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리뷰] '69세' 노년 여성이 묻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뉴스1 제공 2020.08.2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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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69세' /엣나인필름 © 뉴스1영화 '69세' /엣나인필름 © 뉴스1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69세'는 우리 곁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취약성에 그대로 노출된 여성 노인이 비극적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노인과 여성이라는 편견에 맞서 찬찬히 나아가며, 우리와 함께 하는 노년 여성의 삶을 그려낸다.

20일 개봉한 '69세'(감독 임선애)는 비극적인 상황에 부닥친 69세 효정(예수정 분)이 부당함을 참지 않고 햇빛으로 걸어 나가는 결심의 과정을 그려내 여성 노인으로서 사회에서 약자가 감내해야 할 시선과 편견을 다룬다.



영화는 69세인 효정이 겪은 사건으로 시작된다. 병원에 다니던 효정은 29세 남자 간호조무사(김준경 분)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평소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는 듯한 효정은 이 사건 역시 참다가 결국 경찰을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노년의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얘기에 편견 어린 시선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들은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다. 경찰들은 성폭력 신고를 한여성 노인을 향한 불쾌한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급기야 치매로 의심한다. 법원도 개연성을 이유로 가해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이런 효정에게 힘을 주는 것은 친구이자 동거인 동인(기주봉 분)이다. 동인은 '고발문'을 작성하고, 직접 가해자를 찾아간다. 동인은 나름대로 효정을 돕겠다고 나서지만, 효정의 의견이 반영된 행동은 아니었다. 특히나 가해자를 만나 먼저 선처를 구하면 합의를 해주겠다는 동인의 모습에서는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효정은 동인의 모습에 힘은 받았을지언정, 이 도움이 효정의 결정적인 한 방이 되지는 않는다. 속을 알기 어려운 무표정한 얼굴을 한 효정은 스스로 가해자를 처단하기 위해 움직인다.



영화 '69세'/엣나인필름 © 뉴스1영화 '69세'/엣나인필름 © 뉴스1
영화 '69세'/엣나인필름 © 뉴스1영화 '69세'/엣나인필름 © 뉴스1
2020년 우리 사회에서 69세라는 나이를 가진 노년을 향한 시선은 그다지 섬세하지 않다. 특정화된 집단의 모습만을 생각할 수도, 아니면 그저 늙은이라고 치부하는 시선일 수도 있다. 영화는 노년 여성의 성폭행이라는 특수한 사건을 소재로 하지만 동시에 가장 일반적인 노년의 평범한 삶을 그려낸다. 사회에서 성별이 지워진 채 살아가는 여성 노인이 겪은 성폭력 사건은 여성과 노인,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것이다. 특히 효정이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존엄성을 깨닫고, 포기하지 않고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모습은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69세'는 이러한 모습을 담담한 투로 그려낸다. 자극적인 묘사가 이뤄질 만한 장면을 스크린에 굳이 띄우지 않는다. 효정의 손목에 남긴 상처만이 그때의 상처를 가늠케 한다. 효정을 연기한 예수정의 내공도 느껴진다.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단단한 내면을 지닌 모습을 표현해내며 효정 그 자체가 됐다.

단편영화 연출과 장편 '사바하' '남한산성' '화차' 등의 스토리보드 작가로 활동한 임선애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러닝타임 100분. 지난 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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