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유니콘' 에이프로젠 3사 합병 좌절된 이유는?

머니투데이 박계현 기자 2020.09.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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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당국, 신약 파이프라인 등 기업가치 산정 보수적 접근…CB 가치도 '글쎄'

국내 바이오업종 1호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인 에이프로젠의 그룹사 합병이 무산됐다. 회사는 코스피 상장사 에이프로젠KIC (1,571원 ▼145 -8.45%), 코스닥 상장사 에이프로젠 H&G (640원 ▼30 -4.48%)와 합병을 추진해 사실상 우회상장을 시도했으나 감독당국과 기업가치 산정에 대한 이견으로 합병을 철회했다.



10일 금융감독원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에이프로젠KIC는 지난 8일 에이프로젠, 에이프로젠H&G과의 3사 합병을 철회했다.

앞서 지난 4월 3사는 합병을 결정했다. 에이프로젠KIC가 에이프로젠·에이프로젠 H&G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이다. 에이프로젠과 에이프로젠KIC는 지주회사인 지베이스가 각각 지분 41.92%, 14.5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지베이스는 두 법인의 대표이사인 김재섭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에이프로젠은 김재섭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통해 "금감원에 제출한 증권신고서 및 외부평가의견서를 여러 차례 정정하면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며 "그러나 회계법인의 평가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금감원의 염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다"고 합병 철회 이유를 설명했다.

에이프로젠, 여섯 차례 정정신고서 제출…기업가치 12.6% 낮췄지만
에이프로젠은 금감원이 기업가치 산정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체 수정 두 번을 포함 여섯 차례나 정정신고서를 제출했다. 외부평가법인의 평가의견서도 네 차례 수정했다.

금감원은 에이프로젠에 공문을 보내 증권신고서 정정을 재차 요청했으나 에이프로젠 경영진은 추가적인 기업가치 조정은 어렵다고 판단해 합병을 포기했다. 그만큼 기업가치 산정을 두고 금감원과 에이프로젠 측의 입장차가 컸다.


에이프로젠은 지난 4월 제출한 첫 증권신고서에서 비상장법인 에이프로젠의 기업가치를 1조6888억원(주당 3만2603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회사가 지난해 5월 린드먼아시아인베스트먼트(이하 린드먼아시아) 측으로부터 200억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할 당시 책정한 기업가치(1조7628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후 정정신고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기업가치는 여섯 차례 정정을 거쳐 1조5409억원까지 낮아졌다. 린드먼아시아를 상대로 발행한 전환사채의 청구가액 대비로도 12.6%까지 기업가치를 낮췄지만 감독당국은 이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다.

금융당국, 신약 파이프라인 상용화에 보수적
에이프로젠은 여섯 차례에 걸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는 동안 신약 파이프라인에 대한 설명을 매번 수정했다. 특히 현재 개발 중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 바이오시밀러(AP-096)의 개발 단계 및 상업화 가치를 산정하는 부분에서 감독당국과 의견이 갈린 것으로 보인다.

에이프로젠은 유방암치료제 허셉틴(AP-063)과 휴미라 바이오시밀러를 통해 오는 2026년 각각 4167억원, 4583억원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반영한 2026년 추정 매출은 1조1779억원, 매출총이익(매출액에서 매출원가를 공제한 금액)은 8600억원이다.

에이프로젠은 "바이오시밀러 관련 주요 파이프라인별 매출은 바이오산업 평가 특성을 반영해 임상 단계별 성공 확률을 현금흐름에 고려한 위험조정순현재가치법으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위험조정순현재가치법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임상을 통과해야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특수성을 반영한 계산법이다. 미국 연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바이오시밀러의 임상 단계별 성공확률은 1상이 90%, 2상은 80%, 전체는 65%로 신약보다는 높은 편이다.

그러나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는 미국 임상 3상을 준비 중이며, 휴미라 바이오시밀러도 아직 미국 임상 1상을 마친 단계에 불과하다. 회사 측은 허셉틴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2024년, 휴미라 바이오시밀러는 2027년 미국에서 품목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회사는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 중 리툭산은 2021년 1분기 임상1상 진입을 예정하고 있고 허셉틴은 2020년 4분기 임상 3상 진입 계획, 휴미라는 2021년 3분기 비임상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신라젠 펙사벡의 간암 임상 3상 중단, 한미약품의 당뇨신약 기술수출 반환 등 잇따라 악재가 터지면서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 기업에 대해 심사기준을 높인 것도 이번 합병 중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코스피에 상장한 SK바이오팜의 경우 이런 추세를 감안해 기업가치 산정시 이미 상업화에 도달했거나 임상 단계가 높은 신약을 3개만 추렸다. 당시 SK바이오팜은 임상 2상을 준비하거나 임상 1상을 진행하는 파이프라인은 상장 당시 기업가치 산정에서 아예 배제했다.

감독당국, 에이프로젠 시장가치에도 의문..."불확실성 해소 못해"
금감원은 에이프로젠이 유니콘기업으로 인정받는 근거가 된 린드먼아시아 전환사채 청구가격도 시장가치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린드먼아시아는 당시 린드먼아시아투자조합10호(50억원), 린드먼아시아투자조합12호(50억원), 린드먼-우리 기술금융투자조합제13호(100억원)을 통해 200억원을 투자했다.

2019년 5월 당시 투자조건으로는 특별상환청구권이 제시됐다. 에이프로젠은 "전환사채 발행일 이후 2년 이내에 한국거래소의 코스피 또는 코스닥에 상장하지 못할 경우 2년이 경과하는 날(2021년 5월 31일)부터 매 3개월에 해당하는 날 본 사채 원금의 전부 또는 일부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 특별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공시했다.

또 전환사채의 만기일은 2024년 5월 31일로 만기 시에는 연복리 5.0%, 특별상환시에는 연복리 12%의 조건이 붙었다. 전환사채 이자율은 만기 중에 주식으로 전환하지 못할 경우에 지급하는 이자율로, 에이프로젠은 2021년 5월까지 상장하지 못하면 연이율 12%의 금리를 린드먼아시아 측에 지급해야 한다. 고리의 이자까지 지급해야 하는 전환사채 청구가격을 기반으로 산정한 기업가치를 합병법인인 에이프로젠KIC 주주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 신약이나 바이오시밀러가 현재 제품화된 상황이 아니다 보니 미래 수익가치를 합병가로 산정하는데 있어 불확실한 부분에 대해 계속 보완 요청을 하게된 것"이라며 "(기업가치 산정과 관련) 증권신고서를 포함해 객관적인 자료가 미흡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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