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와 쌍용차 엇갈린 대법 통상임금 판결…재계 혼란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임찬영 기자 2020.08.2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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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조 기아지동차지부 노조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을 마친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스1전국금속노조 기아지동차지부 노조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을 마친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대법원이 기아자동차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유사한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들에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0일 기아차 노동자 3531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기아차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기아차 생산직 노동자 2만7451명은 2011년 연 700%에 달하는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수당과 퇴직금 등으로 정해야 한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노동자들이 회사에 청구한 임금 차액 등은 총 6588억으로 이자까지 포함하면 총 1조926억에 달했다.



신의칙 위반 여부가 쟁점…대법 "신의칙 위반 아니다"
이번 상고심의 핵심쟁점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의 위반 여부였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더라도 이러한 청구가 과해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속에 위기를 초래할 정도의 신의칙을 위반할 경우 그 청구를 제한한다고 판결했다.(대법원 2012다89399 판결)

기아차는 노동자들의 임금 청구가 이 같은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아차는 비록 영업이익이 나지만 이는 미래를 위한 투자재원이어서 이를 지급할 경우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1, 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영업이익을 내고 흑자를 낸 상황에서 이를 지급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영업이익이라는 것이 향후 투자를 위한 종잣돈의 성격인데 이를 기준으로 상여금으로 지급토록 하는 것은 기업 성장의 싹을 자르는 판결이다"고 우려했다.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전경/ 사진제공=기아차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전경/ 사진제공=기아차
지난달 대법, 한국GM·쌍용차 통상임금 소송선 사측 손 들어줘
이는 지난달 13일 대법원이 한국지엠·쌍용차 근로자들이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사실상 회사 측 손을 들어준 판결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에 처할 위험이 있다면 통상임금 기준으로 재산정한 수당과 퇴직금을 모두 다 지급하진 않아도 된다는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측이 추가로 부담하게 될 법정수당은 임금협상 당시 노사가 협상한 법정수당의 범위를 현저히 초과한다"며 "이는 신의칙에 반하므로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번 판결과는 대조를 이뤘다.

기아차, 500억원 정도 지급할 듯… 대손충당금 이미 쌓아
이번 기아차 판결과 관련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과 통상임금 신의칙 항변의 인용 여부를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함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2심 판결에 따라 기아차는 노동자들에게 총 4223억원 상당 임금을 지급해야 했지만 이후 노사가 통상임금 지급에 합의하며 노동자 대부분이 소를 취하했다. 결국 상고심은 소송을 계속하기로 한 3531명에 대해서만 진행됐다.

원심이 확정됨에 따라 기아차는 원심에서 인정된 4223억원(2009~2011년분)을 소송 참여자 비율인 약 10%에 맞게 계산한 500억원 정도를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는 해당 금액에 대해 지난해 대손충당금을 쌓아놓은 상태로 추가로 비용지출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난해 3월 임금 체계를 개편해 상여금을 월단위로 지급키로 해 향후 추가 통상임금 소송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조가 이미 제기한 2건의 추가소송(2011~2014년, 2014~2017년분)은 현재 1심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은 1, 2심 엇갈려…기아차보단 한국GM 사례에 가까워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 사진제공=현대중공업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 사진제공=현대중공업
이번 판결은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금호타이어, 만도, 현대미포조선, 두산모트롤 등이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기업들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도 신의칙 위반 여부로 다툼을 진행하고 있는데, 1심은 노조 측이, 2심은 사측이 승소한 가운데, 대법원 3부에서 상고심을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이 소송에서 패할 경우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은 약 6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소송 시기인 2011년 전후 현대중공업이 적자로 구조조정 등 어려움을 겪던 시기여서 기아차 사례보다는 한국GM과 쌍용차 사례에 가깝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 지 주목된다.

재계, 기업경영 불확실성 우려...조속한 신의칙 판단기준 마련 필요
이번 판결과 관련,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국가경제의 위기 상황에서 이번 통상임금 판결로 예측치 못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해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추 본부장은 "또한,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 기업경영 어려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산업계의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통상임금 논란의 본질이 입법 미비에 있는 만큼 조속히 신의칙 적용 관련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 소모적인 논쟁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인식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정책 팀장은 "2013년 대법원 판결로 신의칙의 문제만 쟁점으로 남은 상황이었는데 코로나 19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판결이 나와 기업들에게는 부담이 가중될 것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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