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이재용 기소, 5가지 의문점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9.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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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6월 9일 새벽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6월 9일 새벽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검찰이 1일 이재용 삼성전자 (77,600원 ▼2,000 -2.51%) 부회장을 비롯해 11명의 삼성 전·현직 고위임원들을 업무상 배임과 자본시장법 위반, 위증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의 발표 내용을 보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검찰 발표 내용을 토대로 당시 현장 취재 기록을 맞춰봤다.



검찰은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실행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138,200원 ▼2,100 -1.50%) 흡수합병 과정에서 삼성 그룹의 조직적인 부정거래행위, 시세조종, 업무상배임 등 각종 불법행위를 확인해, 불법합병 은폐를 위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 그룹 수뇌부의 위증 등 범행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년 6개월의 수사와 2200만건 자료 분석하고도 장고한 검찰=2018년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 (781,000원 ▼9,000 -1.14%)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전자 사업지원 TF(테스크포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1년 6개월에 걸친 수사를 마치고 지난 6월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되고 2개월여의 장고 끝에 이날 기소했다.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그룹 관계자, 외부 자문사, 주주 투자자, 관련 전문가 등 약 300명에 대해 860회 상당 조사 및 면담 진행, 서버 PC 등에서 2270만 건(23.7TB) 상당의 디지털 자료를 압수 분석했다고 밝혔다.

이런 대규모 조사와 장고에 비해 기소 결정 과정은 무디고, 더뎠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다른 각계 전문가들과 부장검사단 논의를 거쳐 기소했다.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 목적?=검찰은 삼성그룹 사건수사 결과 자료에서 삼성그룹 승계 및 지배력 강화 목적으로 수년 간 치밀하게 계획한 승계계획안에 따라 이 부회장을 비롯한 전·현직 경영진들이 부정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첫번째 의문이 든다. 이미 삼성의 사실상 승계는 20여년 전 에버랜드 때 끝난 일인데, 또 무슨 승계인가라는 의문이다.


삼성그룹 지배력의 요체는 삼성전자이고, 삼성전자의 핵심주주는 삼성생명과 구 삼성물산이었다.

전자와 금융, 물산·중공업 분야의 3두 마차에서 금융의 핵심인 삼성생명 최대주주(차명주식 전환 후 이건희 회장이 최대주주로 변경)는 다름 아닌 에버랜드였다. 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바로 이 부회장이었다.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주요주주인 삼성생명 지분은 이건희 회장 유고시 이 부회장이 상속받아 삼성생명의 최대주주 지위가 당연시 됐다. 삼성전자의 두 번째 주요 주주인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삼성SDI였고, 삼성SDI 최대주주는 삼성전자다. 순환출자 구조를 통한 지배력의 변화는 전혀 없었다.

에버랜드 로고 / 사진제공=에버랜드에버랜드 로고 / 사진제공=에버랜드
검찰이 주장한 것처럼 수년간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20여년 전에 이미 끝난 승계다. 1996년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 후 1998년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확보하면서 삼성그룹 지배권은 이 부회장에게 사실상 넘어간 상태였다. 이는 삼성의 저격수로 불리는 수많은 학자나 시민단체들이 에버랜드 재판을 진행하면서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이기도 하다.

20년간 이어져 온 이 구조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변화했지만, 검찰이 밝힌 대로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과 삼성생명,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약 16%)은 자사주 소각효과를 빼면 두 회사 합병으로는 전혀 변동이 없었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이 커졌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런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변화는 없다는 얘기다. 지배력이 강화됐다면 이 16%(자사주 소각 후 약 20%)가 더 커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 증세를 일으켜 병원에서 응급 심장시술을 받은 가운데 2014년 5월 11일 오후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내원객들이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 증세를 일으켜 병원에서 응급 심장시술을 받은 가운데 2014년 5월 11일 오후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내원객들이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건희 회장 쓰러진 후 상장 일정 당겼다?=기업을 모르는 얘기는 또 있다. 기업 내에서 총수의 권력은 절대적이고, 부자지간에도 범접하지 못하는 거리가 있다. 이건희 회장을 대하는 이재용 부회장 위치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정도로 조심할 뿐더러 호칭은 '아버지'가 아니라 항상 '회장님'이었다.

이 부회장이 승진한 후 미래전략실 최고위 임원에게 "이 회장이 고령이니 경영승계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 최고위 임원의 말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없듯이 기업 내에서도 회장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기업들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의 분쟁들도 대부분은 가족 내 형제·자매간의 다툼이다. 가족 대기업이 많은 한국적 경영환경에서 경영권 승계는 후진적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현실은 가족 내 합의가 최우선이다.

이 회장이 갑작스럽게 쓰러지긴 했지만,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검찰의 주장처럼 갑작스럽게 계획을 당겼다는 것은 기업 내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당시 삼성에서는 세계적인 포뮬러1(F1) 황제 레이서 미하엘 슈마허가 무의식 상태에서 6개월 만에 깨어났던 것에 희망을 걸고 이 회장의 회복에 대비하던 시기다.

최지성 당시 미래전략실장은 이 회장이 무의식 중에도 보고를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100일 동안 매일 아침 이 회장에게 간단한 업무보고를 구두로 했다.

그 후에도 퇴근길에는 병원에 들러 이 회장의 회복 여부를 점검하던 시기에 갑자기 일정을 당겼다는 건 삼성 같은 기업 문화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인수합병 작업에 걸리는 시간도 주간사 선정부터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한 점도 검찰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바이오젠 상장 허위사실 유포?=증시에서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은행 등 금융권 부채를 쓰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하다. 매년 수많은 기업들이 상장 작업을 진행한다. 그 가운데 해당 사업분야의 시황이 좋지 않아 공모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경우 상장계획을 취소하는 것도 허다하다.

검찰의 주장처럼 상장 계획을 허위사실로 주장한다면, 국내 기업들이 상장계획을 발표하고 주식시장이 침체될 경우 상장계획을 미루면 모두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받아야 한다.

당시 미국 증시에서 바이오기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높아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해 상장을 보류한 것이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된다면, 어느 기업도 상장계획을 밝히지 못할 것이다. 상장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후에 상장하면 상장 사실을 숨겼다고 주장할테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의문이다.

◇주주를 매수했다?=주요 주주 매수의 주장도 주주설득과 뉘앙스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앞으로는 기업의 정상적인 주주 설명, IR, IR 행사장에서의 우산 선물(떡 선물) 등을 하더라도 주주매수 행위로 처벌받을 지 모른다.

워렌 버핏 캐리커쳐 / 사진=임종철 디자인 기자워렌 버핏 캐리커쳐 / 사진=임종철 디자인 기자
워렌버핏이 매년 주주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버크셔 헤서웨이의 실적과 미래 전략을 알리는데, 이런 행위가 주주를 매수하는 행위인지, 주주를 설득하는 행위인지 이제는 판단하기 힘들게 됐다.

또 워렌버핏이 미래에 대한 전망을 했다가 코로나19로 수 십 조원의 손실을 보면 허위사실 유포와 함께 자산에 손해를 입힌 배임으로 처벌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자사주 매입을 주가조작으로?=검찰은 제일모직이 자사주를 매입한 것이 삼성물산의 주주들의 매수청구권을 억제할 목적의 시세조정이라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를 KCC에 매각해 의결권을 살려 백기사로 활용하는 대신 자사주 매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를 제일모직이 대신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어떤 기업들도 자사주를 사면 주가를 끌어올리는 시세조정자가 될 소지를 안게 됐다.

또 회계처리를 위해 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에 문의해 정당한 절차인지를 질의한 후 금융당국의 답변에 따라 적법하게 회계를 하더라도 분식회계를 몰릴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소가 알려주고 있다.

ps. 취재 후기:
작가 한경우는 2014년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I MIND'라는 개인전을 열었다. 여기에 출품된 중절모를 닮은 그림자 작품은 우리가 아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닮아 있다.

어린 왕자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연상하며 그 그림자가 비친 뒤를 보면 놀란다.

그 그림 뒤의 실물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형상이 아니라, 그냥 중절모다. 우리가 어떤 강한 기억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실체와 다르게 세상을 인식한다. 검찰의 주장들은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 속 그림자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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