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KB' 만들어낸 뚝심…윤종규 3연임 가능할까

머니투데이 양성희 기자, 김평화 기자 2020.09.08 04:30
글자크기

[MT리포트]윤종규의 도전(上)

편집자주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3연임 출사표를 냈다. 그와 경합하는 후보자 명단도 추려졌다. 노동조합이 반대하지만 금융권은 윤 회장의 3연임 가능성을 높게 본다. 이는 곧 지난 6년간의 성과와 리더십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는 의미다. 결과는 오는 16일 나온다.

윤종규 6년, 숫자가 말한다
KB금융 실적/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KB금융 실적/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3년 연속 3조원대 순이익 달성, 연평균 자산 성장률 11.8% 기록, 시가총액 10조원 이상 증가….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경영실적은 숫자가 말한다. KB금융 역사상 처음으로 ‘연임 회장’ 타이틀을 거머쥔 윤 회장이 3연임을 바라보는 건 지난 6년간 새롭게 갈아치운 숫자 덕분이다.



윤 회장은 연임에 성공한 2017년, 리딩금융의 자리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2008년 이후 9년 만이었다. 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3조원대 순이익을 거뒀다. 이듬해, 지난해에도 3조원대의 순이익을 올렸다. ‘반짝 성장’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한 셈이다. 2017년 이후 KB금융은 신한금융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이 시기 양적·질적 성장을 모두 이뤘다. 지난 2분기에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다시 리딩금융 자리에 올랐다.

윤 회장이 2014년 11월 취임한 이후 자산규모도 줄곧 늘었다. KB금융의 자산규모는 2014년 말 308조원에서 올 상반기 570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특히 ‘은행 쏠림’을 개선한 게 두드러진다. 비은행 계열사 총자산이 같은 기간 33조원에서 143조원으로 급증했다. KB금융의 연평균 자산 성장률은 다른 금융그룹과 비교하면 더 돋보인다. 이 기간 KB금융은 11.8%의 자산 성장률을 기록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의 경우 각각 10.3%, 6.3%였다. 윤 회장은 이처럼 KB금융의 몸집을 키우면서 동시에 비은행 부문의 약점을 메웠다. 우리파이낸셜(현 KB캐피탈),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현대증권(현 KB증권)에 이어 최근 푸르덴셜생명을 품었다. 13개 자회사를 거느리며 종합금융사다운 포트폴리오를 탄탄히 갖췄다. 4대 금융그룹 중 가장 포트폴리오의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글로벌 사업이 밀린다는 평가는 옛말이 됐다. 글로벌 자산 규모는 취임 당시인 2014년 45억5800만달러에서 지난 2분기 167억7300만 달러로 늘었다. 올 들어서만 KB국민은행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미얀마에서 잇따라 낭보를 전했다. KB국민카드는 태국에 진출했다. 코로나19(COVID-19) 악조건을 뚫고 인도네시아에서 국민은행이 부코핀은행 최대주주로 올라선 건 KB금융의 종합금융 역량 덕분이었다. 윤 회장은 글로벌 투자기업 칼라일그룹과 손잡으며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시동도 걸었다.

시장에서도 ‘금융 대장주’로 자리 잡았다. 2014년 말 14조원대였던 시가총액은 15조9047억원(7일 기준)으로 뛰었다. 같은 기간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는 순위 하락을 면하지 못했다. 신한의 시가총액은 21조1000억원대에서 13조8922억원, 하나는 9조3000억원대에서 8조4218억원으로 각각 내려앉았다. 증권가에선 KB금융을 금융 톱픽으로 꼽는 데 이견이 없다. 김지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비은행부문을 확대하려면 자회사를 키우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고 적절한 인수합병이 필요한데 윤 회장이 결단력 있게 추진해 성장성, 수익성면에서 긍정적인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


'부드럽지만 강하다'…윤종규 리더십
윤종규의 '말말말'/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윤종규의 '말말말'/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온화하다”, “겸손하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성품을 말하는 형용사들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난 면모일 뿐이다. 그를 아는 이들은 부드러움 뒤에 가려진 ‘강함’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KB금융그룹의 경영사는 ‘KB 사태’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한다. 이를 윤종규 이전, 윤종규 이후로 등치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윤 회장은 2014년 11월 KB금융 회장과 KB국민은행장을 겸직하면서 경영진의 갈등으로 얼룩진 KB를 ‘원(One) KB’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지배구조를 안정화했고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체계화했다. 2017년 11월 회장직을 연임한 뒤에는 은행장 자리를 허인 행장에게 넘겼다. 일련의 과정에서 ‘누구 사람’, ‘누구 라인’이라는 분류는 사라졌다.

그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나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처럼 보스 기질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특유의 스타일로 조직을 장악했다. 그의 ‘원 펌, 원 케이비(One Firm, One KB·하나의 회사, 하나의 KB)’ 전략은 실적 면에서 괄목한 성과로 이어졌다. 구성원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도 됐다. 그룹의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도 가져 왔다. KB금융 2금융 계열사 관계자는 “경쟁사들에게 하나의 KB로 인식되면서 업계 위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KB금융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윤 회장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계열사 CEO를 능력 위주로 기용하다 보니 파벌 갈등도 없고 ‘원 KB’를 ‘원 팀’으로 뭉치게 했다”고 말했다.

KB금융 임직원들은 윤 회장의 ‘듣는 리더십’에 높은 점수를 준다. 실제 윤 회장은 CEO를 ‘Chief Enabler Officer’라고 표현한다. 구성원을 ‘돕는 사람’(Enabler)이라는 의미에서다. KB금융 한 임원은 “회의, 이사회를 진행할 때 발언권을 가장 먼저 담당 임원에게 준다”며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지막에 보충 설명하는 식으로 덧붙이는 편”이라고 말했다. “매번 임직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임직원들을 파악하고 권한을 준다. 실제 후계자 육성은 그가 공들인 분야 중의 하나다. 조직의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3연임 도전을 앞두고도 ‘후배들의 앞길’을 이야기하며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그의 시선은 미래로도 향해 있다. 윤 회장은 그동안 디지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해 남다른 경영 철학을 드러내 왔다. 그는 과거 “알리바바, 구글과 같은 IT 기업이 KB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는 의아하게 받아들였던 임직원들도 공감하기 시작했다. KB금융의 또 다른 임원은 “몇 년 전 윤 회장이 비대면, 초연결을 강조하면서 디지털 분야 전반에 걸쳐 대비를 당부했는데 코로나19와 상황이 맞아떨어졌다”며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ESG 경영에 주력하는 건 리딩금융그룹의 책임감 때문이다. 윤 회장은 “친환경 금융을 실천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건 리딩금융그룹 위상에 걸맞은 활동”이라고 소신을 피력해 왔다.

윤 회장은 끈질긴 면모도 갖고 있다. 통신과 금융을 융합한 알뜰폰 서비스 ‘리브엠’을 탄생시킬 때도 금융당국의 마음을 돌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은행법 등 각종 규제에 가로막혔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법 개정은 어려우니 알뜰폰 사업을 은행 부수 업무로 분류해달라고 금융당국을 계속 설득해 뜻을 이뤘다. 최근 푸르덴셜생명 인수는 생명보험사를 사기 위해 꾸준히 인내하면서 시장을 지켜보다가 건진 것이다.

KB국민은행 노조가 성과위주의 경영방식을 거론하며 그의 연임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지만 은행권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KB국민은행의 노동강도는 윤 회장 이전보다 분명 강할 수 있지만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에 비하면 여전히 약하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해 KB국민은행 파업 때 은행업무가 거의 차질 없이 돌아간 것처럼 오히려 유휴인력의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조직의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는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한 금융그룹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덜 빡빡했던 조직문화를 정비하다 보니 노조와 관계가 악화된 측면도 있는 같다”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

윤종규 vs 노조, 뿌리깊은 감정의 골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 사진제공=KB금융지주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 사진제공=KB금융지주
윤종규 KB금융 회장 3연임의 유일한 변수는 노조라고 금융권 사람들은 얘기한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3연임에 근접했지만 KB금융노조는 연임 때에 이어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윤 회장의 성과주의로 업무강도가 높아졌고, 직원들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금융권은 과거의 악연 때문에 생긴 노조의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애초에 윤 회장이 첫 임기를 시작할 때 노조는 그를 선호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2016년 12월 열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선거 직후 노조가 회사 개입 의혹을 주장한 게 발단이다. 이때 박홍배 위원장이 당선됐는데 노조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을 들고 나와 그를 중징계하며 당선을 무효처리 했다. 박 위원장은 이듬해 3월 재선거에서 당선됐다. 같은 시기 경영진 일부가 특정 후보 지지를 요구한 녹음 파일도 등장했다. 윤 회장은 관련 임원들의 사표를 수리하고 노조에 사과했다. 노조는 이를 ‘꼬리 자르기’로 치부했다.

2019년 1월 국민은행 노조는 임단협이 결렬됐다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2000년 12월 주택·국민은행 합병 반대 파업 이후 19년 만의 일이다. 하루짜리 파업이었지만 고객 피해와 은행 인지도 추락 등 부작용이 예상됐다. 그러나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90% 이상의 은행 업무가 비대면으로 이뤄지면서 은행 창구는 한산했다. 은행 인력이 남아돈다는 인식만 부각됐다. 승자 없이 노사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

금융권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윤 회장과 노조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본다. 이 때문에 3연임에 성공한다고 했을 때 노조와 어떤 식으로든 화해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금융산업노조위원장이기도 한 박홍배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자리에 앉은 것도 윤 회장에게 부담이다. 이는 KB금융이라는 큰 지붕 아래 아래에 머물렀던 노사관계가 정치무대로 확장된 것을 의미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윤 회장 임기 동안 노사간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다”며 “'존경받는 사람'과 '성과를 내는 리더'가 양립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에서 윤 회장이 앞으로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라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