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점포폐쇄 막는 이유? "어르신들 어쩌라고"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2020.09.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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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은행점포 폐쇄의 정치학

편집자주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면서 은행들의 점포폐쇄가 올스톱됐다. 은행은 비대면 거래 확산으로 돈 안 되는 점포를 줄이려고 한다. 반면 정치인들은 지역구 민심을, 노조는 일자리 감소를, 당국은 고령층의 불편을 염두에 두고 이를 막는다. 은행 점포폐쇄가 경제가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 됐다.

금융당국이 점포폐쇄 막는 이유? "어르신들 어쩌라고"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점포폐쇄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건 '고령층 보호'를 위해서다. 고령층의 모바일 등 비대면 거래 비중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타 연령층에 비해선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라고 본다.

15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층의 이체/출금 온라인 거래비중은 2016년 28.9%에서 올해 3월 69.9%까지 증가했다. 전체 연령 평균 74.4%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단순 이체 등과 달리 예금 가입이나 대출 신청 등 절차가 다소 복잡한 거래의 경우 여전히 온라인 비중이 낮다는 점이다. 65세 이상 고령층의 예금과 신용대출 온라인 거래비중은 각각 7%, 12.4%에 불과했다. 전체연령 평균(47.1%, 58.8%)에 크게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점포 문을 닫으면 고령층 등 디지털금융 취약계층이 당장 금융거래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물론 정부도 금융권의 디지털화에 따른 은행 점포수 감소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충격완화를 위해 그 속도를 조절해 달라는 주문이다. 급격한 점포 축소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우체국과 같은 대체점포 마련 등 당국이 할 수 있는 일도 알아보고 있다. '고령자 전용 모바일금융 앱' 추진에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은행이 급격하게 점포를 폐쇄해 아직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 당장 피해를 보는 것"이라며 "고령층의 디지털금융 이용률을 높이는 동안 점포 폐쇄의 '속도조절'을 통해 충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의 디지털전환을 방해할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점포폐쇄에 따른 일자리 감소 문제도 고려하고 있다. 이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와도 직결된다. 점포 폐쇄에 따른 잉여인력 인사 과정에서 자칫 '일자리정부'를 내세운 현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어서다.


한국씨티은행이 2017년 7월 점포수를 기존 133곳에서 32곳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을 때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들고 일어선 것도 결국 일자리 때문이다. 당시 박용진·이용득 등 당시 민주당 의원 12명은 금융산업노동조합 등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씨티은행의 점포 폐쇄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중심 정책에 전면 역행하는 것으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도 지난 7월 기자들과 만나 "(은행권의 점포 폐쇄 흐름의) 방향은 공감하나 일자리 문제도 있어 급격히 진행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속도의 문제가 아닐까 싶고 일자리 문제 등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점포폐쇄에 따른 급격한 일자리 감소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없어지는 점포 인력을 최근 강화하고 있는 디지털이나 WM(자산관리) 쪽으로 보내 금융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씨티은행의 사례에서도 점포 폐쇄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진 않았다. 씨티은행은 2016년 말 133개였던 점포를 올해 6월 말 현재 43개로 줄였지만, 같은 기간 총직원수는 3544명에서 3498명으로 큰 차이가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과 정치권의 우려와는 달리 인력 재배치로 디지털과 WM과 IB 부문 등 핵심성장부문을 키우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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