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사정'이 가른 9년 통상임금 전쟁…기아차 노조 승소

머니투데이 임찬영 기자 2020.08.2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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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기아자동차 사옥/사진= 뉴스1서울 서초구 기아자동차 사옥/사진= 뉴스1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이 '신의성실의원칙(신의칙)' 위반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9년간의 긴 법정 싸움에서 노조측이 승리했다. 신의칙이란 통상임금 분쟁에서 노동자가 요구하는 지급액이 과해 회사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속에 위기를 초래할 경우 지급 의무를 제한할 수 있는 요건이다. 앞서 있었던 한국지엠 쌍용차 등의 유사 소송에서 신의측 위반이 인정되는 판결이 있었던 것과 상반된다.

결국 신의칙 위반 여부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경영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들이 제시돼야 한다는 의미로 이를 입증해야 하는 기업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신의칙 위반 아냐, 원심 확정"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달라며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소송을 낸 근로자들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1부는 기아차 근로자들이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전국금속노조 기아지동차지부 노조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을 마친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0.8.20/뉴스1(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달라며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소송을 낸 근로자들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1부는 기아차 근로자들이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전국금속노조 기아지동차지부 노조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을 마친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0.8.20/뉴스1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0일 기아차 노동자 3531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기아차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기아차 생산직 노동자 2만7451명은 2011년 연 700%에 달하는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수당과 퇴직금 등으로 정해야 한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노동자들이 회사에 청구한 임금 차액 등은 총 6588억원으로 이자까지 포함하면 총 1조926억원에 달했다.

2심 판결에 따라 기아차는 노동자들에게 총 4223억원 상당 임금을 지급해야 했지만 이후 노사가 통상임금 지급에 합의하며 노동자 대부분이 소를 취하했다. 이에 따라 상고심을 진행한 3000여명에게 500억 가량 추가 임금만 지급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상고심에서도 기아차는 노동자들에게 추가로 임금을 지급할 경우 회사의 경영이 악화된다며 신의칙 위반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한국지엠·쌍용차 소송선 '신의칙' 위반 인정
대법원은 또 다른 통상임금 소송 상고심에선 이날 판결과 상반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7월 한국지엠 노동자 5명이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일부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유지하며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앞선 1심과 2심에서도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법원은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첫 상고심에선 신의칙 위반 여부를 다시 판단하라며 원심을 파기환송했지만 파기환송심에서도 신의칙 위반이 인정됐다. 결국 재상고심에서 원심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합친 추가 법정수당 청구에 있어 원심이 신의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 등이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대법원은 쌍용차 노동자 13명이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도 신의칙 위반을 인정했다. 쌍용차 근로자 13명이 2013년 사측을 상대로 690만원~8300만원 사이 금액을 지급하라는 임금 소송을 제기했지만 해당 판결로 17만원~470만원 사이의 금액만 인정됐다.

한국지엠·쌍용차 vs 기아차 … 무엇이 달랐나
대법원 전경/사진= 뉴스1대법원 전경/사진= 뉴스1
당시 한국지엠과 쌍용차가 소송에서 신의칙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제출한 자료를 통해 열악한 재정 상황을 상세하게 입증했기 때문이라는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한국지엠은 당기순이익 누계액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6000억원, 2008년부터 2014년까지 -8000억원에 달할 만큼 재정이 악화됐다는 점을 재판부에 설명했다. 이는 동종업체에 비해 상당히 높은 상태였고 차입금 규모마저 2014년 연말 기준 2조원을 초과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쌍용차도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오랜 기간 적자가 계속됐다는 점과 2009년에는 존립 자체마저 위태로운 상황이었던 점을 부각했다. 특히 위기 극복을 위해 2009년부터 기본급 동결, 상여금 일부 반납, 복지성 급여 부지급 등에 합의하며 위기를 극복하려던 노력도 드러냈다.

반면, 기아차는 이번 재판에서 추가 임금 지급으로 인한 경영 악화 상황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에 따르면 기아차는 2016년부터 당기순이익이 줄긴 했지만 2018년을 제외하면 연평균 당기순이익이 약 1조7591억원에 달할 만큼 높다. 이는 우발채무를 모두 변제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부채비율도 2012년부터 50~70%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1년 내 현금화 할 수 있는 유동자산과 1년 내 상환해야 하는 부채의 비율을 나타내는 유동비율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이익잉여금도 계속 증가해 2018년 기준 19조3513억원에 달했다.

재판부는 "△당기순이익과 매출액 규모 △동원 가능한 자금 규모 △기업의 계속성과 수익성 등 사정을 고려하면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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