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지옥' 원유 ETN, 바로잡을 '액면병합' 막혔다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20.09.0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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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한 21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WTI 선물 차트를 바라보고 있다. 2020.4.21/뉴스1(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한 21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WTI 선물 차트를 바라보고 있다. 2020.4.21/뉴스1


지난 7일부터 레버리지 ETN(상장지수증권)과 ETF(상장지수펀드)에 대한 건전화 방안이 시행됐지만 가치가 폭락한 ETN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액면 병합은 법무부의 반대로 시행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현행 상법은 '주식'의 액면병합·분할만을 허용하고 있어 일종의 채권인 ETN엔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주된 반대논리로 알려졌다. 이를 시행하기 위해선 근거규정들을 포괄적으로 바꾸는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어 올해 내에 액면병합을 시행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무준비는 이미 '완료'…할지말지 놓고 다투는 금융위·법무부
'개미지옥' 원유 ETN, 바로잡을 '액면병합' 막혔다


금융위는 지난 5월18일 건전화방안을 발표하며 9월부터 ETN의 액면병합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ETN의 지표가치가 하락해 동전주가 되더라도 주식과 달리 액면병합이 불가능해 투기적 수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였다.

현재 한국거래소는 ETN의 액면병합을 시행하기 위한 규정개정을, 예탁결제원도 시스템구축을 마쳤다. 이에 지난 7일부터 바로 병합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관측됐지만 법무부 반대에 부닥쳤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법무부는 현행법상 ETN이 액면병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법은 병합의 대상을 '주식'으로만 한정한다는 것이다. 증권사가 지수변동 만큼의 수익을 투자자에게 보장하는 ETN은 일종의 채권이므로 상법상 액면병합을 허용할 규정이 없다는 설명이다.

금융위는 채권에 대한 규제조항이 없다면 액면병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무부는 법에 (액면병합의) 근거가 없으면 안된다고 한다. 현재 양부처가 서로 입장을 조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도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 입장을 말씀드리기 어렵다. 기존 상법 등에 맞춰 (액면병합을 해도) 되는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상법 외에 전자등록법도 병합의 대상을 '주식'으로 규정하고 있어 포괄적인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는 10월부터 국정감사, 예산안심사 등을 진행하기 때문에 올해 내 시행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높다.

금융위가 대책 발표 전에 법무부와의 조율이 끝났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기광풍이 휩쓴 원유레버리지ETN은 이미 주가가 90% 넘게 하락해 바닥을 기고 있어 투자자들은 액면병합만 기다리고 있다. 액면병합에 긍정적인 증권사들도 원유ETN 정상화 이후 새로운 상품출시를 준비해왔지만 관련 일정을 늦출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괴리율 최대1000%…동전주 된 ETN
'개미지옥' 원유 ETN, 바로잡을 '액면병합' 막혔다
7일부터 시작된 레버리지ETP(ETF+ETN) 대책은 지난 3~4월 원유레버리지ETN에 대한 투기광풍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시행됐다. 최대 1000% 넘게 괴리율이 치솟았던 ETN 가격은 초유의 마이너스(-)유가를 기록하며 폭락이 일어나는 등 시장에 대혼란을 불어왔다.

한국거래소가 괴리율이 정상화될 때까지 거래정지를 반복시행했고 당국의 추가규제책까지 예고하면서 괴리율은 빠르게 낮아졌다.

문제가 됐던 원유레버리지ETN 4종목은(△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 지난 6월중순부터 최근까지 한 자릿수 이내 괴리율을 보이며 실제 원유선물 가격을 거의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

하지만 거래소에 따르면 이들 4종목의 최근 1년 수익률은 지난 4일 기준 평균 -95%에 달한다. 연초 1만원을 훌쩍 넘었던 ETN가격도 같은날 200~300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선방한 미래에셋ETN도 2000원대에서 횡보 중이다.

뒤늦게 괴리율을 잡았지만 동전주로 전락한 이들 종목은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매일 수백만~수천만주가 거래되며 수십% 주가등락을 보이지만 가격차는 수십원에 불과하다. 조그마한 유가반등 조짐에도 '싼맛'에 무모하게 들어오는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가격 뻥튀기가 이뤄질 수 있는 위험도 크다. 액면병합 시행이 기약없이 미뤄지면서 이같은 변동성에 계속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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