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 르포로 재구성한 임진왜란 극복기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20.09.1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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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태 작가 '징비록-종군기자의 시각으로 회고한 유성룡의 7년 전쟁' 펴내

종군기자 르포로 재구성한 임진왜란 극복기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국란을 극복하는데 노력한 이로 이순신과 유성룡이 꼽힌다. 유성룡이 이순신을 천거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개인적인 인연도 깊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후세의 경계로 삼자는 의미에서 글로 남긴 공통점도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기자적 시각(종군기자)을 담아 펴냈던 작가(조진태)가 이번에는 유성룡의 징비록을 르포처럼 재구성했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당대의 사료를 참고해 종군기자의 시각에서 임진왜란을 르포 기사로 담아내며 유성룡을 재조명한다.



르포 기사는 관찰자 시점으로 작성했고, 궁궐 및 전장의 출입 기자를 전제로 사료에 기반했다. 저자는 전란의 참화를 전하느라 일부 감정이 이입되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어설픈 문학적 상상력을 끼워넣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영의정의 자리에서 밀려오는 왜적에 맞서 전란에 대응하고 왕(선조)을 보필한 유성룡은 지도자의 나태와 무능이 백성에게 미치는 고통을 목격하고 후세를 경계하는 징비록을 남겼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백성의 아픔에 처절하게 공감한 몇 안 되는 지도자였다. 유성룡 사후 백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거행된 조선조 최초의 '백성장'이 이를 잘 증명한다.

또 중국(명)-일본(왜)-조선이 참전하며 국제전의 성격을 띠었던 전쟁을 오늘의 국내 상황과도 담담하게 연결짓는다. 불필요한 민족주의적 감정에 빠져, 전란에 기여한 명나라 군대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거나, 이들의 횡포만을 부각해서 폄하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조선과 명, 그리고 일본 간 3국의 외교적 지위와 현실적인 동북아 국제 관계를 반영해 중국 중심의 외교 질서에 편입되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던 당시 일본의 상황도 전한다.

저자는 코로나로 일상이 멈춘 이 시대 재상 유성룡에게서 국난을 이기는 지혜와 인내를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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