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펀드에 동원되는 은행돈, 재무건전성은 '나몰라라'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2020.09.0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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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펀드에 동원되는 은행돈, 재무건전성은 '나몰라라'


5대 금융지주가 정부의 ‘한국판 뉴딜 펀드’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재무건전성 부담 요인이 늘었다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가 BIS(국제결제은행) 비율 규제를 완화해주겠다고 당근을 제시했지만 정부와 은행에 대한 대외 신인도에 손상을 가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는 2025년까지 지원하기로 한 ‘한국판 뉴딜 펀드’ 자금 70조원 중 대출을 제외한 21조원을 펀드 투자 재원으로 분류했다. 금융그룹별로 △KB 3조원 △신한 5조원 △하나 5조4000억원 △우리 2조1500억원 △NH 5조5000억원 등이다.



정책형 뉴딜펀드와 인프라펀드, 민간 뉴딜 펀드 등으로 분산투자한다. 정책형 뉴딜펀드의 경우 20조원 가운데 13조원을 은행, 보험, 연기금 등으로부터 유치한다. 금융권은 자금력 규모에서 적어도 10조원 이상은 은행이 맡는 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나머지 11조원이 인프라펀드 등으로 투자된다.

‘5대 금융 70조원’ 중 47조원은 대출이다. 뉴딜 관련 기업 몫이라고는 하지만 은행들의 연간 대출 범위 안에 둬야 한다. 현행 예대율 규제에서는 예외적 대출로 밀어붙일 수 없다.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실효성 있는 뉴딜 재원은 펀드에 들어갈 21조원이 전부인 셈이다.



‘관제펀드’라는 비판 속에 은행들은 21조원이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여긴다. 펀드에 돈을 넣는 즉시 위험가중치가 반영되고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을 떨어뜨린다. 은행권에 따르면 한국판 뉴딜펀드는 기초자산이 주식형이다. 펀드 기초자산이 명확하다는 가정 아래 새 바젤Ⅲ 기준을 적용했을 때 위험가중치 250%가 부여된다. 5대 금융 소속 은행들이 그룹을 대표해 그룹 투자 재원을 모두 뉴딜펀드에 출자하면 위험가중자산이 급격히 불어난다. 2분기 기준 은행별 BIS비율은 작게는 45bp(1bp=0.01%p)에서 많게는 =148bp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 은행의 BIS 비율은 13%대로 내려갈 수도 있다.

정부는 이 같은 BIS 쇼크를 의식해서인지 해당 펀드 출자분에 대해서는 위험가중치를 낮게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선제적으로 발표했다. 은행들은 100% 수준이 될 것으로 본다.

익명의 한 시중은행 리스크 관리 부문 관계자는 “뉴딜펀드 위험가중치를 100%로 낮춰준다 해도 바젤Ⅲ에서 중소기업 대출 위험가중치 85%를 웃돈다”며 “이러니 시중은행 팔 비틀기라는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도 부담되긴 마찬가지다. LCR은 한 달 이내 빠져나갈 은행돈을 고유동성 자산으로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출자액은 고스란히 고유동성 자산에서 빠진다. 당국은 100%를 이 비율 하단으로 설정했다가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준을 내년 3월까지 85%로 완화해줬다. 상반기 은행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100% 아래로 주저앉은 상태다.

이 상태에서 거액의 자산이 빠져나가면 대출을 줄이거나 은행채 등을 발행해야 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듯 뉴딜 펀드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 돈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시중 유동성을 성장 동력으로 끌어오겠다던 정책 취지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상황에 따라 국제 기준을 고무줄처럼 다룬다는 점이다. 올 4월 코로나19발 증시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동원된 증안펀드의 경우 위험가중치를 300%에서 100%로 낮춰줬다. 증안펀드는 그나마 시장 안정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번 뉴딜펀드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의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은행 고위 임원은 “뉴딜펀드 투자 대상 기업 상당 부분이 정권이 키우는 산업”이라며 “이런 곳에 은행 돈을 끌어오는 것도 모자라 BIS비율까지 조정하려 드는 데 은행들의 국제 신인도가 온전할 수가 있겠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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