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무능’의 반작용으로 태어났다. 도덕적 하자가 있었다. 그래도 국가 경영에 비교 우위가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이어진 박근혜 정부까지 보수 정권 9년.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통령 탄핵까지 당했다. 보수의 ‘부패’는 문재인 정권 탄생의 자양분이 됐다. 돌이켜보면 보수 정권이 사회·경제정책, 산업·금융정책, 고용, 교육 등의 분야에서 뭐 하나 제대로 보여준 게 없었다. 부패했는데 무능하기까지 한 거다.
하지만 불법 여부를 떠나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법이다. 진보의 존립 근거였던 그 가치 말이다. 현 집권 세력이 야당이었다고 생각해보자. 도덕적 우월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던 진보 진영에서 이런 사안을 그냥 넘겼겠나. 더 모질게 몰아붙였을 게 자명하다. ‘내로남불’을 넘어 ‘이제 보니 무능한데 부패까지 됐네’라는 비아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유능한 줄 알았던 보수는 무능했고, 도덕적이라 여겼던 진보가 부패했다. 진보고 보수고 별 차이가 없고 모두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경쟁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며 더 높은 질의 정치를 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헛발질을 극대화해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는 정치가 판을 치는 게 여의도의 현실이다. 정치 불신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야당 복’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집권 4년 차 아직도 과거 정부 탓을 하는 사이, 보수정당은 진보적 정강·정책을 내세우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사과하는 등 좌클릭을 시도하고 있다. 실천 여부를 지켜봐야겠지만, 여야 지지도가 눈에 띄게 좁혀졌다. 민심의 결과가 단순히 야당의 발목 잡기 때문이었을까. 정권의 성공을 위해선 열성 지지층을 넘어 중도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과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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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정권의 모든 것을 반대하는 게 진보고, 보수가 아니다. 자진들의 가치를 지켜나가고,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는 게 진정한 진보고 보수다.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아니다. 타자다. 진보 입장에선 보수고, 보수가 바라보는 진보다. 보수 입장에서 진보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 진보가 유능해져야 보수가 자극을 받는다. 보수가 보수다워야 진보가 진보다워진다.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고도 한국은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겨운 얘기지만 정치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경제와 사회는 눈부시게 변했는데, 정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아니 다양성과 공존을 꺼리게 하고 극단의 이분법을 강요하고 있으니 오히려 퇴행했다고 보는 게 맞다. ‘진보는 뻔뻔하고 보수는 비겁하다’는 한 정치인의 말은 그래서 타당하다. ‘유능하면서 부패하지 않은 진보와 보수’를 기대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