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이 된 장기수사 후 기소 강행…기업 활력이 시든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09.02 05:20
글자크기
관행이 된 장기수사 후 기소 강행…기업 활력이 시든다


검찰이 1일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중단·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그룹 주요 경영진을 기소하면서 먼지털이식 장기수사와 고질적 기소 일방주의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인을 겨냥한 장기수사가 코로나19(COVID-19) 위기국면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업들의 활력을 꺾고 국가 경제에 치명타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의 이날 기소 발표는 2018년 11월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된 지 1년 10개월 만이다. 그동안 50여차례 압수수색과 110여명에 대한 430여차례 소환 조사가 진행됐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활동기간 90일을 7배 넘어서는 유례없는 장기수사다.



검찰은 지난 6월 수사심의위가 수사중단을 권고한 뒤에도 두 달여 동안 이렇다 할 입장 표명 없이 회계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취지로 사실상 보완수사를 벌여왔다. 재계와 법조계 일각에서 검찰이 '타깃'을 정해놓고 추가 혐의와 증거를 찾은 게 아니냐는 과잉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검찰은 이날 이 부회장에 대해 예정에 없던 배임 혐의를 추가했다.

역대 검찰총장들이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강조했지만 기업인에 대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식 장기수사가 이뤄진 사례는 부지기수다. 검찰은 2015년 정준양 포스코 회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할 당시 8개월, 2016년 신동빈 회장 등 오너 일가를 탈세 혐의로 기소할 당시 4개월에 걸쳐 전방위 수사를 벌였다.



두 사건 모두 유죄 판결을 받는 데 실패하며 무리한 수사였다는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정 회장 수사 당시 검찰은 구속영장을 두 차례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번 사건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 데 이어 수사심의위가 10대 3의 표결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결정했다.

검찰 수사를 받아본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먼지털이식 수사 관행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대기업 한 인사는 "기업 입장에서 검찰 리스크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체감하는 실질적 위기"라며 "당장 수사 대응이 현안으로 떠오르면 기업 역량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인사는 "검찰 수사가 길어지면 유죄낙인 효과로 해외사업 수주나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적잖다"며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결국 해외 경쟁사가 누릴 대로 누린 상황인데 어디에 하소연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이 부회장 사건의 경우 이미 2년 가까이 검찰 수사가 진행된 데 이어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오는 데만 2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본다. 삼성의 시장 대응이 그만큼 더 늦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불구속 재판의 경우 기일을 자주 잡을 수 없어 집중 심리를 하기 어렵고 기업 사건은 관련된 임직원이 많은데 증인으로 채택해도 재판에 제때 나오기 쉽지 않다"며 "장기전으로 흐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삼성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계기로 재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검찰 수사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기존 기업 수사 방식을 재검토할 시점"이라며 "과거처럼 '나올 때까지 턴다'는 수사 방식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1년의 경영 공백은 글로벌 신사업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힐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