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우리 국민 피격 알고도 '종전선언' 했나…논란의 10시간

머니투데이 김지영 기자 2020.09.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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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승선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가 24일 오후 해양경찰의 조사를 위해 대연평도 인근 해상에 정박해 있다. 국방부는 이날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웠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사진=뉴스1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승선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가 24일 오후 해양경찰의 조사를 위해 대연평도 인근 해상에 정박해 있다. 국방부는 이날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웠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사진=뉴스1


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측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한반도 종전선언’을 요청한 시점이 맞물리며 파장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종전선언을 기준으로 청와대가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문 대통령이 관련 보고를 받기까지 10시간 이상의 공백이 있었던 점과, 사건 공개 시점을 미루고 은폐하려 했는지 등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 등 야권과 보수단체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공세에 나서고 있다.

문 대통령, 유엔연설 때 피격 사건 알았나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23일 새벽 1시30분쯤 시작한 점을 고려할 때, A씨 관련 소식을 알면서도 '종전선언'을 꺼내들었을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의원회의를 마치고 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 A씨가 북측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을 파악하고도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하자고 했다면 국민을 속인 것일 뿐만 아니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진상조사를 하고 있는 과정"이라며 "시간 선후라든지 보고된 내용들을 추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청와대에도 보고돼 대통령도 알고 있을 상황인데도 UN 종전선언 연설을 했다면 기가 막힐 일"이라며 "대통령은 이런 북한만행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시냐"고 따져 물었다.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은 한국 시간으로 23일 새벽 1시 26분에 시작해 1시 42분에 끝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에게 첫 보고가 이뤄진 것은 23일 아침 8시 30분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유엔총회 종전 연설이 진행되던 시점은 문 대통령 관련 보고를 받기 전이고 사건 발생을 몰랐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유엔 연설은 녹화 영상으로 사건 발생 전인 15일 녹화돼 18일 유엔에 이미 발송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사진=뉴스1문재인 대통령이 제75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사진=뉴스1
대통령 보고까지 10시간·사건 '은폐' 의혹도…공개시점 두고 뒷말 무성
공개 시점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정부가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 때문에 일부러 공개를 안 한 것 아니냐는 것.

청와대에서 첩보를 통해 관련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은 22일 밤 10시 30분. 문 대통령에게 첫 보고가 이뤄진 23일 아침 8시 30분까지 10시간 가량 보고를 지연한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같은 날 오전 1시부터 2시30분까지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는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황 파악과 회의 등을 이유를 들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긴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늦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21일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에 의해 피살됐다는 사실이 (22일) 대통령의 유엔 연설 이후 알려졌다는 점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며 "정부가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 제안이라는 이벤트에 국민의 생명을 뒷전에 밀어 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사건 자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과 만나 "(실종 사실이) 지난 21일 12시51분 신고됐고 언론 보도를 보면 20여척이 동원돼 수색했다고 한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에게 철저하게 비공개로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 관련 내용을 (유엔총회) 연설에 포함했는데 이 연설로 (실종 사실을) 은폐한 정황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한변 "'北피격' 보고·대통령 지시내역 시간대별로 공개하라" 요구
의혹이 이어지자 청와대는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 연설을 수정하거나 (취소하는) 판단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며 "이번 사건과 유엔 연설을 연계하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 해명에도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안위와 건강을 책임져야 할 헌법적 책무가 있다"며 "그런데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화상기조연설에서 언급한 종전선언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민의 총살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정황적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2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어업 지도 공무원 A씨가 북측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오후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결과와 정부의 대책을 보고받은 후 북측의 총격으로 우리나라 국민이 사망한 것과 관련해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라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뉴스1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2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어업 지도 공무원 A씨가 북측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오후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결과와 정부의 대책을 보고받은 후 북측의 총격으로 우리나라 국민이 사망한 것과 관련해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라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뉴스1
이어 "관계 당국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역과 대통령의 지시 내역을 시간대별로 상세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전시에도 민간인의 사살을 금지하고 있는 제네바협약과 즉결처형 금지를 규정한 유엔 결의안에 비춰볼 때 생존한 민간인을 즉결처형한 북한군의 행위는 중대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향후 대응과 재발방지 대책도 뾰족하지 않다. 정부는 북한에 대한 강경한 대응이 요구하고 나섰지만 북한이 이를 인정하거나 사과입장을 표명하고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건 이후 우리 군이 지난 23일 대북 전통문을 발송했지만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지난 6월 남북 통신연락선을 모두 차단하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하면서 통일부 차원에서도 북측과 연락할 마땅한 수단도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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