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는 1년 차인 2008년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사태를 겪었다. 수개월 간 태풍처럼 몰아친 미국산 수입 반대 시위로 국정이 마비될 정도였다. 시위는 결과물이었다. 이미 4대강 운하, ‘고소영·강부자’ 내각 등 여러 갈등요인이 내재 돼 있었다. 그러나 국정 쇄신 대신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을 내세워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를 작동시켰다. 이후 밀어붙이기식 국정을 운영하며 집권 내내 야당과 마찰을 빚었다.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정윤회 문건 파동은 그로부터 7개월 후 벌어졌다. 국정농단 수사에서 드러났지만, 당시 언론과 야당은 헛다리를 짚었다.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이었다. 정상적인 권력이었으면 문건 파동을 약으로 썼어야 했다. 최순실을 쳐내고 쇄신의 길로 갔어야 했다. 하지만 6개월 정도 멀리했다 감시의 눈이 잠잠해지자 원상태로 돌아갔다. 탄핵의 도화선이 됐던 ‘미르재단’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그로부터 6개월 뒤다.
지지층의 응집력에 야당의 무능까지, 나아가 총선까지 독식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돌진하는 여건이 더욱 공고해졌다. 우려대로 총선 압승은 오히려 독이 됐다. 최근 나오고 있는 정당 지지율 ‘역전 현상’이 말해준다. 불과 4개월 만이다. 단기적으론 난맥상을 보인 부동산 대책이 원인이지만, 그간 쌓인 민심의 분노와 실망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걸 의미한다.
문제는 최근 발언을 살펴볼 때 문재인 대통령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데 있다. 민심의 경고를 확인했으면 이를 약으로 써야 한다. 하지만 관성이 생겨 악수를 더 둘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선 원인을 노무현의 ‘나쁜 학습 효과’에서 찾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크 파병·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했던 노 대통령은 외로웠다. 노무현정권이 무너진 것은 부동산 문제도 있었지만, 지지세력이 싸늘하게 등을 돌린 게 뼈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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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곁에서 지켜본 탓인지 문 대통령은 열성 지지세력에 반하는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 이들을 ‘최후의 보루’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남은 임기에 이들만 바라보며 계속 강경 노선으로 치달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엔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영원할 것이란 착각에 빠져선 안 된다. 그래서 권력은 독선적이거나 오만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이란 배는 이를 띄우고 뒤집는 ‘민심의 바다’에 놓여 있을 뿐이다. 묵묵히 똬리를 틀고 있다 어떤 계기를 만나면 사납게 분출하는 게 민심이다.
져야 할 때는 져야 한다.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문 대통령 책상에 ‘여기서 밀리면 끝’이란 보고서만 올라오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