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모빌리티, '그린 연합군' 짜였다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20.08.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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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뉴딜엑스포]

수소모빌리티, '그린 연합군' 짜였다


'수소와 산소로 움직이는 이동수단(모빌리티)'

과학소설의 아버지로 통하는 쥘 베른의 140년 전 상상은 이미 현실이 됐다. 물 이외의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데다 '달리는 공기청정기' 역할까지 하는 수소전기차는 전 세계에서 2만 대 이상이 팔렸다. 이제 현실이 상상을 뛰어넘을 차례다. 10년 뒤 200만대 이상으로 '초현실적' 성장세를 보일 글로벌 수소전기차 시장은 그동안 상상을 현실로 바꿔낸 한국 산업계가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 수소모빌리티, 상상 뛰어넘는다=한국이 폭발적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견된 까닭은 단순히 현재 전 세계 수소전기차 판매의 절반 이상을 현대차가 장악해서 만은 아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종합산업 격인 모빌리티 산업 특성 상 수소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은 완성차를 정점으로 한 부품은 물론 수소 생산과 충전소 등 제반 인프라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가치사슬) 확보"라며 "한국 산업계는 이를 충실히 다져둔 상태"라고 말했다.

수소 모빌리티 영역에서 일찌감치 구축한 '그린 연합군'이 한국의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시작이 빨랐던 덕이다. 1998년 수소전기차 사업에 손을 댄 현대차그룹은 2010년, 그간 연구한 연료전지를 중심으로 핵심 부품 모듈화 및 부품 공용화를 진행했고 이를 발판으로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 양산체계를 구축했다. 이어 2018년에는 현존하는 수소전기차 중 최장인 609km 항속거리를 갖춘 넥쏘를 내놨다.

이 과정에서 우선 그룹 자체 밸류체인이 짜여졌다. 이른바 수직계열화다. 부품 계열사 현대모비스는 수소전기차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한 핵심부품 수소연료전지 생산체계를 갖췄다. 핵심부품 생산부터 시스템 조립까지 전용 생산공장에서 일관 양산하는 것은 업계 최초였다.
현대제철 당진 수소공장 전경/사진제공=현대제철현대제철 당진 수소공장 전경/사진제공=현대제철
수소연료전지의 핵심 소재 국산화도 상당히 진척됐다. 특히 철강 계열사 현대제철은 외부에서 공급된 수소와 산소가 섞이지 않고 수소연료전지 내 각 전극으로 균일하게 공급되도록 해주는 금속분리판을 국산화했다. 2005년부터 무려 15년의 개발을 진행하며 금속분리판의 무게와 부피, 가격을 초기 대비 각각 50%, 65%, 95%씩 줄였다.

현대제철은 수소 생산도 담당한다. 당진제철소는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를 활용해 연간 3500톤 규모의 순도 99.999% 수소를 생산한다. 연간 넥쏘 1만7000대를 운행할 수 있는 규모다. 이 밖에 현대로템은 수소 충전설비 공급사업을 본격화했다. 우선 수소 충전인프라 구축의 핵심 장치인 수소리포머(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장치) 생산에 나선다.


◇그린 연합군, 잠재 시장은 '2.5조 달러'=현대차 그룹 밖에서의 우군도 든든하다. 한화와 효성은 수소 공급과 생산을 맡는다. 한화그룹은 '생산' 단계인 수전해 기술(전기분해로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3년 전부터 개발 중이다. 부생수소 공급 체계도 갖춰놨으며 수소충전소용 탱크 공급에도 적극 나선다.

효성은 수소충전소 생산·조립·건립에 이르기까지 토탈 솔루션 사업에 강점을 가졌다. 수소충전소 확대에 맞춰 수소전기차용 수소연료탱크의 핵심부품인 '탄소섬유' 사업도 본격화 한다. 탄소섬유는 철보다 4배 더 가볍고, 10배 더 강한 꿈의 소재다. 여기에 더해 효성은 세계적 화학기업 린데와 손잡고 3000억원을 투자해 2022년 연간 1만3000톤 규모의 액화수소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연간 수소승용차 10만대가 쓸 수 있는 양으로 단일 설비로는 세계 최대다.

코오롱은 현대차와 공동개발을 통해 2013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수분제어장치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갖췄다. 수소연료전지의 핵심 부품으로 수분을 선택적으로 투과시켜 수소연료전지의 효율성과 직결되는 수소이온의 이동 경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밖에 일진다이아(수소연료탱크), 유니크(수소제어밸브), 세종공업(수소센서), 한온시스템(공조, 열관리 시스템), S&T모티브(구동모터) 등 강소기업도 수소전기차 밸류체인을 지탱한다.

수소전기차 산업 밸류체인은 이제 정부의 정책 지원사격을 타고 2030년 200만대 규모로 급성장할 글로벌 수소전기차 시장을 겨냥한다. 이 시장의 25%에 해당하는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목표다.

수소모빌리티, '그린 연합군' 짜였다
수소전기차 밸류체인의 확장성을 감안하면 한국 산업계가 공략 가능한 수소 관련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진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2050년 수소 관련 산업은 연간 2조5000억달러(약 2960조원)의 시장 가치를 지닐 전망이다. 2050년 글로벌 수소 소비의 약 30%를 빨아들일 수송(수소전기차 등 모빌리티) 분야를 비롯, 발전과 산업, 건물 등 관련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고돼서인데 모두 한국이 구축해 둔 생산과 공급 등 밸류체인의 잠재 시장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다만, 전 세계적 수소 산업이 이제 막 기지개를 키는 단계인 만큼 한국이 미리 구축한 밸류체인의 강점도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국의 공세에 시달릴 수 있다"며 "산업계 지속적 투자는 물론 정부의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지원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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