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私募)답지 않은 사모펀드가 사태 키웠다

머니투데이 김소연 기자, 황국상 기자 2020.08.3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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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옵티머스 주범 첫 재판, 사태의 재조명]<4>

편집자주 오는 9월1일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 및 사내이사 등 주요 인물들의 첫 재판이 열린다. 최초 사태가 알려진 후 2개월여가 흐르는 기간 5100억원을 웃도는 규모의 펀드 사기가 조직적으로 행해졌음이 드러났다. 그사이 옵티머스 사태는 반환점을 돌았다. 금감원의 현장검사도 마무리됐지만 수백명 투자자들은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른다. 사모펀드에서 잇따라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본다.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각종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강력 징계 및 계약취소(100% 배상)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6.30/뉴스1(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각종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강력 징계 및 계약취소(100% 배상)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6.30/뉴스1


‘사모를 사모답게’. 금융위원회가 2015년 사모펀드 제도 완화에 대한 정책 실패를 반성하며 올 4월 관련 규제를 재차 강화하면서 내건 기치다.

이 간단한 말에 사모펀드 시장 해법이 담겨 있다. 기존 사모펀드가 그만큼 기형적이었다는 자성인 셈이다. 사모가 사모다울 때 신뢰를 잃은 사모펀드 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30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사모펀드 시장은 본래 선수들끼리 알아서 투자상품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해 투자하라고 열어줬기 때문에 수익만큼 위험도 높다”며 “사모펀드 시장을 공모와 구분되는 별도 시장으로 육성하려면 아마추어를 빼고 감독도 빼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전문 투자자들만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윤승영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한국형 헤지펀드는 사실상 ‘준(準) 공모펀드’이지 사모펀드라고 할 수 없다”며 “은행과 증권사의 고객 창구를 통해 1억원만 있으면 사실상 아무나 투자할 수 있는 펀드가 사모펀드라는 것은 사모펀드 정의(定義)와도 아예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모(私募)답지 않은 사모펀드가 사태 키웠다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팝펀딩, 젠투 등은 일련의 환매중단 사고로 시장을 뒤흔든 ‘사모펀드’다. 운용사·펀드별로 사고가 터진 세부적 원인은 차이가 있다.

라임은 펀드 환매에 제약을 초래하는 만기 미스매치 구조가 핵심 문제로 지적됐고 옵티머스의 경우에는 투자제안서와 다른 자산을 편입해도 감시를 피해갈 수 있었던 제도 허점 등이 원인이었다. 디스커버리 등 해외펀드는 허술한 해외실사, 정보 비대칭이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럼에도 이들 사고들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공통 분모가 있다. “사모가 사모답지 못했다”는 점이다.


2015년 10월 금융당국이 내놓은 사모펀드 활성화 대책을 계기로 너도 나도 손쉽게 운용사를 만들어 각양각색의 펀드를 출시했다. 당시 적격투자자 범위도 확대됐다.

투자식견이 부족한 비(非)적격 투자자들이 제도 변경 덕분에 ‘적격투자자’로 떠받들어지며 사모펀드 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사모펀드 활성화’라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론 ‘사모의 공모화’에 불과했다.

옵티머스 주범들처럼 선수들이 마음만 먹으면 양떼 속 늑대처럼 활개치며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환경이 이 때 조성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존에 터진 사고는 법규 개정과 사모펀드 전수 조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유사 사고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려면 ‘시장과 투자자의 미스매칭’을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선수는 선수끼리, 사모는 사모답게 운용해야 잇따르는 사고를 원천 방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모펀드는 본래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다. 일반 공모펀드와 달리 ‘사인(私人)간 계약’ 형태를 띤다. 펀드별 투자자 수도 49인 이하여야 한다. 사모펀드 운용의 자유는 투자자-운용사 간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속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펀드들이 ‘사모펀드’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각종 ‘시리즈 펀드’로 만들어져 수천명에게 수천억 팔려나가고 있다.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대규모 손실을 야기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앞으로는 투자자가 상품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고위험 투자상품의 은행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개인의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도 현행 1억원에서 3억원 이상으로 올려 진입 문턱을 높인다. 2019.11.14/뉴스1(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대규모 손실을 야기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앞으로는 투자자가 상품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고위험 투자상품의 은행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개인의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도 현행 1억원에서 3억원 이상으로 올려 진입 문턱을 높인다. 2019.11.14/뉴스1
시장을 분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즉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를 모두 없앤 전문가들만의 완벽한 사모펀드 시장 △공모와 사모의 중간 정도로 운영되면서 이에 상응하는 규제가 적용되는 시장으로 이분화하는 법이다.

윤 교수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 민간 기관들이 LP(출자자)인 PE(프라이빗에쿼티,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에서는 라임이나 옵티머스 등과 같은 사건들이 단 한 건도 없었다”며 “투자자도 운용사도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 고위험을 감수하면서 수익창출에 나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모(私募)답지 않은 사모펀드가 사태 키웠다
2018년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법안도 이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사모펀드를 기관전용과 일반투자자용으로 나눠 규제하는 내용의 안을 제시한 것이다.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된 이 법은 조만간 21대 국회에서 재발의될 예정이다.

사전규제 외에도 사후적 징벌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피해금액만 650억달러(한화 약 77조원)에 달해 사상 초유의 사모펀드 사기로 일컬어지는 ‘메이도프 폰지사기’의 주인공, 버나드 메이도프(Bernard Madoff)에 대해 미국 법원은 징역 150년, 벌금 1700억달러를 부과하고 부인과 가족 명의의 재산도 몰수했다.

반면 한국은 ‘사기도 잘 하면 벤처’라는 말이 돌 정도로 금융사범에 대한 징벌 수위가 약하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한국은 사후 규제가 너무 약해 상대적으로 사전 규제가 많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그러나 사전 규제를 무시하고 수백억 사기를 쳐도 벌금으로 몇 천만원만 내도 된다면 펀드 사기는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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