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촉발한 '지역화폐' 논쟁…"경제 사라지고 정치만 남아"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김훈남 기자 2020.09.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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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김종택기자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9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경기사진공동취재단) 2020.09.09.  jtk@newsis.com[수원=뉴시스] 김종택기자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9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경기사진공동취재단) 2020.09.09. [email protected]


지역화폐 실효성 논란이 ‘세(勢) 싸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국책연구기관의 분석보고서에 대해 “얼빠졌다”며 관련자 문책까지 운운하고, 경기도 싱크탱크인 경기연구원이 가세해 보고서 반박에 나섰다.

여기에 여당 중진인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역화폐 효과를 주장하며 이 지사 지원사격에 나섰다. 학계에선 여권 거물급 정치인의 원색적인 목소리가 앞선 탓에 연구결과의 논리성과 합리성보다는 정치 힘 싸움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역 화폐 발행할수록 손해” vs “추가 소비효과 57%”
/사진=한국조세재정연구원/사진=한국조세재정연구원
논란의 발단은 국무총리실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15일 발간한 보고서다. 송경호·이환웅 부연구위원은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지역화폐 발행 효과와 비용 등을 계산했다.



지역화폐가 대형마트에서 지역 소상공인으로 매출을 이동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인근 지역의 소비감소를 전제로 한 만큼 중앙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마이너스 효과가 난다는 게 골자다.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사용지역을 제한한 지역화폐 특성 탓에 인근 지역 소비를 뺏어오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선 지자체 간 지역화폐 발행 경쟁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결국 전체 소비는 그대로인데 발행 비용에 따른 손실이 나온다는 주장이다. 송 연구위원 등은 지역화폐 발행비용과 보조금 등을 고려한 2020년 순손실을 2260억원으로 계산했다.

이재명 지사는 즉각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반박했다. 조세연은 경기도가 지역 화폐를 본격 발행하기 이전 통계를 근거 삼아 실제 효과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 문재인 정부의 지역화폐 정책 및 다른 국책연구기관 연구 결과와도 상반된다는 주장이다.


이 지사는 “얼빠진 정책연구기관”이라고 원색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며 관련자 문책을 주장, 논란을 키웠다. 경기도 싱크탱크인 경기연구원도 이 지사와 동일한 논리를 내세우며 “지역화폐 결제액이 증가할 때 추가소비 효과가 57% 발생한다”고 거들었다.

조세연이 중앙정부 입장에서 제로섬 현상에 주목했다면 이 지사와 경기연은 지역화폐 자체의 효과를 강조한 셈이다.

여기에 경기 성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김태년 원내대표와 소상공인 단체도 가세하며 국책연구기관과 지자체 간 논쟁이 중앙정치 이슈로 번졌다.

김 원내대표는 17일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며 “지난해 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지역화폐의 승수효과가 생산액의 1.78배, 부가가치는 0.76배로 긍정적인 효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학계 “정치가 연구 흔들어서야”...원희룡 "찍어누르기는 토론 아냐"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원희룡 제주도지사. 2020.07.15.   bluesoda@newsis.com[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원희룡 제주도지사. 2020.07.15. [email protected]
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이 지사 주장에 비판이 여럿 제기됐다. 조세연 연구 결과가 타당하다는 주장과 더불어, 국책연구기관의 독립적 연구를 정치 논리로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각에선 “처음부터 경제가 아닌 정치 논쟁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조세연 송경호 박사와 이 지사가 계급장 떼고 100분 토론하면 어떻게 될까?”라며 “이 지사가 논리와 팩트로 완전 제압당하면서 혈압 상승해 난리굿 피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지역화폐를 특정지역, 특정시기의 스티뮬러스(자극)로 사용하는 것은 종이돈을 찍건 카드시스템을 활용하건 용처와 시기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소비자 효용 극대화 측면에서 하수”라며 “스티뮬러스는 그저 경기변동의 대처법에 불과하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가 없다. 성장론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페이스북에서 “예전에 지역화폐 도입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며 “조세연 박사들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낸 듯 하다”고 했다. 또 “이런 연구 결과를 보고 이 지사는 역정을 내는데, 역정을 내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근거가 없다’고 화를 낸다”며 “‘근거가 없다’고 화를 내는 근거가 무엇인지 제시하지는 않은 채, 지역화폐가 좋은 제도인 이유는 ‘주지의 사실’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독립적 연구 보장’을 주장했다. 원 지사는 “우리는 비판과 수용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며 “하지만 세몰이, 찍어누르기는 토론이 아니다. 특히 전문가들의 입을 막으려는 듯한 언행은 토론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혈세를 들여서 국책연구기관을 만들고 독립적 연구를 보장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냐”면서 “정책효과를 검증한 연구에서 반영할 것은 반영하고, 보완하거나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모든 정책의 목표는 국민 편익 향상”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이번 논란이 처음부터 ‘경제’가 아닌 ‘정치’ 영역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지사가 정치 논리로 정부·여당과 ‘정책 대결구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긴 논란이라, 조세연 연구 결과의 합리성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두고 이견이 불거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논란도 처음부터 정치 논리가 앞선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가 학문, 연구 영역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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