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산업 뒤흔드는 미국의 화웨이 죽이기

머니투데이 김재현 이코노미스트 2020.08.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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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보고 크게놀기]한국 반도체 업체도 영향…중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올인

편집자주 멀리 보고 통 크게 노는 법을 생각해 봅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 뒤흔드는 미국의 화웨이 죽이기


미국의 중국 화웨이 죽이기가 글로벌 반도체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화웨이 뿐 아니라 중국의 SMIC, 대만의 TSMC와 미디어텍(MediaTek),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모두 영향권안이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 3단계
지난 해부터 구체화된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미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는 미국 기술과 장비를 이용한 반도체 제품을 화웨이에게 수출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이때부터 미국과 화웨이의 쫓고 쫓기는 경기가 시작됐지만, 첫 제재의 효력은 제한적이었다.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국한된 제재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인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대표적인 예다.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구매하지 못해도 화웨이는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설계하고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TSMC가 생산한 기린시리즈를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올해 5월 미국의 2차 제재는 TSMC를 직접 겨냥했다. ‘화웨이가 설계한 반도체’를 외국 파운드리업체가 생산해서 화웨이에 공급하는 것도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었다. 올해 TSMC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도 화웨이의 밀어내기식 주문과 미디어텍 주문이 늘면서 지난 26일 기준 주가가 33.5% 상승했다.



2차 제재로 화웨이는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할 AP를 조달하는데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화웨이는 또다른 묘수를 찾아냈다. 바로 대만 팹리스(반도체설계)업체인 미디어텍이 설계하고 TSMC가 위탁생산한 AP를 구매하는 방법이었다. 중국 언론은 화웨이가 미디어텍과 1억2000만개의 AP 구매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글로벌 모바일 AP시장 점유율 1위는 퀄컴(33.4%), 2위가 미디어텍(24.6%)이었다. 올해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가장 큰 반사이익을 본 업체가 바로 미디어텍이다. 대만증시에 상장된 미디어텍 주가는 한때 상승률이 65%에 달할 정도로 급등세를 보였다.

화웨이가 계속해서 포위망을 빠져나가자 미국은 다시 한번 그물코를 촘촘히 짰다. 그 결과가 바로 8월 17일의 3차 제재다. 미 산업안보국은 ‘화웨이가 설계한 반도체’라는 문구를 삭제함으로써 제재의 범위를 넓혔다. 이제 화웨이가 설계하지 않았더라도 미국의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해 생산한 반도체를 화웨이에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3차 제재안은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를 전면 금지할 수 있을 정도로 포괄적이다. 미국의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반도체를 생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차 제재안이 발표되자 올해 미디어텍 상승률도 30% 수준으로 크게 둔화됐다.

◇글로벌 반도체산업을 뒤흔드는 화웨이 제재
미국의 화웨이 죽이기는 대만 반도체업체뿐 아니라 한국 반도체 업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당장 미국의 3차 제재안이 나오자 SK하이닉스 주가가 급락했다. 올들어 8월 26일까지 삼성전자는 겨우 1.1% 상승하고 SK하이닉스는 -16.3% 하락하는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 중 드물게 약세를 보이면서 코스피 증시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금액이 208억달러로 애플(361억달러), 삼성전자(334억달러)에 이어 3위를 기록할 만큼 화웨이는 큰 손이다. 특히 화웨이는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액 중 약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화웨이의 플래그십모델인 메이트 30에는 SK하이닉스의 D램이 탑재된다. 만약 미국의 제재가 D램으로까지 확대된다면 SK하이닉스도 당장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럼 미국의 화웨이 죽이기가 본격화된 올해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기업은 어딜까. 바로 중국 선두 파운드리업체인 SMIC다. 홍콩증시에 상장돼 있던 SMIC는 지난 7월 16일 중국 증시에 2차 상장하면서 주가가 올들어 250% 넘게 상승하는 등 시장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SMIC는 중국 증시 상장을 통해서 약 530억 위안(약 9조원)을 조달했고 지금도 중국 본토증시에 상장된 A주(66.26위안)는 H주(24.95 홍콩달러)보다 세 배 비싼 주가에 거래되고 있다.

중국도 미국의 화웨이 죽이기에 무방비로 당하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중국 정부는 거국적인 차원에서 파운드리업체 육성에 나선 상태다. 특히 지난 4일 반도체산업육성정책을 발표하며 15년 이상 영업을 지속한 기업 중 28나노 이하의 제조공정을 가진 기업은 법인세를 10년 동안 전액 면제한다는 파격적인 방안까지 내놓았다.

SMIC도 상장신청 후 46일만에 상장해서 거래되는 등 상장과정에서 엄청난 혜택을 입었다. 중국이 아쉬운 점은 SMIC가 지난해 말이 돼서야 14나노공정 양산에 들어갈 정도로 글로벌 선두업체와의 기술격차가 크다는 데 있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 전까지 TSMC의 7나노 제조공정을 통해서 기린985 등 AP를 제조해왔다. 삼성전자도 따라잡지 못하는 TSMC를 중국 정부가 아무리 지원을 해도 SMIC가 따라잡기는 힘들다.

하지만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해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올인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한테 따라 잡히지 않기 위해 더 빨리 뛰어야 하는 부담감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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