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지마" "두고봐"…미국 눈치에 중국까지 '서글픈 삼성'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09.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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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지마" "두고봐"…미국 눈치에 중국까지 '서글픈 삼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어요. 미국, 중국의 입만 보고 있습니다."

13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삼성전자 임원 A씨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오는 15일부터 시행되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제재를 앞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넛크래커 처지가 된 데 대한 하소연이다.

A씨는 "양쪽에서 어느 손을 잡을지 강요하는 상황"이라며 "둘다 놓을 수 없는 손이라 난감하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미국과 중국에서 벌어들인다. 삼성전자와 더불어 국내 반도체 양대업체인 SK하이닉스의 마케팅부문 임원 B씨도 "지금 상황에서는 미중 당사자가 해법을 내지 않는 한 묘수가 없다"고 말했다.



화웨이 제재안을 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중 양쪽의 눈치를 모두 살펴야 하는 상황이 2년 이상 악화일로로 치닫자 업계에서는 "트럼프, 시진핑 두 사람의 자존심 싸움에서 튄 불똥이 한국에 와서 산불이 됐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넛크래커 신세 악화일로…"불똥이 산불 됐다"
/사진=뉴스1/사진=뉴스1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3.2%, 금액으로 7조37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화웨이 관련 매출 비중이 11.4%, 약 3조원으로 추계된다.



오는 15일부터 화웨이 제재로 당분간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17일 화웨이 제재안이 발표된 직후 양사가 미국 정부에 화웨이에 대한 특별수출 승인을 신청했지만 전망은 부정적이다. 재임 기간 내내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대(對)중 압박 전략을 고수해온 트럼프 행정부가 오는 11월 대선을 코 앞에 두고 미중 분쟁의 상징이 된 화웨이에 아량을 베풀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를 대신해 샤오미나 오포, 비보 등 다른 중국업체를 수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가능성일 뿐"이라며 "확정적인 것은 화웨이 매출이 사라지는 것뿐인 상황에서 기업이 체감하는 부담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말했다.


3대 업체 화웨이 매출만 13조…"D램 추가 침체 우려도"
"팔지마" "두고봐"…미국 눈치에 중국까지 '서글픈 삼성'
화웨이 수요가 한순간에 없어지고 시장 수요가 공급에 못 미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제조사의 공급단가 협상력은 떨어질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 D램 제조사인 미국 마이크론도 지난해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화웨이에서 올렸다.

시장 관계자는 "연매출로 따져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서만 13조원 상당의 물량이 남아돌게 되는 셈"이라며 "하반기 반도체 가격을 추가로 끌어내리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 4분기 D램 가격이 3분기보다 10%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화웨이 충격이 이런 전망을 더 부채질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화웨이 죽으면 삼성도"…한국 걸고 넘어지는 중국
"팔지마" "두고봐"…미국 눈치에 중국까지 '서글픈 삼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더 괴롭히는 것은 중국의 반응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즈는 지난 11일 샹리강 베이징 정보소비연대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를 인용해 "한국 기업이 화웨이에 대한 공급을 장기간 중단한다면 중국 시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관영매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정부 입장을 밝혀온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보낸 경고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신문은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끊는 조치로 일부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도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은 자제하더라도 다른 산업부문에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애꿎은 보복 대상이 될 가능성을 두고 국내 기업들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2만7000여개사로 집계된다.

재계 한 인사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트라우마 이후 기업들이 중국 눈치를 보느라 우리 정부에조차 애로사항을 얘기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실적 악화에 더해 미중 정부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상황이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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