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보·인공안구·휴대용 내시경…삶의 질 향상시킨 우리 기술들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08.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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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연구센터 30년, 대학연구 미래를 깨우다-②]국민 품으로 돌아간 연구성과들

편집자주 2020년은 우리나라 대학의 기초연구를 책임져온 ‘선도연구센터’ 제도가 도입된 지 30년째 되는 해다. 지금은 100억 원대 대형 R&D(연구·개발) 프로젝트들이 많지만, 선도연구센터가 시작된 1990년 무렵 대학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한 선도연구센터는 장기간 안정적으로 대학 내 기초연구를 지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지원사업으로 우주·바이오·소재·부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경쟁력을 높이는 토대가 됐다. 선도연구센터의 현황과 미래를 점검해봤다.

휴보·인공안구·휴대용 내시경…삶의 질 향상시킨 우리 기술들


이족보행 로봇 ‘휴보’, 3차원(D) 광학필름, 인공눈, 휴대용 내시경. 이 기술들의 공통점은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으로 배출된 과학자들의 대표적 연구성과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실생활 문제를 해결해 삶의 질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015년,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세계재난로봇경진대회(DRC)에서 1등을 차지한 한국형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휴보는 카이스트(KAIST) 오준호 기계공학과 교수가 인간친화복지로봇시스템연구센터에서 세부과제 책임자로 연구를 수행했던 경험을 밑천 삼아 개발했던 것이다.



2004년 태어나 대한민국 토종로봇 1호로 불렸던 휴보는 이후 힘과 체구, 안정성, 운동능력 등을 향상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2017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올림픽 역사상 로봇이 성화봉송에 나선 건 처음이라 큰 이목을 끌었다. 전 세계 인터넷 기업 중 가장 큰 구글도 미래형 로봇 연구를 위해 휴보를 구매했다는 후문이다.

1990년 2월 과학기술처(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대학의 기초연구를 대규모·장기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은 올해까지 총 2조3183억원의 R&D(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하며, 다양한 분야의 신기술 개발을 이끌었다.



23일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이 사업을 통해 총 4만 1238명의 우수 석박사 인재를 양성했다. 이들이 발표한 논문은 2018년 기준 국내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6354건, 국외 6만1971건에 달한다. 같은 기간 국내외 특허 출원 총건수는 1만2187건(국내 9863건, 국외 2324건), 등록 총 건수는 5930건(국내 5209건, 국외 721건)으로 국가 과학기술 및 산업 경쟁력의 기반을 다지는데 적잖은 기여를 해왔다.

◇부조리·안전사고 없애다=선도연구센터 출신 과학자들의 주요성과들로는 먼저 차세대염료감응태양전지기술센터 소속이던 김종만 한양대 교수의 성과를 꼽을 수 있다. 그는 2013년 가짜 휘발유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센서시스템을 개발했다. 당시 가짜휘발유는 차량 화재 위험뿐만 아니라 시동 꺼짐, 엔진 손상 등의 주원인이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가짜휘발유에는 톨루엔이라는 무색 액체가 포함돼 있는데 이 물질만 통과할 수 있는 보호막을 센서 위에 올려놓고 휘발유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색 변화를 통해 휘발유의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스마트사회기반시설연구센터 소속 손훈 카이스트(KAIST) 교수는 2015년 교량이나 건물에 생기는 균열을 자동 감지하는 스마트센서와 센서 간 무선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무선센서 노드는 배터리 교체 없이 반영구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비선형 초음파 기반 피로균열 진단기술의 경우 기존 데이터가 없어도 건물에서 나오는 진동·음향파 등의 신호를 확인해 구조물이 붕괴 되기 전에 자동진단한다. 과기정통부 이주원 기초연구진흥과장은 “이 기술 개발로 사회기반시설물 뿐만 아니라 항공기, 고속철도, 선박 등 다양한 강구조물의 피로균열 감지에 적용할 수 있는 국가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장애·지역 소외계층 보듬다=초미세생체전자시스템연구센터에서 일한 정흠 서울대 교수는 2015년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공눈’을 개발했다. 눈에서 카메라 필름에 해당하는 망막은 한 번 손상되면 일부 수술이 가능한 병을 제외하고는 회복이 어렵다. 정흠 교수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생체물질인 액정폴리머(LCP)를 이용해 초소형·초박형으로 안구 구조에 맞는 인공시각장치(인공망막)를 만들었다. 이는 망막변성질환으로 시각을 상실한 환자의 망막신경세포를 전기적으로 자극해 시각을 회복시키는 전자장치다. 인공시각장치는 곡면형 구조를 가지고 있어 안구 구조에 잘 맞고 장기 내구성이 뛰어나다. 필요한 부품을 작게 만들어 안구 바깥쪽에 바로 옆에 붙일 수 있어 수술적 부담도 줄였다. 이 같은 폴리머 기반의 체내이식 장치 제작기술은 인공망막 뿐만 아니라 인공 청각기, 심뇌자극 등 다양한 분야의 신경 보철 장치에 적용됐다.

줄기세포 면역제어 연구센터에서 공동연구원으로 연구를 수행해온 김준기 울산대 교수는 의료 낙후지역, 저개발 국가 등지에서 스마트폰에 연결해 손쉽게 조작하고 영상을 찍어 전송할 수 있는 휴대용 능동 조향 내시경을 개발했다. 이 장치는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크기(150×80×70mm, 300g)로 직접 개발한 앱(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깔고 이용자가 직관적으로 내시경 끝을 이리저리 조종하며 인체 내부를 탐사할 수 있다. 저전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작동시킬 수 있다. 촬영한 사진들은 바로 스마트폰에 저장되기 때문에 메신저 등으로 전송해 멀리 있는 의료 전문가들에게 실시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차원(D) 영화의 어지러움을 해소하는 기술도 나왔다. 나노응용시스템국가핵심연구센터에서 활동한 차국헌 서울대 교수는 2011년 프리즘 한 면에 빛을 흡수하는 특수물질을 코팅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방향으로만 영상을 보낼 수 있는 광학필름을 개발한 것. 이 기술을 활용하면 3D 영화를 어느 자리, 각도에서나 감상할 수 있고, 화면 안정성이 높아 어지럼증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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