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제동 걸 재정준칙, "채무비율 증가 한도 3~4%대" 못박나

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박준식 기자 2020.09.2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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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포퓰리즘 방패 재정준칙(上)

편집자주 정부가 조만간 재정준칙을 마련해 발표한다. 재정준칙은 단기적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선심성' 정책이 남발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제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 34개국이 도입했다. 단순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00%'로 국가채무를 관리한다'라는 식의 경직적인 제한선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가 처한 인구와 경제성장 여건 등 현실을 고려한 준칙을 내놔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포퓰리즘 방패' 한국형 재정준칙 나온다
나랏빚 제동 걸 재정준칙, "채무비율 증가 한도 3~4%대" 못박나


27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달 중 한국형 재정준칙 마련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준칙은 수입과 지출, 수지, 채무 등 4개 분야 재정운용에서 지켜야 할 기준이 담길 예정이다.



정부는 전년대비 부채비율 증가율 등 상대적인 기준으로 준칙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기재위에 참석해 "긴급한 위기나 재난 시 재정준칙은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유연한' 재정준칙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부는 20대 국회때도 △국가채무를 GDP(국내총생산) 대비 45%로 △관리재정수지 적자 GDP의 3%로 관리한다는 내용의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했었다. 최근 몇년간 국가채무와 관리재정적자가 급증하고 코로나19 이후 경제충격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이같은 상한선을 지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까지 거친 결과 올해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9%다. 문재인 정부 이후 3년만에 36%에서 8%포인트 가까이 치솟았다. 이 비율은 문 대통령 퇴임 이후인 2024년이 되면 58%까지 넘어서 60%를 목전에 두게 된다. 2017년 국가채무는 660조원 수준이었는데, 올해말 847조원을 넘고, 현 정부 퇴임에 이르러서는 1070조원에 달한다.

관리재정수지 적자의 경우 4차 추경 이후 6.1%로 커졌는데, 올해 채무비율이 45%를 넘지 않더라도 국회에 계류 중인 재정준칙을 지키려면 앞으로는 긴축재정을 펼쳐야 한다. 더군다나 코로라19 충격, 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성장률 저하 등 국내외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긴축재정은 독이라는 게 정부와 학계의 중론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기재부가 최근에 발표한 '2020~2024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은 매년 4% 정도 늘어난다. 재정준칙도 이에 기준해 3~4%대 채무비율 증가 한도를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관리재정수지는 2020~2024년 -6.1~-5.4%를 전망한 만큼 5%대에서 관리재정적자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지출 측면에선 예정에 없던 예산 도입 시 부족한 재원보충수단을 함께 제시하도록 한 'PAYGO(페이고)' 원칙을 명문화할 전망이다. 코로나19에 따른 4차례 추경이나 태풍피해·자연재해 등으로 추경 편성 시 악화되는 재정 건전성을 보완할 수입 보충방안도 마련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단순한 채무비율 상한선보단 의무지출과 재량지출을 나눠 각각 특성에 맞게 지출 원칙과 상한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인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특정 숫자로 국가채무비율 한도를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고령화 속도나 GDP 성장 전망, 이후 복지정책의 기조 등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한 재정준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 국채증감은 해외투자자의 국가 신용평가, 자금 이동과도 연결된다"며 "우리 자체 시각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신용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김훈남 기자

정치에 휘둘리는 나라곳간…法으로 열쇠채운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정부는 단기간에 치적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 5년 내 아니 레임덕이 없는 3~4년 내에 선명성있는 정책을 정착시키지 않으면 차기엔 정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어서다.

치적을 쌓으려면 재정이 필요하다. 보수건 진보건 너나 할 것 없이 재정에 유혹을 느낀다. 박근혜 정부는 노인연금으로 보수층 지지세를 붙잡았다. 문재인 정부는 그에 더해 전국민고용보험과 재난지원금을 만들어냈다.

이제 차기 대통령 선거를 1년 반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회성 자금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국민들에게 월급을 주자는 것이다. 기존 복지성 지출을 일부 없애더라도 재정을 추가로 들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이나 일본 등 기축통화국이 아니고서는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채무 410조 늘어난다

문재인 정부 들어 3년 반 만에 GDP(국내총생산) 대비 채무비율은 36%에서 43.9%로 치솟았다. 이 비율은 문 대통령 퇴임 이후인 2024년이 되면 58%까지 넘어선다. 2017년 국가채무는 660조원 수준이었지만 올해말 847조원을 넘어 현 정부 퇴임에 이르러서는 그 채무가 1070조원에 달할 것이란 의미다.

채무가 410조원이나 늘어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가 재정에 있어 들어온 돈(세입)보다 나가는 돈(세출)이 매년 늘어나기 때문이다.

첫째는 경제 성장보다는 분배에 집중한 결과다. 현 정부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에 국가가 개입해 소득을 재분배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여기에 올해는 역대급 장마에 따른 수해, 코로나19(COVID-19) 확산 등으로 돈을 풀 명분이 충분했다.

◇ 코로나19 이전부터 재정을 지키던 둑은 터졌다

국가채무비율 40% 벽이 사실상 깨진 건 지난해 5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였다. 당시 기획재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40% 초반으로 관리하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에 보고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채무 비율 40%가 마지노선이라는 근거가 뭐냐”고 되물었고, 이로써 국가채무비율 40%는 더이상 ‘불문율’의 자리를 잃게 된다.

이후 1년여 만에 국가채무비율은 45%선이 위협받게 됐다. 국가채무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지난 3년간 매해 예산은 9%씩 늘었다. 매년 천문학적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이뤄졌다. △2017년 고용시장 침체에 따른 일자리 창출 목적으로 11조원 △2018년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3조8000억원 △지난해에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6조7000억원을 편성했다.

올해는 본예산 집행이 시작되자 마자 2월에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추경을 짰고, 이후 수해 복구와 1, 2차 재난지원금 지급, 소비대책 마련, 한국형 뉴딜 추진 명분으로 추경을 이어갔다.

1961년 이후 60여년 만에 4차례에 걸쳐 추경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재정상황은 급속히 악화하자 선심성 재정지출 남발을 막을 장치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한해 추경 4차례…전쟁통이 아니고서야 지나친 선심

이에 정부는 세입 세출, 재정수지, 국가채무 등 4개 분야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할 계획이다.

문제는 실효적 구속력이 없다면 선언적 의미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 추경의 경우에도 국가재정법은 전쟁이나 남북관계 변화, 대규모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발생 등으로 추경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지만 지켜진 적이 거의 없다.

재정준칙을 통해 현 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설정한다고 하더라도 차기 정부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냐 문제는 여전하다. 차기 대통령이 여야 어느 곳에서 나오든 지난 대통령과 정부가 마련한 준칙은 ‘내로남불’로 비판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치자들은 재정을 쓰고 싶은 유인이 많기에 일단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더 넓게 퍼져야 한다”며 “재정준칙은 (기재부가 아닌) 예산이랑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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