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중견·중소형 증권사라고 해서 IPO 업무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증권사들은 적게는 50억원대에서 많게는 150억원 정도의 스팩종목을 증시에 상장시켜 뒀다. 주로 코스닥 상장을 시도하는 중소형 비상장사들이 자사 자금사정에 맡게 상장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해둔 것이다.
스팩을 통한 상장은 일종의 우회상장과도 같다. 비상장사 주주는 스팩과 정해진 합병비율에 따라 스팩으로부터 신주를 배정받아 상장사 주주가 된다. 스팩 주주들은 비상장사와의 합병을 통해 해당 비상장사 사업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0년 최초로 스팩이 도입된 이후 현재까지 증시에 상장된 스팩은 191개에 이른다. 이 중 88개 스팩이 비상장사와 합병을 성사시켰다.
직상장 시장에서는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KB증권 등 5개 대형사와 하나금융투자, 대신증권, 키움증권 정도만 주관사로 이름을 주로 올리고 있지만 스팩에서는 보다 많은 증권사들의 참여가 돋보인다.
올해 2월과 3월에 증시에 입성한 네온테크, 레이크머티리얼즈는 DB금융투자가 만든 5,6호 스팩과 합병했고 지난 4월 상장한 나인테크는 교보7호스팩과 합병이 성사된 사례다. 이외에도 아이엘사이언스(신영증권) 이랜시스, 자비스, 알로이스(이상 IBK투자증권) 본느(현대차증권) 러셀(하이투자증권) 이디티, 나노(이상 유진투자증권) 하이비젼시스템, 켐온(이상 이베스트증권) 등이 스팩을 통해 증시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스팩합병은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이 대폭 제거된다는 점이 꼽힌다. 공모가 확정을 위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과 일반 청약 없이도 스팩 설립 및 상장 과정에서 조달된 자금을 비상장사가 공모금으로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상장사는 자금조달 계획에 맞는 스팩을 증시에서 쇼핑하듯 골라 합병상장을 추진하기만 하면 된다. 상대적으로 간소한 절차로 빠른 시간 내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스팩은 투자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스팩이 상장 시점에 공모로 조달하는 자금의 전액은 정기예금 등 형태로 예치가 된다. 스팩이 존속기간 내 상장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상장폐지 후 청산이 되는데 공모가 수준에 스팩 주식을 취득한 이는 투자금 뿐 아니라 스팩 존속기간(약 3년) 복리이자를 더해 받을 수 있다. 우량 비상장사와 스팩이 합병하게 되면 스팩 투자자는 추후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해마다 20~30개의 스팩종목이 상장되고 10~20개 가량의 비상장사들이 스팩합병을 통해 상장하고 있다. 최근 1년 동안에도 NH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KB증권, 하나금융투자 등 대형사 뿐 아니라 상상인증권, 현대차증권, IBK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신영증권, SK증권, 한화투자증권 등이 스팩종목을 신규로 상장시켰다. 올해 들어서 9개 비상장사가 스팩을 통해 증시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