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이냐 아니냐…부성애 가득 페북엔 "아들 올 A 잘했어"·"꽁주"

머니투데이 류원혜 기자 2020.09.2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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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페이스북/사진=페이스북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故)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 이모씨(47)의 생전 행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씨는 2014년부터 지난 6월까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다수 게재하며 일상을 공유해왔다. 특히 아들·딸의 사진을 자주 올리며 애틋한 부성애를 보여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또 해양수산부 홍보 영상을 올리는 등 성실한 공무원의 모습도 보였다.



지난 2월에는 딸이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올리며 "생애 두 번째 스케이트 타는 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트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요리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딸의 사진을 여러 장 올리면서 "꽁주(공주)"라고 적어 애정을 표현했다.

2016년에는 이씨가 올린 딸의 사진에 지인이 "공주님 보면 피로가 확 풀리겠어요"라고 댓글을 남기자 이씨는 "네 과장님, 이 맛에 사네요"라고 답했다.



아들을 언급한 게시물도 있다. 이씨는 2018년 중학생이던 아들의 시험 성적표를 올리며 "아들 올 A 잘했어"라고 칭찬했다. 아들이 지난해 중학교 졸업식에서 '다른 학생의 모범이 되었다'는 국회의원 표창장을 받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씨는 봉사활동도 자주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SNS 마지막 게시물에는 전남 목포의 한 미혼모 주거 지원 시설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모습이 담겨 있다.

또 이씨는 본인이 속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의 공식 게시물도 수차례 공유했다. 서해어업관리단이 중국 어선을 단속했다는 인터넷 기사 링크, 채용 공고, 순직한 주무관을 추모하는 게시물 등이다. 어업지도 공무원으로서 그의 자부심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드론 조종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내용도 올렸다.
군은 지난 24일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 의해 사살·화장 사건과 관련, 해당 공무원이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졌다고 밝혔다. 사진은 24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해상에 정박된 실종 공무원 이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사진=뉴스1군은 지난 24일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 의해 사살·화장 사건과 관련, 해당 공무원이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졌다고 밝혔다. 사진은 24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해상에 정박된 실종 공무원 이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사진=뉴스1
군과 해경은 숨진 이씨가 채무 관계 등을 이유로 스스로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파악했지만 유족들은 이씨가 월북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씨의 친형은 자신의 SNS에 이틀째 글을 올리며 "우리 군의 월북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씨 친형은 25일 새벽 "왜 멀쩡한 대한민국 국민이 참담한 장면으로 죽어야 했느냐. 북한의 만행에 국가의 책임과 의무는 무엇이냐"고 되물으며 "월북, 가정사, 금전적인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 해역에서 머무르는 시간동안 군은 무엇을 했으며 (왜 국민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군 당국은 이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씨가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선박을 이탈할 때 슬리퍼를 벗어둔 점 △소형 부유물을 이용한 점 △북쪽 해상에서 발견됐을 당시 북측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식별된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다.

앞서 군 당국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21일 오전 11시30분쯤 소연평도 해상의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됐다. 다음 날인 22일 북한군은 오후 4시40분쯤 이씨의 표류 경위 등 월북 상황을 듣고 오후 9시30분쯤 그를 총살한 뒤 시신을 바다 위에서 불태운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는 최초 실종 직후 28시간 동안 차가운 바다를 표류하면서 건강이 악화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북측 인원들은 그를 구조하지 않았다.

이후 군은 이씨의 사살 정황을 포착하고 17시간 만에 북한 측의 입장을 묻는 대북전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북측으로부터 답은 없는 상태다.

한편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인 이씨는 2012년 기능직 9급 선박항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전 원양어선의 선장으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의 총격에 우리 민간인이 사망한 사례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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