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거래 ‘IT활용’ 준비하자[MT시평]

머니투데이 이종우 경제평론가 2020.09.11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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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거래 ‘IT활용’ 준비하자[MT시평]


증권회사가 온라인 거래를 시작했을 때 누구도 판이 이렇게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도입 3년 만에 전체 거래의 70%가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가장 큰 수익원이던 주식거래 수수료가 10년 만에 증권사 이익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존재로전락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변화를 한번 받아들이면 세상이 얼마나 빠르고 크게 바뀌는지 보여준 사례다.
 
똑같은 변화가 부동산 시장에서 일어날 수는 없을까.
 
주식보다 진행은 느리겠지만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다. 부동산 거래가 IT(정보기술)를 통해 이뤄질 경우 투명성 확보라는 부수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부동산은 가계의 가장 큰 자산이지만 매매시스템이 취약해 담합, 허위매물 등 가격조작 유혹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정부가 부동산 감독기구를 만들겠다고 나설 정도인데 거래 투명성만 확보되면 이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다.
 
어느 나라든 부동산과 IT의 결합도는 높지 않다. 다른 산업에 비해 IT 활용도가 3분의1밖에 되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둘이 따로 노는 건 부동산 시장에서 유통되는 정보가 비대칭적이어서다. 매수와 매도 그리고 거래를 알선하는 곳이 알고 있는 정보가 다 다르고 그 정보가 돈으로 연결되므로 IT를 활용한 정보를 도입하기 힘들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부동산의 특성 때문에 생겼다. 부동산은 똑같은 물건이 없어 공통된 가격을 산정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도 아파트만 약간 동질적일 뿐 나머지는 지역과 조건에 따라 가격이 제각각이다. 증권거래소처럼 집합적으로 거래를 주선하는 곳이 없는 점도 IT의 활용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매매가 개별 중개업소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정보수집은 물론 실시간 가격을 포착하는 게 힘들다. 여기에 관련 법규가 복잡하고 물건이 고가여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오프라인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점까지 가세해 IT 활용을 어렵게 만든다.
 
선진국은 이런 제약요인을 플랫폼을 통해 돌파했다. 2019년 미국 주택 구매자의 절반이 부동산플랫폼을 통해 매물정보를 획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우리는 여러 번 부동산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시도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은 지역에 나와 있는 매물을 소개하고 실거래가격을 알려주는 정도로만 활용된다.
 
부동산 거래 플랫폼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데이터정책 변화가 있어야 한다. 미국과 영국은 공공부문 부동산 정보를 민간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관련 산업이 발전했다. 미국의 주거용 부동산 거래 1위 업체 질로(Zillow)가 2012년 미국 지리청이 개방한 지도 정보와 인구조사국의 인구통계 정보를 활용해 미국 주거용 부동산 시장의 데이터 허브로 성장한 게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영국 주플라(Zoopla)도 토지등기국이 공개한 부동산 실거래 정보를 통해 성장했다. 물론 공공데이터만 있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여기에 기업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거래데이터를 결합하고 IT에 기반한 빅데이터 기술을 합쳐 가격분석과 실시간 거래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선도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IT와 부동산 거래를 결합하는 비즈니스가 본격화할 것이다. 부동산이 규모가 가장 큰 시장이어서 이를 지배하는 플랫폼은 큰돈을 벌 수 있는데 기업이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가 자리잡은 것을 보면 거래의 안정성 확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변화는 천천히 시작되지만 순식간에 완성된다. 가능성을 인정하고 빨리 대비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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