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새 대법관에 '보수' 배럿 지명…'대선불복' 노린 포석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20.09.27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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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 연방대법관 후보로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법 판사(48)를 지명했다. 최근 타계한 '진보의 아이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이다.

보수 성향의 배럿 판사가 상원의 인준을 받을 경우 미 연방대법원의 이념 구도는 보수 6 대 진보 3으로 크게 기운다.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11월 대선 전에 인준을 마친다는 계획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경우 불복소송을 벌일 상황에 대비해 미리 연방대법원을 장악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자녀 7명 둔 40대 워킹맘, 연방대법관 낙점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럿 판사를 신임 연방대법관 후보자로 지명한다"며 "그는 비교할 데 없는 성과와 엄청난 지성, 휼륭한 자격과 헌법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심을 갖춘 여성"이라고 밝혔다.

배럿 판사는 이 자리에서 "나는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의 헌법을 사랑한다"며 "인준 과정에서 내가 이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연단에는 입양한 2명을 포함해 모두 7명의 자녀와 남편 등 그의 가족도 함께 올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배럿 판사는 낙태에 반대하는 등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총기 소지에 찬성하고 오바마 행정부 당시 추진된 건강보험개혁법안, 이른바 오바마케어에는 반대한다.

배럿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브랫 캐버노 판사를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할 때 마지막까지 고려했으며 이후 긴즈버그의 후임 자리를 위해 아껴왔던 인물로 알려졌다.

긴즈버그는 지난 18일 췌장암 전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었던 긴즈버그는 여성과 성소수자, 유색인종 등 사회적 소수 보호에 앞장선 대표적인 진보 법관이었다.


트럼프 대선불복 소송 땐 연방대법원 손에

상원의 다수당인 공화당은 다음달 12일 배럿 판사에 대한 청문회를 거쳐 29일 인준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CNN은 전했다. 11월3일 대선 전에 배럿 판사를 연방대법관으로 공식 임명하기 위함이다. 현재 공화당은 상원 100석 가운데 53명을 차지하고 있다.

배럿 판사가 임명된다면 긴즈버그 생전에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그럭저럭 균형을 이뤄온 연방대법원의 이념 구도가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대폭 우경화된다.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어서 한번 짜인 이념 구도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연방대법원은 인종 문제와 낙태 등 가치와 이념이 부딪히는 예민한 사안들에 대해 마지막 결론을 내리는 미국의 명실상부한 '최종심급'이다. 대선 결과를 둘러싼 소송도 연방대법원의 손에 좌우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엘 고어 후보 측이 요구한 플로리다주의 재검표 절차를 중단시킨 것도 연방대법원이었다. 당시 연방대법관 9명 가운데 5명이 공화당 성향이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시 불복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럿 판사의 연방대법원 입성이 선거 불복소송의 결과를 바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기자들과 만나 "우편투표는 사기"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11월 대선은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11월 대선의 승자가 긴즈버그의 후임 연방대법관을 지명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 같은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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