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전쟁 中...미·소 핵전쟁 막았던 한국반도체 갈 길은?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8.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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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 각국 지원 봇물...한국은 규제 중

편집자주 독자에게 가치 있는 좋은 정보를 팔 수 있게 만든다(판다)는 의미와 산업 분야의 이슈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는 의미로 마련한 코너입니다.

#1. 1965년초 어느 날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모토로라 공장에 근무하는 한국인 엔지니어에게 찾아온 미 국방성 대령은 일급보안 문제의 해결을 이 한국인에게 요청했다.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이 한창이던 상황에서 미국이 소련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대응전략으로 새로 준비하고 있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Minuteman) II'에 탑재된 반도체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소련 핵 공격에서 미국을 구한 한국인 반도체 엔지니어


한국반도체 설립자 강기동 박사./사진=머니투데이 DB한국반도체 설립자 강기동 박사./사진=머니투데이 DB


미사일 핵탄두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진공관을 넣은 컴퓨터를 탑재한 미니트맨1을 개량해 만들어진 '미니트맨II'에 탑재한 반도체가 방사능에 노출될 경우 미사일 자체가 발사되지 않는 결함이 실험 중 발견된 것이다.



소련이 이 사실을 알고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경우 미국은 앉은 채로 당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결함을 발견하고 이 칩을 처음 만든 모토로라의 강기동 박사에게 해결책을 요구한 것이다.(그는 자신이 실험실에서 만든 칩이 이 미사일에 탑재되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강 박사는 10여개월만에 이 문제를 해결해 '미니트맨II'에는 개량된 칩이 탑재됐다. 강 박사는 이 때 획득한 노하우를 기반으로 이후 한국으로 들어와 1973년 한국 최초의 전공정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를 설립했다.(출처: 아모르문디 출판 '강기동과 한국반도체' 중 일부)

이처럼 반도체는 군사용으로 중요한 핵심 전략물자이자 최첨단 전쟁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부품이다. 미국이 알래스카에,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뒀던 이유도 무거운 탄두로 인해 미사일이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없어 적국의 코 밑에 미사일 기지를 둔 것이었다.
1963년 10월부터 준비된 미국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Minuteman)2의 모습/사진제공=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1963년 10월부터 준비된 미국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Minuteman)2의 모습/사진제공=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무거운 진공관 컴퓨터로 움직였던 초기 미사일의 탄두 무게를 줄이기 위해 진공관 대신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IC) 등 반도체를 탑재하면서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기술이 고도화됐다.

중국에 반도체 장비 공급 막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2.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되던 지난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네덜란드를 방문해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리소그래피)장비를 생산하는 ASML에게 중국에 이 첨단장비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올 초 로이터통신이 폭로했다.

반도체가 전략물자이고, 이를 생산할 수 있는 핵심장비를 공급하지 못할 경우 중국이 첨단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미국은 게다가 반도체의 집합체인 5세대(5G) 통신장비를 판매하는 중국 화웨이가 고객들의 정보를 빼내고 있다며,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지 말도록 우방국들에게 강압에 가까운 요청을 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견제로 인해 중국이 내세웠던 '반도체 굴기' 전략에 급제동이 걸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사진제공=뉴시스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사진제공=뉴시스
ASML의 EUV 노광 장비는 1대에 2000억원 전후의 고가 장비로 삼성전자, 인텔, TSMC 등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들만이 채택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SMIC의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7나노 이하 공정 기술 적용이 가능한 이 장비 도입을 추진했으나, 무산된 상황이다.

김수겸 IDC코리아 부사장은 "SMIC가 14나노미터 미세회로 공정기술을 간신히 하려고 하는데 반해 현재 삼성전자나 TSMC의 경우 5나노미터 수준까지 앞서 있다. 중국이 한국이나 대만에 비해 4~5세대 정도 뒤쳐져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육성에 나선 미 중 일....우리는?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열강들은 반도체 분야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미·중 반도체 전쟁 中...미·소 핵전쟁 막았던 한국반도체 갈 길은?
미국은 지난 6월 상원 의회에서 해외 반도체 공장을 자국내로 유치하기 위한 지원책인 'CHIPS(Creating Helpful Incentives to Produce Semiconductors)' 법안과 미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 확충을 위한 '파운드리' 법안 등을 발의했다.

존 콜닌 공화당 의원과 마크 워너 민주당 의원이 공동발의한 CHIPS 법안은 △반도체 연구에 70억달러 △반도체 제조연구소 신설에 30억달러 △미국 및 해외 반도체 기업의 제조공장 미국 유치에 100억달러 △2024년까지 반도체 기기 및 제조시설 투자 지출 세금 40% 공제 등을 담고 있다.

톰 코튼 공화당 의원과 척 슈머 민주당 의원이 공동 발의한 파운드리 법안은 △반도체 제조시설 및 첨단 R&D 시설 건설 등에 150억 달러 △R&D 시설에 100억달러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위원회 설립 및 차세대 R&D에 예산 배분 지원 등의 내용을 담았다.

미국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도 반도체 기업 지원에 뒤지지 않고 있다. 중국은 지난 4일 '반도체 굴기'에 속도를 내기 위해 자국 반도체 기업에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하는 파격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지난 4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SW) 산업 발전 정책’을 발표했다. 세제 혜택은 물론 금융 지원, 연구개발(R&D), 인재 육성, 지적재산권 보호, 수출입 지원 등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세제 혜택은 15년 이상 반도체 사업을 한 기업 중에서 28㎚(나노미터·100만분의 1㎜)나 그보다 고도화된 반도체 공정을 도입하면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65㎚ 이하, 28㎚를 초과하는 반도체 공정에는 법인세를 5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고, 나머지 5년간은 세율을 낮춰주기로 했다.

중국은 2014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국유펀드인 '국가 집적회로산업 투자펀드'를 결성해 지금까지 508억달러(약 60조2200억원)을 조달했다.

시스템 반도체 기술인력 육성과 규제완화해야


한국에 반도체 주도권을 빼앗긴 일본도 자국 내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반도체 생산 경쟁력이 뛰어난 외국 업체와 일본이 강점을 가진 소재ㆍ부품ㆍ장치 업체 간에 국제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국제연대를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일본은 자국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일본에 공장을 지을 경우 정부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 같은 반도체 국제 연대에 앞으로 수년간 1000억 엔(약 1조1200억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과 중국, 일본 정부의 반도체 기업 지원과 달리 규제와 인력부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현실에 대해 하소연했다.

탁승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본부장은 "시스템 반도체 부문은 정부 지원이 부족하고, 연구인력의 대기업 편중 현상으로 팹리스 업체들이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 "대기업의 경우 외국보다 훨씬 높은 기준인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추진으로 향후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연구개발(R&D) 인력의 주52시간 근무 예외인정 문제 등이 여전한 난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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