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소비유발" 조세연 "손실유발" 지역화폐 효과 둘 다 맞다?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한고은 기자 2020.09.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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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불붙은 지역화폐 논쟁 (上)

편집자주 국책연구원이 경제라는 이름으로 ‘팩폭(팩트폭격)’을 시도했다. 유력 대선주자는 화력을 총동원해 ‘본보기 응징’에 나섰다. 여야 유력 정치인들까지 참전을 시작했다. 지역화폐는 무엇인가. 그것은 복지이자 정치이다.

다른 곳 바라보는 이재명과 조세연…둘 다 맞다?
이재명 "소비유발" 조세연 "손실유발" 지역화폐 효과 둘 다 맞다?


국무총리 산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표적인 정책인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의 효과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보고서를 내면서 지역화폐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연일 조세연 보고서의 정치적 의도와 학문적 오류 등을 지적하며 반발했고, 경기도 출연기관인 경기연구원(경기연)도 조세연과 정반대의 결론을 제시했다.



조세연은 나라 전체 관점에서 지역화폐 사용지역이 제한돼 발생하는 후생 손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지사 측은 지역 내 소비유발 효과를 앞세운다. 결국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이냐 가치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평행선을 달리는 모습이다.

◇나라의 소비 총량은 정해져 있다…지역 장벽은 결국 비용



조세연이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밝힌 부정적인 결론은 "전 국민의 소비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지역화폐는 발행한 지방자치단체 안에서 사용을 전제로 하기때문에 결국 각 지자체가 정해진 소비 총량을 나눠 갖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분석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소비를 지자체 안 소상공인의 매출로 끌어올 순 있지만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타지역 매출 감소를 수반한다는 게 조세연의 입장이다.

타 지자체로 소비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지자체 각자 지역화폐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 2015년 40대 지자체가 1200억원 규모로 발행한 지역화폐가 2020년 지자체 229곳이 발행, 9조원대로 늘어난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전체 소비 총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역화폐로 인한 부가가치는 발생하지 않고 지역화폐 발행과 관리 비용, 국가 보조금 등 손실만 남는다는 게 조세연의 결론이다. 지역별 사용제한으로 인한 소비자 편익도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국가 재정을 집행하는 중앙정부 입장에서 소상공인을 지원하려면 지역화폐보다 사용지역의 제한이 없는 온누리상품권으로 지원을 일원화 해야 한다는 정책조언이 뒤따랐다. 지역화폐 국고보조도 코로나19(COVID-19) 피해가 큰 지역이나 수해 재난지역 같이 특정 지역으로 제한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조세연의 분석은 경제학적 가정을 바탕으로 한 '모델 분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 소비유발 효과에 대해선 2010~2018년 전국사업체 조사 전수자료를 바탕으로 지역화폐의 소비 효과를 분석하고 있지만 지역화폐가 극적으로 늘어난 2019~2020년 소비효과는 분석하지 못했다. 지역간 경쟁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이 전반적으로 두터워질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했다.

조세연은 "2019년 이후에는 기존과 다른 경제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며 "데이터 이용이 가능해지면 추가 분석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경기 소상공인 매출 45%↑ 안 쓰면 없어지는 돈으로 추가소비 불러"



이재명 경기지사와 경기연은 '표본'을 앞세운다. 경기 지역 내 소규모 업체 3800곳의 매출 변화를 분석한 계량분석 결과로 지역화폐의 실효성을 주장한다. 조사기간도 경기도가 지역화폐를 본격 발행한 해인 2019년 4개 분기를 대상으로 했다. 이를 통해 지역화폐가 추가소비로 이어진다는 '승수효과'를 이끌어 낸다.

경기연은 '지역화폐의 경기도 소상공인 매출액 분석' 보고서에서 "지역화폐 결제액이 100만원 증가할 때 소상공인 매출액은 145만원 증가한다"고 했다. 지역화폐가 소비자의 기존 소비를 대체할뿐 아니라 45만원어치 추가소비를 이끌어 낸다는 결론이다.

하나의 점포를 살펴보면 지역 화폐 결제액이 100만원 증가한 시기에는 매출액이 57만원 증가한다는 분석 결과도 내놨다. 경기연은 "지역화폐 결제액 중 43% 일부가 기존 소비를 대체하더라도 57%의 추가 소비가 일어난다"며 "이를 통한 매출 증가가 나타난다"고 했다.

지역화폐 결제액이 100만원 많은 점포는 100만원 적은 점포에 비해 전체 매출액이 535만원 많았다.

다만 지역화폐의 효과를 지자체 내 표본조사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는 점은 경기연 연구의 한계다. 조세연이 지적한 인접 지자체의 매출감소, 특히 경기도 같은 대형 지자체에 인접한 소형 지자체에서 발생하는 역효과에 대한 반론이 되지 않는다. 전국 340만명에 달하는 소상공인 매출 증감 효과를 3800개 점포 매장 분석만으로 논하기엔 표본이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지역화폐에 대한 입장은 갈린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정지역 안에서 소비한다는 것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라며 "국세를 넣어 직접 넣어 소비를 보조하는 지역화폐는 재정을 잘못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재정은 민간이 투자하지 않는 도로나 공영 주차장, 상하수도 인프라 등 공공재에 투입해야 한다"며 "재정투입에 따른 근로자 소득 증대 등으로 소비를 이끌어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태곤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 재정 지출 역시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만 보면 낭비일 순 있지만 지역 균형발전 측면에서 보면 조세연 결론이 옳다고만 볼 수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모든 지역에서 균일하게 소비를 한다면 조세연의 연구가 맞겠지만 지역별, 상황별 특성에 따라 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종=김훈남 기자

지역화폐보다 온누리? 경제·정책 계산기 돌려보니
이재명 "소비유발" 조세연 "손실유발" 지역화폐 효과 둘 다 맞다?
"지역화폐에 대한 국고 지원보다는 유사 중복 사업인 온누리 상품권에 대한 지원으로 정책적 지원을 일원화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조세연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결론 중)

온누리상품권과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는 국비가 지원되는 대표적인 지역 소비 활성화 정책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발행, 지역 내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상품권 혹은 카드포인트 등을 말하고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에서 사용가능한 상품권으로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발행한다.

모두 용처를 제한해 전통시장과 지역 상권 등 특정 방향으로 소비를 유도한다. 코로나19(COVID-19) 이후 지역 경기 활성화와 소비진작 대책으로 국비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1년 예산을 살펴보면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 할인 및 발행지원 예산으로 1조3000억원이 책정됐다.

지역사랑상품권 15조원, 온누리상품권 3조원 등 총 18조원어치 상품권 할인·발행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다. 올해 각각 3조원, 2조5000억원 어치에 대한 예산을 책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예산을 확대했다.

정부는 올해 1차와 3차 추가경정예산에서도 지역사랑상품권 6조원, 온누리상품권 1조5000억원어치 발행을 추가 지원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은 정부의 예산 배분 기조와 달리 지역사랑상품권보단 온누리상품권 국비지원 비중을 늘릴 것을 제안했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전체 소비진작 효과를 노린다면 지자체 주도로 지역 내에서 사용이 허용된 지역사랑상품권보다는 사용지역 제한이 없는 온누리 상품권이 유리하다. 각 지자체의 경쟁적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으로 인한 보조금 등 비용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반론도 있다. 지역제한이 없다곤 하나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으로 사용을 제한했기 때문에 음식점과 슈퍼마켓 등 다른 소상공인에 대한 소비지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자체 입장에서 해당 지역 경기 활성화나 내수진작 목적에는 지역화폐가 더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역사랑상품권은 지역 상권을 살리고 지자체 참여를 유도하는 데 유리하고, 온누리상품권은 전국단위 용처로 전통시장 사용이 유리하다"며 "각제도별로 특성과 장단점이 있어 무엇이 우월하다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둘 다 지역의 소비를 촉진하는 차원인 만큼 상황에 따라 국고 지원비율을 정한다"며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비중이 큰 것은 지자체의 높은 선호도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세종=김훈남 기자

지역화폐, 암호화폐…'중앙화'에 대한 도전
지역화폐는 지자체가 발행하고 해당 지자체 가맹점에서만 사용가능한 상품권의 일종이다. 법정화폐인 한국은행권과는 발행 근거와 사용 범위 등에서 뚜렷히 구분된다. 하지만 최근 논란이 된 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 등과 함께 '중앙화'에 대한 도전인 것만은 분명하다.

◇동네서 물건 살 땐 법화나 지역화폐나 동일…무제한 통용·발행근거 큰 차이

한국에서 법정화폐는 한국은행권 하나다. 지역화폐는 지자체장이 발행주체인 '상품권'의 한 종류다. 지역화폐는 전국 어디에서나 무제한 통용되는 한국은행권과 달리 특정 지역 내, 특정 가맹점에서만 활용이 가능하다.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발행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사용에 제한이 따른다.

지역화폐가 '화폐 비슷한 것'처럼 인식되는 이유 중 하나는 용어 때문이다. 지역화폐에도 중앙은행권에 사용하는 '화폐', '발행', '지급수단'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이에 대해 중앙은행도 문제의식을 갖는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초기 부터 담당부처인 행정안전부에 지역상품권이 지역화폐라는 용어로 불리면서 화폐로 오인하는 일이 없도록 명칭 사용에 각별히 유의해달라는 협조요청을 해 왔다"고 했다.

행안부 역시 이점을 인식하고 있다. 행안부는 지난해 1월 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한 보도설명자료에 "행안부는 주민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화폐보다는 지역사랑상품권 명칭을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고 했다. 지역화폐 유통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정부 공식 법률도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다.

이재명 "소비유발" 조세연 "손실유발" 지역화폐 효과 둘 다 맞다?
무엇보다 법정화폐와 지역화폐가 발행되는 힘이 어디에 있느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에 의해 부여받은 발권력으로 법정화폐를 발행한다. 지역화폐는 지자체 예산과 국비 지원이라는 재원이 있어야 한다. 사용할 때도 법정화폐(현금, 예금 등)을 통한 구매가 전제된다. 지역화폐 발행도 결국 화폐 체계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지역화폐는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교환의 매개로서 화폐의 기능은 수행하고 있지만, 그 역시 특정한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며 이는 결국 지역화폐가 법정화폐의 대체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이 점에서는 페이스북 '리브라(Libra)' 논란과 대조된다. 페이스북은 한 플랫폼 안에 머물고 있는 전세계 20억명이 넘는 사용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폐(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준비 중이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사용자들이 갖고 있던 예금을 리브라로 대거 바꾸는 경우 은행 지불능력 하락에 따른 금융시장 시스템 혼란은 물론, 통화주권과 국제자본이동에 대한 각국의 정책이 무력화되는 상황까지 우려한다.

리브라는 각국 중앙은행과 규제당국의 견제 속에 각국 법정화폐에 1대1로 가격이 고정된 스테이블코인 출시로 계획을 변경했다.

리브라는 탈지역화(또는 초국가)를 의미하는 '어디서나'를 지향한다면, 지역화폐는 지역에 뿌리를 둔다. 지역화폐를 발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다만 명칭에서 볼 수 있듯 지역화폐는 탈중앙화와 분권적 특징을 갖는 건 분명하다. 지역화폐는 지역 내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한 복지정책적 성격이 강하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한 한국 경제 현실에서 일종의 장벽을 세워 경제력의 쏠림을 막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한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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