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자사주 매입 주가조작?…증권업계 "말 안되고, 쉽지도 않아"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9.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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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이재용 기소]자사주 매입 통한 주가 조작? 상법 자본시장법 거래소 업무규정 파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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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삼성 불법승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삼성 불법승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제일모직이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조작을 했다? 글로벌 기업이 실제 주가조작을 했다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일이다.

검찰이 지난 1일 이재용 삼성전자 (75,500원 ▼600 -0.79%) 부회장 등 11명을 기소하면서 발표한 문장 중에 좀처럼 보기 드문 문구가 눈에 띈다. '자사주 집중 매입 시세조종'이라는 말이다.

자사주 매입은 특정기간에 특정 물량을 매집하겠다고 공시하고 집중적으로 자기 회사 주식(자사주)를 사는 것이다. 통상 매입목적은 주주가치 제고로 주가안정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자본시장에서는 당연시되는 일인데, 이를 검찰이 시세조종과 묶은 대목이 눈에 띈다.



이런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진다면 이제 자사주를 매입하는 모든 기업은 주가조작 혐의를 안게 됐다. 자사주를 사면 일반적으로 주가가 올라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진이 외부 투기세력과 결탁해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를 조작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률과 규정으로 매매방법을 엄격히 정해놨다. 검찰이 국내 1위 그룹의 계열사가 고가주문으로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조작을 했다고 하니 그 사실 여부를 따져볼 일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가운데)이 7월 16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의 전장용 MLCC 생산 공장을 찾아 제품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가운데)이 7월 16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의 전장용 MLCC 생산 공장을 찾아 제품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주식매수청구 억제를 위한 인위적 주가관리?=검찰은 1일 이 부회장 등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며, 주식매수청구기간 중 제일모직 자사주를 집중 매입해 시세조종을 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2015년 7~8월에 삼성물산 (150,400원 ▲3,000 +2.04%) 주식매수청구기간(10일) 동안 제일모직 자사주를 집중매입(172만주)하면서 다수의 고가매수 주문(7049회, 23만주), 물량소진 주문(1만3185회, 54만주), 단주주문(1만4075회, 12만주) 제출 등을 통해 시세조종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검찰 발표 내용만 보면 매우 위험한 거래를 한 것을 보인다. 하지만 상법, 자본시장법, 한국거래소 업무규정 등 자사주 취득에 관한 법령을 보고 나면 검찰이 방점을 찍은 고가매수 주문 등이 정상적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검찰은 또 삼성물산의 주가부양을 목적으로, 경영상 필요성이 없는 제일모직 자기주식 매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경영상 필요성이 없다는 주장도 어색하다. 미래를 위한 '합병 성사'라는 중대한 경영상 이유로 자사주를 매입한 것을 '경영상 필요성이 없다'고 하기엔 논리가 약하다. 금융위원회에서도 합병시 매수청구권 행사 기간 중 자사주 매입은 문제 없다는데 검찰은 이를 주가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자사주 매입의 허용 범위…주가 안정까지=1993년 이전까지 자사주 매입은 주식소각, 합병, 경영양수도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원칙적으로는 상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였다.

그러던 것이 1993년말 증권거래법(현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서 적대적 기업인수합병에 대응하고, 주식시장 안정을 위한 수단(주가 안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사주 매입 허용 범위를 넓혔다.(첨부 사진 참조)

1993년 12월 국회 증권거래법 개정안 내용 중 일부//사진제공=국회1993년 12월 국회 증권거래법 개정안 내용 중 일부//사진제공=국회
그러면서도 내부자거래 및 주가조작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증권거래소에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규정을 마련하도록 했다.

그렇게 마련된 것이 자본시장법 내 자기주식 취득내용과 한국거래소의 업무규정이다. 삼성이 자사주 매입을 통해 부정한 거래를 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경우는 이 법과 업무규정을 위배한 경우다.

상법 제341조(자기주식의 취득)와 제341조의2(특정목적에 의한 자기주식의 취득)에서 지난 1993년 개정한 자기주식 취득 범위의 확대를 규정해놓고, 구체적인 방법은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일명: 자본시장법) 제165조의3(자기주식 취득 및 처분의 특례)과 동법 시행령 제176조의2(자기주식의 취득ㆍ처분기준)에서 구체적으로 정했다.

또 검찰이 주가조작이라고 규정한 고가매수 주문 등과 관련해 매매절차와 방법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업무규정 제39조(주권상장법인 자기주식매매방법)에서 구체적으로 예시해놓고 있다.

이를 위반했으면 주가조작의 개연성이 높고, 그렇지 않다면 법에 정해진 범위 내에서 높은 가격에 매수했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거래다.

삼성 자사주 매입 주가조작?…증권업계 "말 안되고, 쉽지도 않아"
◇고가매입 주가조작?...개장전 전일종가보다 5% 높게 허용=2015년 당시 주권상장법인 자기주식매매방법을 보면 장 개시 전에 호가하는 경우 당해 종목의 전일 종가와 전일 종가를 기준으로 5% 높은 가격 범위 이내의 가격에서 주문을 낼 수 있도록 돼 있다. 전일 종가 기준으로 5% 높게 개장 전에 주문을 내도 부정한 행위가 아니라는 얘기다.

매매거래 시간인 장중에 호가하는 경우에는 그날 당해 호가의 접수 직전까지의 최고가격과 최우선매수호가의 가격 중 높은 가격을 상한으로 하고, 직전의 가격과 최우선매수호가의 가격 중 높은 가격으로부터 10호가 가격단위 낮은 가격을 하한으로 해 그 이내에서 거래하도록 돼 있다. 그 외 시간 외 대량 매매규정까지 포함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제일모직으로부터 위탁받은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이 같은 한국거래소의 자기주식매매 업무규정을 준수해 거래를 했다"며 "법률에 정한 대로 했는데 이를 주가조작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고가 주문을 통해 시세조종을 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도 매수청구권 행사 시작 때인 2015년 7월 17일 제일모직 주가는 17만9000원, 삼성물산 주가는 6만2100원이었던 것이 매수청구권 행사 마지막날인 8월 6일 각각 16만 1000원과 5만 52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검찰 주장처럼 고가주문에도 주가는 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진제공=검찰 보도자료 캡쳐./사진제공=검찰 보도자료 캡쳐.
◇금융위, 매수청구권 행사기간 자사주 매입 "문제없다"=2018년 발간된 기업공시 실무안내 자료에 따르면 매수청구권 행사 기간 중 주가안정 등을 위한 자사주 매입이 문제가 없느냐는 기업들의 질의에 금융위원회는 "문제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금융위는 자기주식취득신고서 예시에도 취득목적으로 '자사주식 가격의 안정'을 예로 명시해놨다. 제일모직이 매수청구권행사 기간 중 주가안정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한 것이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앞서 2014년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의 주가조작 혐의 조사에서도 검찰은 2011년 진행된 자사주 매입 부분에 대해서는 자사주 매입 관련 규정을 준수하고 관련 절차를 이행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올 들어서도 지난 3월 증시가 대폭락하자 금융위는 같은 달 16일부터 6개월간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한편, 10% 이내로 제한해왔던 상장회사의 1일 자사주 매입 한도를 없애기도 했다. 자사주를 한꺼번에 매입해 하락하는 주가를 방어하라는 뜻으로 자사주가 주가 부양을 하는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고위 임원은 "만약 특정기업이 기업의 가치와 무관하게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려 한다면, 공매도 세력들이 이를 기회로 돈을 벌려고 달려들어 공매도에 집중할 것"이라며 "이런 자사주를 이용한 시세조종은 실제 시장에서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자사주 매입을 주가조작이라고 부르는 것도 말이 안될 뿐더러 자사주를 산다고 반드시 주가가 오른 것이 아니다"며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샀던 많은 사례에서도 자사주를 사는 기간 중에 외국계들이 이익실현에 나서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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