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변화 중인 北, 선전화 속 암시

뉴스1 제공 2020.08.2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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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으로 보는 북한 사회" 제4편-(4)포스터 디자인

[편집자주][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희선 디자인 박사. (현)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뉴스1최희선 디자인 박사. (현)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뉴스1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북한이 자랑하는 산업미술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분들이 있다.



엉뚱한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답은 북측의 선전화 속에 있다. 북한 선전화는 대중을 위한 거리미술인 동시에, 사상교양의 무기이며, 시대상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반영해주는 인쇄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북한의 선전화는 "당의 노선과 정책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미술"로 내부에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의 선전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북한' 하면 떠오르는 격한 구호의 정치선전화와 당시 생산되는 각종 기계, 경공업품들을 볼 수 있는 경제선전화가 대표 유형에 속한다. 그 외에도 북측의 사회운동과 행사들을 볼 수 있는 문화선전화와 산업 출판미술로서 제품 광고를 위한 상업용 선전화 등이 있다.



2019년 초 '유라시아경제동맹 품질인증'을 받은 평양화장품공장의 광고 선전화. <은하수>화장품은 개성고려인삼 등이 들어있는 기능성 제품으로 세련된 미감의 포장과 광고 기법으로 북측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북한 선전 매체는 김정은 위원장의 2015년 2월 평양화장품공장 현지지도 이후 "공장의 개건형성안은 물론 마크, 상표도안들도 지도해주었다"고 전하며, 지도자의 각별한 애정을 받는 생산 기지로 소개하였다. (조선의 오늘 갈무리) © 뉴스12019년 초 '유라시아경제동맹 품질인증'을 받은 평양화장품공장의 광고 선전화. <은하수>화장품은 개성고려인삼 등이 들어있는 기능성 제품으로 세련된 미감의 포장과 광고 기법으로 북측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북한 선전 매체는 김정은 위원장의 2015년 2월 평양화장품공장 현지지도 이후 "공장의 개건형성안은 물론 마크, 상표도안들도 지도해주었다"고 전하며, 지도자의 각별한 애정을 받는 생산 기지로 소개하였다. (조선의 오늘 갈무리) © 뉴스1
북한에서 선전화를 창작하는 조직으로는 평양미술대학, 만수대창작사, 중앙미술창작사, 평양출판인쇄대학 외에도 조선노동당출판사, 조선인민군창작사, 인민보안성(현 사회안전성)창작사, 철도성미술창작사, 평양철도국미술창작사와 각도의 미술창작사 등이 있다. 새해 공동사설 관철을 위한 선전화들은 만수대창작사의 공훈예술가들이나, 조선노동당출판사 소속 미술가들이 디자인을 담당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북한의 산업미술(디자인)은 경제선동 선전화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창작된 선전화 속에서 평양미술대학이 디자인한 <지하전동차 2호>, 기계공업성 산업미술창작사에서 디자인한 금성뜨락또르공장 <80마력 천리마-804호 뜨락또르>와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의 신형 트럭인 <<승리> 5t급 화물자동차>, <5000t급 무역짐배(화물선) 자력호>, CNC 기계의 모습이 자주 관찰되었다. 이들은 매해 4월에 개최되는 국가산업미술전시회의 대표작으로 소개된 것들이다.

최근 북한 선전화에 자주 소개되는 기계공업 제품들은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를 준비하며 벌인 70일 전투의 산물들로 ’자력갱생‘의 신형 기계들로 평가받는 것들이며, 김정은 위원장이 도안과 개발에 만족감을 드러냈던 것들이다. (노동신문/내나라 갈무리)© 뉴스1최근 북한 선전화에 자주 소개되는 기계공업 제품들은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를 준비하며 벌인 70일 전투의 산물들로 ’자력갱생‘의 신형 기계들로 평가받는 것들이며, 김정은 위원장이 도안과 개발에 만족감을 드러냈던 것들이다. (노동신문/내나라 갈무리)© 뉴스1
북한 선전화 디자인의 특징 중 하나는 주제를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소재 묘사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궁금했던 건축, 기계의 설계도 일부분이 종종 선전화 화면에 보이기도 한다. 과거 마식령스키장 건설 독려 선전화가 그 예인데, 완공되기 전에 스키장의 배치도가 화면에 묘사되어 있어 공간 구조를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과학기술 엘리트, 북한 경제발전의 선봉에 서다.

거리, 생산현장과 대중 장소에서 창작하고 해설사업을 하는 북한 선전화 속에는 사회 구성원을 상징하는 인물들도 자주 등장한다. 노동자 중심으로 화면을 배치하는 중국 선전화와 달리 북한은 '군'을 우선 배치하는 특징을 보여 왔다.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선군시대 이전인 1980년대부터 화면 구성에서 '군인-노동자·농민-지식인' 순으로 어느 정도 화면 배치의 위계가 있었다. 2018년까지도 이와 같이 유지되던 인물 배치가 2020년 초반 창작된 선전화에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점이 흥미롭다.

2010년 선전화(좌), 201년 선전화(우): 과거 북한 선전화에서 군인이 일반적으로 등장인물 무리 중 선봉을 맡아 왔다.(자료사진)© 뉴스12010년 선전화(좌), 201년 선전화(우): 과거 북한 선전화에서 군인이 일반적으로 등장인물 무리 중 선봉을 맡아 왔다.(자료사진)© 뉴스1
2020년 창작 북한 선전화: 과거 군인의 위치를 차지한 정장 차림의 지식인은 메달을 걸고 박사증 혹은 설계도를 손에 쥔 모습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이끌고 있다.(노동신문/선전매체 갈무리)© 뉴스12020년 창작 북한 선전화: 과거 군인의 위치를 차지한 정장 차림의 지식인은 메달을 걸고 박사증 혹은 설계도를 손에 쥔 모습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이끌고 있다.(노동신문/선전매체 갈무리)© 뉴스1
과거 북한 선전화에서 제일 구석에 그려진 지식인들은 일반적으로 넥타이에 회색 양복을 입고, 안경을 착용하거나, 서류 혹은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당 창건 75주년을 맞은 2020년 선전화 속 엘리트는 이보다 젊고, 새로 마련된 교복의 상의와 유사한 푸른 재킷을 입고, 목에 메달을 달고 있다.

선전화에서 군을 내세우지 않는 이와 같은 변화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다. 핵무력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완성에 대한 자신감으로 경제에 매진하려는 의지로 평가할 수 있으며, 과학기술 인재 육성으로 경제적 난관을 뚫고 나가려는 정책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후세대 교육을 통해 나라를 이끌게 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정책이 선전화로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김일성 생일 120주기를 맞는 2022년에는 성대한 국가산업미술전시회를 개최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전시회를 보면 중학교 학생들까지 디자인을 배우고 작품을 출품하고 있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지난 6월27일 자 노동신문은 내부 정보통신망을 통해 운영되는 '척후대' 홈페이지를 통해 지식인, 노동자, 학생에게도 디자인 정보를 제공하며, 현상 응모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은 남북이 공통으로 관심을 갖는 중요 사회 이슈이다. 디자인 교육도 앞으로 남북이 경쟁과 협력하는 구도 속에 성장하는 계기를 맞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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