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ㅣ기괴하지만 매력적인 이경미 월드 ②

권구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9.2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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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안은영, 세상에네가 제일 이상해”

고등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일하고 있는 안은영(정유미)이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이상(異常)했다. 보통 사람이 보는 시계에 소위 젤리라 부르는 귀엽거나 혹은 흉측한 무언가가 덧칠돼 있었다. 젤리는 죽은 이가 세상에 남긴 욕망 덩어리. 쉽게 말해 안은영은 귀신 같은 이상(異像)을 보는 여자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피곤한 인생을 살았음이 짐작될 터. 하지만 이 이상한 선생님은 “태어날 때부터 남을 돕고 살 운명, X발”이라 받아들이며 무지갯빛 형광봉과 BB탄 총을 들고 매일 같이 젤리 퇴치의 이상(理想)을 실천하고 있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막강한 팬덤을 가진 작가의 작품과 막대한 자본의 힘으로 젤리를 시각으로 구현시킬 넷플릭스, 여기에 정유미라는 ‘안은영’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배우, 그리고 이 범상치 않은 웰컴 투 더 젤리 월드와 맞먹는 독특한 세계를 구축 중인 이경미 감독의 만남으로 제작 단계부터 화제가 됐다. 그리고 결국 이상적인 이상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조각조각을 살펴보면 매력 넘치는 작품이다. 책을 원작으로 작품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은 독자의 상상력을 충족시키는 영상 구현이다. 그중에서도 ‘보건교사 안은영’은 젤리라는 막중한 숙제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CG로 재탄생한 젤리는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 덩어리가 됐다. 빨갛게 두근거리는 하트 젤리부터 창문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끈적거리는 젤리까지 보는 이의 마음을 말캉말캉하게 만든다. 심지어 사람을 ‘재수 옴 붙게 만드는’ 옴 젤리마저 귀엽다. 반면 빌런처럼 등장하는 두꺼비 젤리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극에 긴장감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정유미는 작품의 A부터 Z까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환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고달픈 삶의 안은영이지만 형광봉을 휘두르고 비비탄 총을 쏠 때 보여주는 발랄한 매력과 결연한 의지가 그의 인생을 대변한다. 특히 남주혁의 손을 잡고 좋은 기운을 받을 때 붉게 물들어가는 두 뺨을 볼 때면, 이상하리만치 러브라인 표현에 인색한 이 드라마에서 콩닥거리는 설렘을 느끼게 된다.

남주혁 역시 튀지 않는 연기로 안은영이라는 인물을 빛내며, 문소리는 존재만으로도 극에 미스터리를 더한다. 학생으로 출연하는 배우들 역시 그저 예쁘고 잘생긴 외모로 점철된 여타 학원물과 달리 개성 넘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극에 현실감을 더한다. 더불어 1화에서 등장하는 보조 출연자들은 옥상 달리기를 통해 좀비물이 비견해도 충분할 정도의 열연을 펼친다

이경미 감독과 정세랑 작가의 의기투합은 예상대로 잘 어울린다. 일반화를 거부하는 이경미 감독만의 독특한 연출은 ‘보건교사 안은영’에 B급 감성과 함께 아이러니의 유머를 선사한다. 다만 이 감독 특유의 회색빛 정서가 가득해 취향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젤리들마저 빨주노초파남보로 날아다니고, 안은영의 형광봉이 세상을 비추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은 정적이고 고요하며, 무채색의 느낌이 강하다. 통통 튀다 못해 비글미가 폭발할 고등학교가 음울하고 무기력한 장소로 탈바꿈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해서 틀림이 아니고, 상상했던 것과 다르다 하여 나쁨이 아니다. 하여 자신을 향해 세상에서 제일 이상하다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안은영은 외친다. “네가 더 이상해!”라고. 귀신을 본다 하여 왕따를 당하고, 교통사고로 다리를 전다 하여 차별을 받고, 동성을 사랑한다 하여 편견에 시달리고, 태곳적부터 옴을 없애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 있다. 이상하다 하여 약자 취급을 당해온 인물들이 그저 타인을 위해 세상을 구하려 한다. 정세랑 작가의 말을 빌려 “여린 존재들의 아름다운 싸움”을 ‘보건교사 안은영’은 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그러나 6개의 에피소드라는 제한된 시간이 마냥 아쉽다. 원작 대비 생략된 에피소드가 여럿 있고, 캐릭터 개개인의 전사나 매력 어필 시간이 부족하다. 캐릭터에 몰입이 되지 않으니 서사의 전개가 어색하고 뚝뚝 끊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인공 안은영의 시선에 따라가려 해도 워낙 다이내믹한 삶을 사는 인물이다 보니 순간순간 널뛰는 감정 폭을 따라가기 힘들다. 더불어 이경미 감독이 서사적으로 친절한 감독이 아닌 것도 한몫 거든다.

적은 시간임에도 담아야 할 메시지는 너무 많다. 10대들의 로맨스, 학원 폭력 등 학원물의 기본 덕목을 시작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빌런을 퇴치하는 히어로물, 여기에 동성애와 장애인, 여성 문제까지 언급하자니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중과부적의 모양새. 세세한 잔재미의 매력이 즐거웠던 원작을 감안한다면 과감하게 몇 가지를 포기하고 시즌2 제작에 기대를 거는 게 좋았을 수 있다. 그 또한 넷플릭스 플랫폼만이 가능한 매력이 아니었을까?

결국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경미 감독의 연출작이 늘 그러했듯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작품이다. 그 반향은 영화보다 더 심할 수 있다.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이경미 감독에게 있어 ‘호’의 입장에 티켓을 산 사람이 다수일 터고, 좋든 싫든 러닝타임 내내 작품과 마주할 것이다. 허나 넷플릭스 관객은 다르다. 리모컨을 돌리다 안은영과 마주한 만큼, 채널을 다시 돌리는데도 자유롭다. 예고편만 보고 예쁘고 즐거운 해피 바이러스가 가득한 작품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과연 ‘이경미 월드’라는 높은 진입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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