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개봉한 한국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엔 무식하지만 무식하단 말을 제일 싫어하는 무대포(유오성 분)가 내뱉은 “난 한 놈만 팬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이후 이 말은 여러 분야에서 두루 차용됐는데, 특히 경영학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설명할 때 많이 사용된다. 즉 한정된 자원을 여기저기 낭비하지 않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쏟아부을 때 ‘난 한 놈만 팬다’라고 설명한다.
주식투자에서도 ‘한 놈만 패는’ 전략이 적용된다. 투자금이 한정된 상황에서 일반 개인이 분산투자를 한답시고 이 종목 저 종목 투자하면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여러 종목을 동시에 집중하는 건 신체적·정신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래서 특정 1~3종목에 집중해 꾸준히 매매하는 개인투자자가 적지 않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면서 집값을 잡기 위해 전방위 규제가 아닌 특정 과열 지역이나 특정 수요자를 지정해 집중적으로 규제하는 방법을 취하는데 이같은 ‘핀셋 규제’도 ‘선택과 집중’이 반영된 정책이다.
또한 이 기간 연기금이 가장 많이 판 종목도 삼성전자다. 순매도 규모가 –6343억원이다. 기관투자자 가운데 사모와 은행을 제외하고 투신(-3621억원), 금융투자(-2904억원), 보험(-1207억원), 기타금융(-276억원) 등도 모두 삼성전자가 순매도 1위 종목이다. 사모(-780억원)는 순매도 2위고 은행(-22억원)은 순매도 8위다. 기관합계(-1조5155억원)로도 삼성전자가 순매도 1위 종목이다. 거의 모든 기관투자자가 삼성전자를 순매도 1위로 판 게 우연의 일치일까?
반면 개인은 1979억원, 외국인은 1조3498억원을 순매수했다. 즉 연기금과 투신 등이 유일하게 삼성전자를 순매도한 것이다. 또한 이들 기관투자자는 국내 주식 가운데 삼성전자를 가장 많이 팔았다.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의 명대사를 빌자면 연기금 등은 ‘삼성전자 한 종목만 판다’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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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기금과 투신 등 기관투자자가 삼성전자를 매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크게 하락했고 상반기 재고를 많이 쌓아둔 탓에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또한 엔비디아(NVDA)와 마이크론테크놀러지(MU) 등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연이어 예상보다 부진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중국 화웨이 추가 제재로 인해 하반기 반도체 수요가 더욱 감소할 것이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화웨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반도체 구매 3위 업체다. 반도체 구매 3위 업체에 더이상 반도체를 판매하지 못하게 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입는 타격이 크다.
연기금 등의 매도 행진이 시작된 후 삼성전자 주가는 제자리(0.2%)에 머물러 있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가 5.6%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7월 말 연초 대비 플러스로 올라섰던 주가는 한 달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연기금과 투신 등이 줄기차게 내다 파는데 주가가 오를 순 없다. 연기금과 투신 등의 핀셋 매도에 삼성전자는 그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연기금과 투신 등만 유일하게 삼성전자를 순매도하고 또 가장 많이 팔았다는 것은 이들 기관투자자가 다른 투자자들보다 삼성전자를 더 비관적으로 본다는 의미일까?
연기금은 매도 행진이 시작되기 전까지 올들어 삼성전자를 1조5995억원을 순매수했다. 개인(7조5265억원) 다음으로 많은 순매수다. 투신도 5214억원을 순매수했다. 그래서 최근 연기금과 투신 등의 삼성전자에 대한 공격적인 핀셋 매도는 개인투자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연기금과 투신 등이 집중 매도하는 것이 하반기 삼성전자 실적이 악화하기 전에 미리 차익실현하는 목적일까?
연기금 등의 삼성전자 핀셋 매도가 끝나야 삼성전자가 6만원을 넘을 수 있고 또 국내 증시가 2500포인트를 돌파할 수 있다. 연기금과 투신 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한 삼성전자도 시장 전체도 위로 향해 올라갈 수 없다.
거의 모든 기관투자자가 삼성전자를 핀셋 매도하는 것을 보면서 개인투자자는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올들어 개인은 삼성전자를 7조원 넘게 사들였고 대부분이 차익실현을 하지 못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