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전기차 독주 끝났다, 주가가 보여준 현대차 미래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최석환 기자 2020.09.1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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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①

편집자주 현대차그룹이 내년 상반기에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가동하며 테슬라 추월에 나선다. 지난 130년간 자동차를 지배해왔던 내연기관을 뒤로 하고, 이제 배터리로 움직이는 전기차 시대를 본격 개막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노조와 긴밀히 협의하며 E-GMP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선두그룹으로 치고 나갈 태세다. 이 플랫폼은 글로벌 강자인 한국 배터리업체들에게도 전무한 성장 기회가 될 전망이다. 관련산업의 판도를 뒤흔들 현대차그룹 E-GMP 가동의 의미와 파장을 분석해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이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 'CES 2020' 개막 하루 전인 6일(현지시간) '현대차 프레스 컨퍼런스'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호텔에서 인간 중심의 역동적 미래도시 구현을 위한 혁신적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공개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차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이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 'CES 2020' 개막 하루 전인 6일(현지시간) '현대차 프레스 컨퍼런스'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호텔에서 인간 중심의 역동적 미래도시 구현을 위한 혁신적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공개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차


앞으로 30년을 내다보는 전기차 시장의 싸움이 시작된다. 테슬라가 독주하던 이 시장에 현대차가 자체 전기차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로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이미 주식시장에선 기대감이 불붙었다. 지난 4일 E-GMP를 활용한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을 새롭게 출시한 현대차는 주가도 때마침 고공 행진하며 2015년 이후 최고가를 다시 갈아치웠다. 현대차 주가는 연초 11만원 수준에서 지난 1일 종가 18만원을 찍으며 최근 5년간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후 지난 11일 종가는 17만500원으로 17만원대를 지키고 있다.

액면분할 전 '이천슬라'(주당 2000달러)로 불리던 테슬라를 뒤따르는 우상향 속도가 가파르다. 이는 곧 테슬라가 주도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 성장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 재평가의 중심엔 바로 E-GMP가 있다. 내년 상반기에 본격 가동되는 E-GMP는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다. 중장기적으로 현대차 외에 기아차 전기차도 모두 이 플랫폼에서 만들 예정이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E-GMP에서 전기차 23종, 총 100만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다. 당장 내년 상반기에 콘셉트카 '45'를 기반으로 한 준중형 CUV(콤팩트다목적차량) 전기차 '아이오닉5'를 출시하며, 2022년엔 중형세단 아이오닉6를, 2024년엔 대형 SUV(스포츠다목적차량) 아이오닉7을 선보인다. 첫 차세대 전기차 아이오닉5는 유럽과 중국에서 우선 판매한다는 방침까지 세웠다.

이런 청사진은 E-GMP 가동을 통해 실현된다. E-GMP는 크게 '시스템'과 '틀'로 구성된다. 시스템을 통일하면 언제든지 업그레이드를 통해 차량 성능 개선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틀을 통일하면 배터리와 동력계 부품을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생산효율이 높아지고, 설계는 편해지며, 가격은 내려가는 혁신 플랫폼이 구동되는 것이다. 이미 증시에선 E-GMP의 이런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시스템 '업그레이드', 전기차 판 갤럭시-아이폰 경쟁 본격화
테슬라 전기차 독주 끝났다, 주가가 보여준 현대차 미래
전문가들은 현대차와 테슬라가 펼칠 전기차 경쟁을 갤럭시(구글 안드로이드) 대 아이폰(IOS)의 스마트폰 경쟁에 빗대기도 한다. 현대차와 테슬라는 각각 다른 플랫폼으로 무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현대차 E-GMP는 '갤럭시'라는 하드웨어를 넘어 안드로이드와 IOS가 점유하고 있는 플랫폼의 헤게모니로 영역을 넓힐 태세다. 현대차 E-GMP가 미래 전기차의 표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우군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연이어 총수 간 회동을 성사시킨 국내 배터리3사(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전기차 배터리의 원활한 공급은 물론 미래전기차용 배터리 개발에서도 긴밀한 협력이 기대된다. 미래전기차 시장에선 'KS마크'가 곧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차 E-GMP 가동은 완성차의 구매 패턴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 테슬라가 도입한 차량 업그레이드 개념이 완성차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현대·기아차 역시 차량에서 원격으로 펌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차량 기능을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10년 20만km' 같은 고전적인 차량 교체주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한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하드웨어(차체)가 소프트웨어 발전을 더이상 소화해내지 못하면 차체 자체를 바꾸는 스마트폰 식 잦은 교체주기가 전기차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차 E-GMP 플랫폼은 앞으로 자율주행이나 카셰어링(차량공유) 시장과 맞물려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이 차량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 전기차 플랫폼을 장악한 완성차업체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SK텔레콤이나 KT 같은 IT기업들이 E-GMP 성공 여부를 예의주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활 건 경쟁 개시, 노조 고비 넘을까
현대차 아이오닉 브랜드 제품 라인업 렌더링 이미지(좌측부터 아이오닉 6, 아이오닉 7, 아이오닉 5)/사진제공=현대차현대차 아이오닉 브랜드 제품 라인업 렌더링 이미지(좌측부터 아이오닉 6, 아이오닉 7, 아이오닉 5)/사진제공=현대차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내연기관 전용 자동차 생산라인과 180도 다르다. 기존 엔진룸 등 불필요한 부분을 전부 제거하고 그 공간을 배터리로 채우기 때문이다. 설계와 생산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현대·기아차로선 이 산을 잘 넘으려면 노조와 협력이 절실하다. 현대차는 이 때문에 E-GMP에 대한 접근 자체가 신중하다. 현대차는 지난 5월 E-GMP를 적용한 미래 모빌리티 생산계획을 노조에 가장 먼저 알린 바 있다.

E-GMP로만 채워진 전기차 전용공장이 설립되느냐도 관건이다. 현대차는 일단 내년에 울산공장 내 2개 생산라인을 E-GMP로 전환할 예정이다. 이후 2024년까지 공장 2곳을 완전히 전기차 전용으로 전환한다. 연산 60만대 규모다. 노조는 여기서 나아가 E-GMP 전용 공장의 추가 신설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전기차의 성장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도 긍정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현대차는 오히려 너무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달 초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노조 측에 "전기차 전용라인을 성급하게 확대할 경우 전기차 재고 부담이 커지고 고용이 오히려 불안해질 수 있다"고 밝혔을 정도다. 최소 10만대 이상 수요가 확보돼야 전용 라인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아차도 노조가 전기차에 더 적극적이다. 기아차 노조는 최근 발표한 현대모비스 평택 친환경차 부품공장 신설에 반대하며 "전기차와 수소차 부품은 직접 생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노조와 긴밀히 대화하며 (전기차 플랫폼) 입장차를 좁혀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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