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 거부'한 의대생에 기회 한번 더? 부담스러운 정치권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20.09.16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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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본관에서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2021년도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의 응시율이 14%에 그치면서 기존 1일 3회 실시하던 시험이 1회로 변경됐다. / 사진=머니S 장동규 기자8일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본관에서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2021년도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의 응시율이 14%에 그치면서 기존 1일 3회 실시하던 시험이 1회로 변경됐다. / 사진=머니S 장동규 기자


당정과 대한의사협회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집단행동을 풀지 않던 의대생들이 뒤늦게 단체행동을 유보하기로 결정했지만 여론의 싸늘한 반응에 밀려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미응시에 따른 의사 공급부족 문제가 내년부터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사파업 당시 대화의 물꼬를 텄던 정치권이 또 한번 꼬인 실타래를 풀지 관심이 쏠린다.

15일 의과대학 단체 등에 따르면 대한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전날 성명서를 내고 국시 거부와 동맹 휴학 등 단체행동을 중단했다. 의대협은 단체행동 중단 배경에 대해 '보건의료정책 상설감시기구 발족으로 협회가 의결한 목표점을 달성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 기구는 지난 4일 당정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체결한 합의문을 충실히 이행하는지 감시하는 목적이다.



졸속합의와 합의무효를 주장해온 이들에게 감시기구 설치가 단체행동 중단의 명분으로 약하다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후퇴명령에도 불구하고 애국심에 불타 전장에 홀로 남은 학도병이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백기를 든 상황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의대협은 단체행동을 주도한 의협에 이어 최전선에 섰던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까지 업무에 복귀하자 스스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고 토로한 바 있다.

국시 거부 2726명, 의사수급 현실화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 국가고시 응시 대상자 3172명 중 446명만 접수했다. 2726명은 응시를 거부한 상태다. 국시를 통해 매년 3000여명의 의사들이 배출되는데 내년에는 400여명에 그치는 것이다. 의료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당장 전국 대학병원 인턴의 수급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인턴은 주로 업무환경이 고된 응급실 진료나 수술실 보조 역할을 수행한다. 해당 인원이 충원되지 않으면 간호사를 비롯해 전공의 등이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결국 전임의와 교수로 업무부담이 전가돼 의료서비스의 질적 하락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공공의료의 수급부족 문제도 거론된다. 한해 배출되는 의사가 부족해지면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수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낙도나 오지같이 민간병원이 미치지 않는 공적의료를 전담하는 공중보건의 숫자가 줄면 지역별 의료격차는 더 벌어진다. 애초에 정부가 추진한 의료정책과 반대로 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내년도 충원해야 할 공중보건의는 500명 정도다. 정부는 300명 내외의 인력 공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군의관의 경우 전문의 중심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당장 큰 차질이 빚어지진 않지만 민간병원에서의 의사 수요 등을 고려하면 의사배출 부족에 따른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공중보건의의 경우 공동활용, 배치 축소 등을 통해 인력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가 동맹 휴학을 이어가기로한 1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건물 창가에 의사국가고시 관련 서적이 놓여져 있다. 이날 의대협 회의에서 국가고시 거부를 지속할지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2020.09.11.  myjs@newsis.com[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가 동맹 휴학을 이어가기로한 1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건물 창가에 의사국가고시 관련 서적이 놓여져 있다. 이날 의대협 회의에서 국가고시 거부를 지속할지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2020.09.11. [email protected]
정치권, 꼬인 실타래 풀 수 있을까
상황이 이렇자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한 정치권이 또 한번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지난 의료계와의 갈등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번번이 깨지자 정치권이 나서 협상의 물꼬를 텄다.

여건은 녹록치 않다. 정부에 비해 부담은 덜하지만 정치권 역시 의사 국시 거부 학생을 전면에 나서 구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형평성과 공정성 논란이 제일 큰 걸림돌이다. 이미 정부가 두 번의 국시 연기로 기회를 준 마당에 또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단 주장을 내세울 경우 역풍이 불 수 있어서다. '국시 접수를 취소한 의대생의 구제에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날 기준 56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여당 내에서는 의대생 구제 문제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공공의료 공백에 따른 낙후지역 주민 피해를 고려하면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문제로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불공정 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관계자는 "여론에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고민은 깊지만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라며 "의대생들이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구제 요구를 해온다면 정치권의 역할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학생과 싸우기보다 기회를 주고 교육을 통해 개선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표적 진보학자로 알려진 정대화 상지대 총장은 최근 언론 칼럼에서 "국민 여론이 싸늘하고 구제에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이 있다는 것도 모르진 않지만 정부와 어른들이 학생을 상대로 싸워서는 안된다"며 "의대생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집단논리에 빠진 선배들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하고, 의대생들에게 교훈이 필요하다면 교육과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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