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재고자산 4년만에 최저치...6개월 재고손실만 5.7조원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8.27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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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정유산업]최근 10년간 재고자산 비교...유가급락한 2015년 수준으로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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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너지가 지난 2007년 7월부터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브라질 BMC-8 광구 / 사진제공=SK에너지 SK에너지가 지난 2007년 7월부터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브라질 BMC-8 광구 / 사진제공=SK에너지


국내 정유 빅4사의 재고자산 규모가 4년 여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올 상반기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로 유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에 재고가 줄어들면 판매가 잘 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인식하지만 정유 산업의 경우 석유 및 석유제품이 잘 팔리든 그렇지 않든 법적으로 일정량 이상의 재고를 의무 보유해야 한다. 이 같은 '석유비축의무'가 있어 정유업계는 재고손실에 더 취약한 구조다.



재고자산손실은 원유를 구매했을 때 가격과 현재 시세와 격차로 유가가 하락한 만틈 발생한다. 이와 달리 재고자산이익은 정반대 개념이다. 일정 물량의 재고를 유지해야 하는 정유업계 입장에선 재고자산 규모가 줄었다는 것은 재고의 단위가격이 하락해 그만큼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을 말한다.

재고자산 추이는 유가의 흐름과 동조현상을 보인다. 재고물량이 거의 일정한 상황에서 단위가격인 유가 하락으로 인해 평가 재고자산액이 등락하는 것이다.<br>
자료: 각사 공시 취합, 재고자산 추이는 유가의 흐름과 동조현상을 보인다. 재고물량이 거의 일정한 상황에서 단위가격인 유가 하락으로 인해 평가 재고자산액이 등락하는 것이다.
자료: 각사 공시 취합,


6개월만에 재고손실 5.7조원
26일 머니투데이가 SK에너지, GS칼텍스, 에스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업계 빅 4사의 최근 10년간(2011~2010년 2분기) 재고자산을 조사한 결과 올 2분기말 4사 재고자산 합계는 전 분기보다 17.2%(1조 2962억원) 줄어든 7조5448억원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유가 급락으로 1분기 재고자산(8조 8410억원)이 전 분기보다 33.2%(4조 3849억원) 줄어든 데 이어 추가로 더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재고자산이 5조6811억원(43%)이나 줄었다.

자료출처: 네이버 유가 정보 캡쳐자료출처: 네이버 유가 정보 캡쳐

4사의 재고자산 규모는 유가가 120달러까지 치솟기 직전인 2011년 18조6757억원으로 최고정점을 찍었다. 이후 2012년과 2013년 16조원대로 안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4년 중반 유가 100달러선에서 2015년말 20달러선까지 유가가 급락하며 재고자산은 2014년 9조8565억원, 2015년 7조1499억원까지 내려앉았다.

지난 1분기 재고손실은 2015년 이후 4년여만에 7조원대로 다시 낮아진 것으로 이번에도 주 원인은 유가 급락이었다.

실제 올 1분기에 중동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68.28달러(1월 6일 고점)에서 4월 21일 최저점인 19.07달러로 72.1% 급락했다.

이로 인해 재고손실이 급격히 불어났다. 이후 유가는 다시 반등해 8월24일 현재 44.58달러까지 올랐다. 최저점 대비 134% 급등으로 3분기는 재고자산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지만, 유가가 전고점과 비교하면 여전히 65% 수준이어서 회복 속도는 더딜 전망이다.

의무비축량 규모 2018년말 대비 15일치 줄어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17조에 따르면 석유정제업자와 석유수출입업자 등은 석유의 수급과 석유가격 안정을 위한 '석유비축의무자'로 대통령령에서 정한 대로 석유를 비축해야 한다.

또 '석유비축의무자의 의무이행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석유비축의무를 위반할 경우 산업자원부 장관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어 정유사들은 유가가 하락해도 일정 규모의 재고자산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석유 재고자산 4년만에 최저치...6개월 재고손실만 5.7조원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2020년 4월 기준 석유비축량은 원유 1억2400만 배럴과 석유제품 7000만배럴로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는 168일 분이다"라고 말했다. 이 중 정부를 대신한 대한석유공사 비축분이 89일치(53%), 민간기업이 79일치(47%)를 차지한다.

이는 2018년말 의무비축 물량과 비교하면 지속일수는 당시 183일치보다 15일치 줄어든 것이고, 정부 비중이 51.4%에서 53%로 1.6%포인트 높아진 반면 기업 비축 비중은 더 낮아졌다.

기업들은 이 같은 의무비축 물량 외에도 운영재고량와 부과금면제비충량 등을 통해 재고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해 재고손실이 기업경영의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재고손실은 유가가 상승할 경우 일정 부분 헤지되는 측면이 있지만, 정제시설을 돌려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제마진이 회복돼야 실적개선을 기대할 수 있어, 이 정제마진이 마이너스인 것은 여전히 걱정거리다.

정제마진 4달러 넘어야 손익분기...현재 마이너스
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비, 운영비 등 각종 비용을 뺀 차액으로 정유업계 수익을 가늠하는 중요 지표다. 재고자산 손익이 원유를 구매해 원유저장고에 저장한 상태에서 유가 변동에 따라 받는 영향이라면, 정제마진은 석유를 수입해서 이를 제품화해 판매할 때까지의 가격 변동에 따라 받는 영향이다.

자료: 싱가포르 복합마진자료: 싱가포르 복합마진
업계에서는 정제마진이 배럴당 4달러 정도는 돼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고 본다.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2016년 1월 평균 9.96달러까지 올랐다가 2018년 12월 3달러가 붕괴되면서 하락추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11월부터는 1달러를 밑돌다가 올해 4~7월에는 급기야 마이너스 마진을 보였다.

8월 들어 지난 21일까지는 다시 0.14달러로 소폭 플러스로 돌아섰으나 코로나 19 재확산으로 석유제품 소비가 줄어들 예정이어서 8월 평균도 마이너스로 내려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가 상승으로 재고손실이 회복되더라도 정제마진이 4달러 이상 회복되지 않으면 실적개선이 힘들 것"이라며 "정제마진은 유가 회복과 함께 석유제품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소비가 크게 줄어 회복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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