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임대료 인하요구권'…20년만에 발동할까

머니투데이 고석용 기자 2020.09.0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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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의 한 노래연습장에 폐업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뉴스1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의 한 노래연습장에 폐업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뉴스1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음식점·PC방 등 소상공인 매출이 급감하면서 '차임증감청구권'이 떠오르고 있다. 경제사정 변동 등으로 매출이 급감할 경우 임대료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20여년 이상 행사되지 않아 '사문화'한 권리라는 인식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같은 재난상황에서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한다. 소상공인업계는 "정부가 해당 권리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소상공인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상공인들 "강제휴업 때만이라도…임대료 낮춰달라"
7일 소상공인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재확산된 지난달 중순 이후 이날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상가임대료 인하 관련 청원만 20여 개가 등록됐다.

가장 동의를 많이 받은 청원은 '강제 휴업하는 자영업임차인들의 임대료도 면제해달라'는 글이다. 청원인은 "강제휴업의 피해는 아무도 같이해주지 않고 고스란히 자영업 임차인에게 100% 전가되고 있다"며 임대료 인하나 정부지원을 호소했다. 해당 청원은 이날 오후까지 90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그밖에 '임대료 일부 지원·감면 정책을 마련해달라' 등 20여개의 청원이 각각 10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한 소상공인 커뮤니티에는 "코로나19로 신체의 자유, 집회의 자유, 프라이버시, 영업권리 등이 모두 조금씩 제한당하고 있는데 왜 건물주의 재산권만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냐"는 내용의 게시물이 줄을 이었다. 소상공인들은 "법적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며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에 명시된 차임증감청구권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상가임대차법 11조 "경제사정 변동 시 임대료 인하 청구 가능"
사진=청와대 청원게시판사진=청와대 청원게시판
소상공인들이 언급하는 차임증감청구권은 상가임대차법에 근거한다. 상가임대차법 11조는 "차임(임대료) 또는 보증금이 임차건물에 관한 조세, 공과금, 그밖의 부담의 증감이나 경제사정 변동으로 인해 당하지 않게 된 경우 당사자는 장래의 차임 또는 보증금에 대한 증감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문제는 차임증감청구권이 최근 20여년간 사용되지 않아 사문화됐다는 점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이 임차인의 차임증감청구권을 인정한 사례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 서울 강남권 상가건물에서 진행한 소송 외엔 없다. 당시 법원은 경기여건을 고려해 임대료를 16% 감면하라며 임차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후에는 관련 재판이 진행 진행되지 않았다.

"코로나19급 타격, 차임증감청구권 주장 가능…정부가 홍보해야"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스1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인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스1


해당 권리를 주장하는 소송이 제기되지 않은 이유는 소송 시 제기될 수 있는 불이익 위험 때문이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 사무총장은 "임대료 몇십·몇백만원 깎아달라고 소송을 했다가 패소하면 막대한 재판 비용만 들게 된다"며 "승소하더라도 재판시간·비용을 빼면 남는 게 없고 다음 재계약 불허 등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소상공인들이 차임증감청구권을 행사하는 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있다. 최광석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이전까지는 급격한 경제변동이 없었기 때문에 차임증감청구권이 행사되지 않았다"며 "코로나19처럼 실물경제가 급격히 악화된 상황이라면 소상공인이 차임증감청구권을 행사해도 법원이 이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도 지난 6월 차임증감청구권 행사 기준에 '경제사정 변동' 외에 '재난상황'을 추가해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사정 변동이 해석의 여지가 모호해 소상공인들이 권리 행사를 포기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차임증감청구권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사무총장은 "PC방이나 노래연습장처럼 영업이 강제 중단된 경우에는 임대료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소상공인들에게 알려야 한다"며 "권리 여부만 명확해져도 소송 아닌 지방자치단체 분쟁조정위원회 등으로 임대료를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도 "임차인에게 해당 권리가 명확하다는 점을 홍보해 상인들이 두려움 없이 권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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