무수히 많은 시련 이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 4번의 수술, 최석기 사전에 "포기란 없다"


최석기는 스스로를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1986년생인 최석기의 동기들은 라인업이 화려하다. 그는 "문성민, 신영석(현대캐피탈), 진상헌(OK저축은행), 박상하(삼성화재), 김홍정(KB손해보험) 등 동기들이 지금도 각 팀에서 주축 선수로 뛰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배구를 해왔다.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배구하는 게 어디냐"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최석기는 프로에 온 뒤 시련을 겪었다. 2008년부터 한전에서 뛰었던 그는 2011년 1월 처음 무릎에 칼을 댔다. 이후 병원의 오진 등으로 인해 3개월 이상의 시간을 날렸다.

최석기의 왼 무릎에 남아있는 선명한 수술자국. © 뉴스1최석기의 왼 무릎에 남아있는 선명한 수술자국. © 뉴스1
최석기는 "코보컵에서 처음 왼 무릎을 다치고 큰 문제가 없다고 해서 아픈 것을 참으며 리그 경기에 나갔다. 그런데 1세트를 막 뛰고 2세트에 나가는데 무릎이 구부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병원에 갔더니 십자인대 완파에 내·외측인대 및 후방십자인대가 50% 이상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무릎이 작살 났더라"고 표현한 최석기는 그날의 충격이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의사 선생님이 이 무릎으로 걸어 다녔던 것이냐고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곧바로 이튿날 수술대에 올랐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최석기는 2011년에 2차례 더 왼 무릎 수술을 받았다. 그는 "3번째 수술을 받을 때는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하반신 마취가 힘들어서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때 무릎 수술을 여러 차례 받은 경험이 있는 석진욱 OK저축은행 감독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계속된 수술과 반복되는 재활로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그의 손을 잡아준 것은 지금의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이었다.

2014년 당시 한전 사령탑이었던 신 감독은 "충분한 시간을 줄 테니 조바심 내지 말고 충분히 재활하라"고 이야기 했다. 덕분에 러닝 등 무릎에 과부하가 되는 것들을 빼고 천천히 재활에 매진할 수 있었다.

◇ 2014년 12월 3일, '시몬 킬러' 최석기의 인생경기

2014년 12월 3일. 이날은 최석기가 평생 잊지 못하는 날짜다. 당시 V리그를 지배했던 로버트랜디 시몬(OK저축은행)의 스파이크를 무려 8차례 막아냈다.

세계 최고의 미드블로커로 꼽히던 시몬은 V리그에 온 뒤 가장 많은 블로킹이 걸리는 수모를 겪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선수가 최석기였다.

최석기는 이날 속공으로 6점, 서브 에이스로도 1점을 더 올려 15점을 냈다. 수원체육관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최석기는 "프로 입단 후 처음 인터뷰를 해 본다"고 울먹였다.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2014년 12월 3일을 최석기(오른쪽)는 평생 잊지 못한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 뉴스1한국전력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2014년 12월 3일을 최석기(오른쪽)는 평생 잊지 못한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 뉴스1
최석기는 "그 해까지 해보고 안 되면 은퇴하려고 다짐했는데, 시몬이 터졌다"고 웃은 뒤 "1세트 막판에 들어가서 (블로킹)하나를 잡았고, 2세트에도 계속 잡았다. 3세트에는 '이게 뭐지'란 생각도 들더라. 그날 결국 5세트에 가서 서재덕의 서브에이스로 OK저축은행을 이겼다. 그 경기 덕분에 은퇴를 면했다"고 설명했다.

프로에 온 뒤 수술과 재활만 반복했던 최석기가 처음으로 많은 이들에게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릴 수 있었던 경기였다.

최석기는 "덕분에 처음으로 한전서 FA도 할 수 있었다. (신 감독님께서)힘을 써주셨다. 내겐 은인"이라고 미소 지었다.

◇ 트레이드와 FA,그리고 방출과 우리카드에 오기까지

최석기는 2015-16시즌 중 대한항공으로 트레이드 됐다. 최석기는 대한항공에서 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비록 아쉽게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에 패했지만 오랫동안 꿈꿔왔던 챔프전 무대도 밟을 수 있었다.

최석기는 2017-18시즌을 앞두고 FA로 친정 팀인 한전에 복귀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반대였다. 그는 한 시즌 만 뛰고 팀에서 방출됐다. 자유계약선수로 풀렸다.

최석기는 당시를 돌아보며 "고민 끝에 한전에 갔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고 했다. 당시 첫째가 막 태어났을 때라 최석기에게는 방출은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죽으란 법은 없었다. '은사'인 신영철 감독이 있는 우리카드의 입단 테스트를 거쳐 새로운 팀에 둥지를 텄다.

신 감독은 제자에 대한 칭찬을 부탁하자 "(최)석기처럼 배구 못하는 친구가 무슨 인터뷰를 하는 것이냐"고 농을 한 뒤 "정말 열심히 한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에 만족하면 안 된다. 배구는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카드 훈련장인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만난 최석기가 환하게 웃고 있다. © 뉴스1우리카드 훈련장인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만난 최석기가 환하게 웃고 있다. © 뉴스1
최석기는 "감독님은 내 무릎 상태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시기 때문에 많이 배려해 주신다. 나도 감독님의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퇴 위기에 몰렸던 최석기는 2019-20시즌에 화려하게 비상했다. 남자부 속공 2위, 블로킹 8위에 올랐다. 모두가 "넌 이제 안 돼"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최석기는 그때마다 가족을 생각하며 버텼다.

최석기는 "지금의 와이프를 2번째 수술할 때 만났는데, 내가 제일 힘든 것을 다 지켜보면서 함께 있어줬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을 하고 너무나 부정적이고 진상이었는데 여자친구가 그걸 다 받아줬다. 나중에 지나고 보니 '네가 불쌍했다'고 하더라.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수술에 대한 트라우마로 부상 이야기를 꺼렸던 최석기는 지금은 오히려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내게는 코트에 설 수 있는 매 순간, 매 경기가 소중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때론 블로킹을 잡아낸 뒤 오버스러운 세리머니를 하는 그는 "그것마저도 간절하다. 잠깐이라도 경기에 출전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100%를 쏟아 붓고 싶다"고 했다.

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20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 대한항공 경기에서 우리카드 최석기가 공격을 하고 있다. (우리카드 배구단 제공)2020.1.4/뉴스1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20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 대한항공 경기에서 우리카드 최석기가 공격을 하고 있다. (우리카드 배구단 제공)2020.1.4/뉴스1
무수한 좌절 속에서도 최석기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그는 "먼 훗날 팬들이 배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 열심히 했던 사람으로 기억해 줬으면 한다"고 웃었다.

최석기의 바람은 단 한가지다. 우리카드에서 멋지게 우승을 하고 은퇴를 하는 것이다.

그는 "팀에 합류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면서 "지난 시즌에 코로나19로 아쉽게 끝이 났는데 올해 다시 도전자로 나서서 꼭 우승을 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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