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폐지된 국가원수모독죄…"달님 영창" 처벌 못할까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2020.09.2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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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김소연 국민의힘 대전 유성을 당협위원장이 자신의 지역구에 설치한 추석 명절 현수막에 ‘달님은 영창으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2020.9.28/사진제공=뉴스1 28일 오전 김소연 국민의힘 대전 유성을 당협위원장이 자신의 지역구에 설치한 추석 명절 현수막에 ‘달님은 영창으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2020.9.28/사진제공=뉴스1


국민의힘 대전유성구을 당협위원장인 김소연 변호사의 추석인사 현수막 '달님은 영창으로' 문구가 철 지난 '국가원수 모독' 논란을 재소환했다. 여당 지지층은 문재인 대통령을 일컫는 '달(moon)님' 표현과 감옥을 뜻하는 '영창'을 함께 쓴 비방이란 지적이다.

하지만 이른바 '국가원수모독죄'는 이미 30년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정권을 가리지 않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단어를 꺼내 들곤 한다. 그러면 국가원수(대통령)은 얼마든지, 어떤 수위로 욕해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유신시절 국가모독죄, 민주화 후 '삭제'
국가원수모독제, 정확히는 '국가모독죄'는 한때 형법에는 명시돼 있던 조항이다. 유신 시절인 1975년 3월 제정됐는데, 당시 철저히 통제돼 있던 국내 언론 대비 외신에서 터져 나온 독재정권 비판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게 주요 목적이었다.

특히 대통령과 국가의 존립을 동일시했던 권위주의 군부 정권의 상황 탓에 대중적으로는 국가원수모독죄라는 명칭이 더 널리 통용됐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곧바로 폐지 논의가 시작됐고, 새로 구성된 '여소야대'의 13대 국회가 '국가모독죄 삭제'를 여야 합의로 처리하면서 민주화의 상징적인 결실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작년 3월 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중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발언에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항의하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작년 3월 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중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발언에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항의하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나경원 "김정은 수석대변인", 이정희 "박근혜씨"
그럼에도 이미 사라진 국가원수모독죄는 야권의 대통령에 대한 폄훼 발언이 나올 때마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등장했다.

가까이는 작년 3월 당시 나경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 부르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화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이 대표가 형법상 사라진 조항임을 모를 리 없으니, 그만큼 나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국가원수모독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2103년 말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한 집회에서 "박근혜씨가 독재자"라고 비판하자, 당시 여당은 '~씨'라는 표현에 "국가원수 모독"이라 반발했고, 2017년 1월 표창원 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전시회의 일명 '박근혜 나체 그림'도 같은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대통령을 향한 '2MB' '쥐박이' 등 숱한 조롱 표현이 난무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14년엔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통령을 희화화한 내용의 '환생경제' 공연으로 '국가원수 모독' 비판을 받았다.

'모독죄' 없어도 처벌…"MB 살인자" 백원우는 '장례식 방해죄' 기소
2009년 5월 29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거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하려던 순간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사죄하라"며 소리치다 경호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히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2009년 5월 29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거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하려던 순간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사죄하라"며 소리치다 경호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히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달님은 영창으로' 대자보 논란에 김 변호사 역시 28일 SNS에 "아쉽게도 국가원수모독죄는 민주화운동을 거쳐 1988년도에 폐지됐다"면서, 강성 친문 지지자들을 겨냥해 "부들부들하는 소리가 막 들리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비꼬았다.

그러면 더는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건 전례에서 드러난다. 정치적 갈등은 법이 아닌 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원칙'이지만, 대통령 비난에 국가모독죄가 아닌 다른 형법을 들이대 처리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2009년 5월 고(故)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살인자", "사죄하라"고 고함을 쳤던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검찰로부터 '장례식 등 방해죄'를 적용받아 기소됐다. 최종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당시 야권에선 "국가원수모독죄의 부활"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올해 6월엔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대학교 건물에 붙인 20대 대학생이 건조물 침입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이밖에 국가모독죄가 없다 해도 국가원수 역시 상습적 비방 또는 허위사실 유포할 경우에는 모욕죄, 명예훼손죄 등으로 의율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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