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광의 디지털프리즘]구글의 두 얼굴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20.09.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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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구글은 ‘백기사’였다. 애플발(發) ‘아이폰 혁명’에 노키아, 모토로라 등 전통 휴대폰 제왕들이 맥없이 무너질 때다. 삼성전자도 똑같은 위기를 겪었다. 급기야 2009년 애플 아이폰은 KT를 통해 국내 시장까지 파고들며 삼성을 코너로 몰았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 모바일 OS(운영체제)를 탑재한 ‘옴니아’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아이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때마침 손을 내민 게 구글이다. 삼성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를 내놨고 이를 계기로 기사회생했다. 삼성이 애플을 꺾고 스마트폰 1위 기업으로 자리잡은 데는 구글과의 안드로이드 제휴가 큰 힘이 됐다. 그렇다고 구글에 신세만 진 건 아니다. 구글이 ‘모바일 제왕’이 되는데 ‘안드로이드 진영’의 최전선에 선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제조사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창업가와 창작자들에게도 구글은 ‘백기사’ 같은 존재다. 구글이 주도한 개방형 모바일 생태계는 카카오톡, 배달의민족, 마켓컬리 같은 스타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토양이다. 구글 앱마켓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수많은 창업가와 스타트업이 ‘모바일 성공신화’를 꿈꿨다. 끼와 재능을 갖춘 이들이 유튜브로 속속 모여들었다. ‘돈 없고 백 없어도 열정 하나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구글 플랫폼에 몰려든 셈이다.
#이랬던 그들이 구글에 등을 돌리고 있다. ‘30% 통행세’ 갑질논란이 불거지면서다. 구글은 조만간 게임앱에 적용한 ‘인앱 결제’(앱스토어 결제)를 모든 콘텐츠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동영상, 음악, 웹툰 등 유료 콘텐츠를 파는 앱 개발사는 결제액의 30%를 수수료 명목으로 구글에 떼줘야 한다. 소비자가 1000원을 결제하면 300원을 무조건 구글이 가져가는 식이다.



 구글은 앱마켓 안정성 확보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독점 플랫폼기업의 횡포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콧대 높은’ 애플은 이미 2011년부터 모든 앱에 30%의 수수료를 받았지만 ‘절대 우군’이라 믿은 구글마저 그런 식으로 나올 줄 몰랐다는 반응이다. 망 중립성 등 여러 사안에서 구글을 지지해온 스타트업들이 오죽하면 방송통신위원회에 구글 정책이 현행법(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을 위반했는지 봐달라며 진정서까지 냈을까.

#구글의 배신일까. 엄밀히 따지면 글로벌 플랫폼의 속성 자체가 그렇다. ‘개방’ ‘무료’ 서비스로 포장, 시장을 싹쓸이한 뒤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이익을 버는 게 플랫폼 독점기업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폐쇄적인 애플과 달리 구글은 처음부터 ‘개방성’을 강조했다.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를 그냥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했고 앱마켓 등록절차도 애플만큼 까다롭지 않았다. 노림수였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에는 플레이스토어, 지메일(메일), 유튜브, 구글지도 등 구글의 핵심 서비스들이 깔렸다. 서비스 화면이나 사용방식이 낯설더라도 자꾸 쓰면 금방 익숙해진다. 낯선 구글 서비스들이 한국에서도 순식간에 필수 앱으로 자리를 굳혔다. 앱 개발사들도 출시 우선순위를 애플 앱스토어에서 구글 플레이스토어로 바꾼 지 오래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80% 이상이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현실에서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그렇게 구글은 생태계 최고 권력자가 됐다. 구글이 내놓는 플레이스토어 정책 하나하나가 스타트업들의 성패를 가른다. 구글에 예속된 유튜버들도 다르지 않다. 광고분배 방식과 콘텐츠 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라 전업 유튜버들의 생계가 좌지우지된다.



#생태계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에 비해 책임감이 별로 없다는 게 구글의 결정적인 문제다. 방역망을 흔드는 일부 몰지각한 유튜버의 코로나19(COVID-19) 가짜뉴스가 판을 쳐도, 유명 유튜버들의 뒷광고 논란이 벌어져도 팔짱만 끼고 있다. 지도반출 수익과 수수료 등 수익과 직결된 사안에만 적극적이다. 가뜩이나 한국 시장에서 광고와 앱마켓 수수료 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챙겨가면서도 세금납부는커녕 망사용료도 내지 않는다는 비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어쩌면 구글이 애초 설계한 플랫폼 독점화 전략의 매트릭스에 우리 스스로 갇혔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글을 ‘백기사’로 바라본 건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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