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의사 집안 막내딸 루시아, 배구와 사랑에 빠진 까닭은

뉴스1 제공 2020.09.2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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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상의 발리톡] 흥국생명 외국인 선수 "2번째 시즌 기대돼"
"김연경은 농담도 잘 하고 분위기 메이커"

흥국생명 외국인 선수 루시아 프레스코가 경기 용인에 위치한 팀 훈련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흥국생명 외국인 선수 루시아 프레스코가 경기 용인에 위치한 팀 훈련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용인=뉴스1) 이재상 기자 =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루시아 프레스코(29·195㎝·아르헨티나)는 최근 끝난 '2020 제천 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가 아쉽기만 하다.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고, 개인적으로 몸도 무거웠다.

이유가 있었다. 2019-20시즌 V리그를 마치고 3월말 아르헨티나로 돌아간 뒤 현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아 볼 운동을 하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6개월 가깝게 '셧다운' 조치를 내리면서 홈 트레이닝과 가벼운 러닝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최근 경기도 용인 흥국생명 훈련장서 만난 루시아는 "컵대회를 마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어떻게 해야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명색이 프로 선수인데 코로나19 사태로 트레이닝이 부족했던 것 같아 아쉽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연경, 이재영, 이다영, 김미연, 이주아, 김세영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흥국생명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루시아의 활약도 필수적이다.



◇ "감옥에 갇혀 있는 줄"…힘겨웠던 아르헨티나 생활

루시아에게 아르헨티나에서의 생활에 대해 묻자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루시아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부터 격리 방침을 세우고, 집 밖을 못 나가게 했다"면서 "잘 나가지도 못했는데, 결과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 화가 난 상태"라고 전했다.


프로 배구 선수 루시아가 외부 활동에 제한을 받는 것은 손실이 컸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루시아. © AFP=뉴스1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루시아. © AFP=뉴스1
그는 "체육관도 다 닫혔고, 동네에서 가볍게 러닝을 했다. 그나마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영상 프로그램을 통해 웨이트 트레이닝 등 스케줄을 짜 줬다. 매일 영상 미팅을 통해 운동을 했는데, 강도가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루시아는 "집에서 짐 볼도 하고, 웨이트트레이닝도 하고, 예전부터 공부하고 싶었던 독일어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6월초 열린 외국인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흥국생명과 재계약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으로 오기까지 경유지 2곳(스페인 마드리드, 카타르 도하)을 거치면서 비행기를 3번 갈아타야 했고, 시간도 3일 가까이 걸렸다. 루시아는 2주 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난 뒤 배구 공을 만졌을 때의 반가움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 의사 집안의 막내딸 "가족들이 걱정돼"

루시아는 아르헨티나의 의사 집안에서 자랐다. 3남매 중 막내다.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도 산부인과 의사, 오빠 2명도 모두 의사다. 큰 오빠는 외과 의사, 둘째 오빠는 내분비학과 전문의다. 심지어 둘째 오빠의 여자친구도 아동의학과 의사다.

하지만 루시아만 어렸을 때부터 '의사'에 대한 꿈보다 스포츠가 좋았다. 그는 "이상하게 난 어릴 때 공부보다는 농구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한 뒤 "동네에 여자 농구팀이 없어서 배구를 우연히 했다가 사랑에 빠졌다. 그때가 9살 때였다"고 웃었다.

2020-21시즌에도 다시 핑크색 유니폼을 입게 된 루시아 프레스코. .(KOVO 제공)© 뉴스12020-21시즌에도 다시 핑크색 유니폼을 입게 된 루시아 프레스코. .(KOVO 제공)© 뉴스1
가족 이야기를 하던 루시아는 "나만 스포츠를 하고 모든 식구들이 의사라, 모이면 항상 환자, 약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재미가 없다"고 입술을 내밀었다.

먼 타지에 있는 루시아는 가족을 향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아르헨티나도 코로나19가 심각한데, 오빠들과 가족들이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시즌 중 가족들이 한국에 오기도 하는데, 2020-21시즌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이마저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루시아는 "우리 가족 중 한국에 있는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했다.

◇ "내가 또 흥국생명에 뽑혔다고? 김연경 합류 농담인 줄"

2019-20시즌을 앞두고 파스쿠치(이탈리아)의 대체 선수로 흥국생명에 합류한 루시아는 한국에서 다시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강조했다.

루시아는 "한국은 구단에서 외국인 선수를 위해 많은 것을 제공해준다. 솔직히 내가 다시 뽑힐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지난 6월 열린 '2020-21시즌 여자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6번째 순번으로 루시아를 지명했다. 당시 외국인 선수들은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대기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지명 소식을 들은 루시아는 정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흥국생명에 선택된 루시아 프레스코 선수가 4일 서울 강남구 청담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2020 KOVO 여자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영상으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2020.6.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흥국생명에 선택된 루시아 프레스코 선수가 4일 서울 강남구 청담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2020 KOVO 여자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영상으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2020.6.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루시아는 "사실 드래프트가 열릴 때가 아르헨티나 시간으로 새벽 2시가 넘었을 때였다"면서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주변 이웃들이 다 깰까봐 숨죽이고 있었다"고 웃었다.

아울러 당시 영상인터뷰에서 루시아는 김연경의 합류 소식을 듣자 "농담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루시아는 "피곤한 시간이라 (김연경 합류는)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다"고 미소 지은 뒤 "나중에 우리 팀에 김연경, 이재영, 이다영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다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부담도 됐다. 그래도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루시아는 평소 주장 김연경과 영어로 대화하며 장난도 많이 친다. 그는 "솔직히 팀에서 연경을 봤을 때 놀라웠다"며 "빅 스타라 먼저 안 다가올 줄 알았는데, 겸손하고 선수들과도 잘 어울리려고 한다. 농담도 많이 하고 분위기 메이커"라고 설명했다.

◇ "팀원 모두 같은 마음, 최선 다하면 결과 따라올 것"

컵대회에서 몸이 올라오지 않았던 루시아는 누구보다 열심히 땀 흘리며 한 달도 남지 않은 2020-21시즌을 위해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다.

루시아는 "컵대회 때는 더 잘하고, 팀을 위해 돕고 싶었는데 몸이 안 올라와 너무 속상했다"면서 "세터 이다영과도 이야기를 자주하고 있다. 다영이는 항상 내 의견을 들으려고 한다. 이재영과 이다영은 많이 맞춰봐서 눈을 감고도 세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5일 오후 충북 제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 여자부 결승전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경기에서 흥국생명 선수들이 득점에 성공한 후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20.9.5/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5일 오후 충북 제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 여자부 결승전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경기에서 흥국생명 선수들이 득점에 성공한 후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20.9.5/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2019-20시즌 막판 코로나19로 정규시즌이 중단돼 아쉬움이 컸던 루시아는 새 시즌에는 반드시 우승을 하고 싶다는 각오를 전했다.

루시아는 "내 리듬을 찾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라며 "공격에서 자신감을 되찾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연습할 때마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그리고 흥국생명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행운"이라고 거듭 강조한 뒤 "아무리 선수 구성이 좋아도 배구는 팀 스포츠다. 모든 선수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다 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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