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형제' 돌봄교실 갔더라면…엄마는 신청도 음식지원도 거부

머니투데이 류원혜 기자 2020.09.1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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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11시16분쯤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어머니가 없는 사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던 형제가 실수로 불을 내 중화상을 입었다./사진=뉴시스(인천소방본부 제공)지난 14일 오전 11시16분쯤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어머니가 없는 사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던 형제가 실수로 불을 내 중화상을 입었다./사진=뉴시스(인천소방본부 제공)


어머니가 집을 비운 새 라면을 끓이던 중 불이 나 중태에 빠진 초등학생 형제가 학대와 방임에 노출됐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두 형제는 코로나19(COVID-19)로 등교가 중단되면서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였다. 또 형제의 어머니가 과거 아이들을 방치하는 등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던 사실 밝혀지면서, 이번 화재 사고가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임 속에 예견된 참변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두 형제, 화재 당시 119에 "살려주세요"…전신 화상 입고 중태
화재사고는 지난 14일 오전 11시16분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도시공사 임대주택인 4층짜리 빌라 2층에서 발생했다. 당시 A군(10)과 B군(8)이 집 안에서 라면을 끓이던 중 화재가 발생했고 이에 놀란 형제는 사고발생 6분만에 119에 신고했다.

하지만 형제는 신고 당시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못하고 "살려주세요"만을 외친 채 전화를 끊었다. 5분 뒤 소방서에서 휴대전화 위치추적으로 형제의 거주지를 찾았지만 이미 형제는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뒤였다.



형 A군은 전신 40%에 3도 화상을, 동생 B군은 전신 5%에 1도 화상을 입어 위중한 상태다.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사고 발생 나흘째인 현재까지 장기 손상 등으로 의식을 찾지 못하고 중태에 빠져 있다.

형제를 담당해 온 드림스타트센터 관계자는 동생 B군의 화상 피해가 비교적 경미한 것에 "불길이 번지자 큰 아이가 동생을 감싸다가 상반신에 큰 화상(3도)을 입었다고 한다"며 "동생은 형 덕분에 상반신은 크게 다치지 않았으나, 다리부위에 1도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고 17일 말했다.

초등생 형제, '엄마 반대'에 유치원도 못 갔다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에 재학 중인 형제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에 단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머니 C씨(30)씨 '아이들을 스스로 돌보겠다'는 이유로 매 학기 초 돌봄교실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 인천 미추홀구 주민센터와 드림스타트센터 등에 따르면 형제는 2018년 5월 형 A군이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뒤 학교로부터 "심리상담 등 치료가 필요하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지자체 등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센터 측은 A군 가정에 연락해 2018년 8월부터 2019년 5월까지 형제에게 심리상담 및 놀이치료를 진행했다. 또 어머니 C씨도 가정폭력에 시달려 이혼 끝에 우울감 등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해 함께 심리상담 치료를 진행했다.

아울러 동생 B군도 단 한 번도 보육시설을 다니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C씨에게 형제를 지역아동센터에 보낼 수 있도록 권유했다.

하지만 C씨는 곤궁한 생활 탓에 보육시설을 보내지 못했다면서도 앞으로도 생계가 바빠 '보육시설에 보낼 계획이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 센터는 C씨를 수차례 설득했으나, 그때마다 C씨는 연락이 닿질 않고 센터 입소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등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또 센터는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두 형제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놀이키트나 스마트폰 등을 지원했다. 그러나 식품 등 일부 지원은 어머니 C씨가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여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돌봄교실' 갔다면 참변 피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셋이 사는 두 형제는 기초생활수급 가정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사고 당일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학교가 비대면 수업을 진행한 날이었다. 형제가 어머니 C씨가 없는 사이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려다 변을 당한 셈이다. 등교했더라면 급식으로 끼니를 채워 화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등교하지 않더라도 '돌봄교실'을 신청하면 급식지원은 가능하다. 하지만 형제의 모친 C씨는 돌봄서비스 제공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사고 당시 지인을 만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돌봄교실을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는 형제는, 돌봄교실이 운영되던 비대면 수업 기간에도 집에서 원격수업에만 출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지혜 디자인기자 /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이지혜 디자인기자 /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어머니 C씨, 과거 3차례 '아동학대' 신고…화재사고 막을 수 있었나
형제의 어머니 C씨가 과거 자녀들을 방임했다는 신고가 3차례 접수되기도 했다.

지난 17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2018년부터 인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 "어머니 C씨가 두 아들을 돌보지 않고 방치한다"는 신고가 총 3차례 접수됐다.

기관은 3번째 신고를 받은 뒤 C씨를 방임 및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인천가정법원에 보호 명령을 청구했다. C씨가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보이고 경제적 형편상 방임의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어머니와 아이들을 격리해달라"는 보호 명령 청구였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달 27일 보호 명령 청구를 기각하고 C씨에게 6개월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형제에게도 12개월간 상담을 진행하도록 했다. 화재 사고는 법원이 격리조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 기간에 발생했다.

경찰은 수사 결과 C씨에게 아동복지법위반(신체적 학대 및 방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불구속 입건한 뒤 지난달 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를 미뤄 '라면 화재' 사건은 어른들의 돌봄 공백, 행정·사법 당국의 적극적인 아동보호 조치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참변으로 보인다.

한편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중인 A군과 B군은 사고 발생 나흘째인 현재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사고경위와 함께 C씨의 아동학대 등 추가 혐의를 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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