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주가 궁금하면…이 회사에 물어봐!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8.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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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짧게는 섬코 등 웨이퍼 업체 실적, 길게는 EUV 노광기 ASML 실적 보라

편집자주 독자에게 가치 있는 좋은 정보를 팔 수 있게 만든다(판다)는 의미와 산업 분야의 이슈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는 의미로 마련한 코너입니다.

2016년 11월 15일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늦가을 저녁.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온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 C동 삼성전자사옥 앞에는 10여명의 외국인을 태운 리무진 버스 한대가 정차했다.

삼성 고위 경영자들의 영접을 받으며 서초사옥 5층 귀빈식당인 코퍼레이트클럽으로 들어간 이들은 맛있는 저녁을 하고 약 3시간 쯤 뒤 권오현 삼성전자 CEO(부회장) 등의 배웅을 받으면 삼성전자를 떠났다.



이들은 오전에는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 기흥과 화성사업장을 둘러보고 온 듯했다. 관광버스 앞에 붙어있는 안내 LED등에는 'ASML'이라는 일반인들은 알기 힘든 4개의 철자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이날 삼성전자를 방문한 인물들은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ASML 경영이사회(Board of Management) 회장(CEO)과 헤라르트 클레이스테를레이(Gerard J. Kleisterlee)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 의장 등 10여명의 ASML 핵심 경영진들이었다.



장비 한대의 가격이 2000억원이 넘는 최첨단 극자외선(EUV) ASML의 노광장비./사진제공=ASML 홈페이지 캡쳐장비 한대의 가격이 2000억원이 넘는 최첨단 극자외선(EUV) ASML의 노광장비./사진제공=ASML 홈페이지 캡쳐


전세계 유일 EUV 장비업체 ASML 실적...6개월~1년 후 반도체 시장 바로미터
ASML은 반도체리소그래피(노광) 분야 시장 점유율 65%의 세계 1위 기업이다. 7나노 이하의 초미세공정을 할 수 있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리소그래피)를 생산하는 전세계 유일한 회사이기도 하다. 이들이 생산하는 EUV 장비는 1대당 2000억원 내외의 고가장비다.

당시 ASML 경영이사회 멤버들은 차세대 EUV 미래 투자를 위한 자금 집행을 위해서는 투자심의를 맡은 감독이사회를 설득해야 했고, 이를 위해 삼성전자 사업장을 찾은 것이다.

이후 ASML은 대대적인 투자를 해 삼성전자에 차세대 EUV 장비를 납품했고, 삼성전자는 2016년 이후 반도체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당시 3만원대(액면분할 후 가격) 주가는 6만원까지 치솟았었다.


이처럼 4년 전 ASML의 투자계획은 전세계 첨단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미래와도 직결됐다. 이 회사의 실적은 다른 반도체 업체들의 6개월에서 1년 이후의 실적을 가늠할 수 있는 선행지표다. 이 회사에 주문이 늘어나면, 향후 반도체 시장이 좋아질 것이라는 신호다.

보통 주문에서 납품까지 1년 가량이 소요되고, 납품 이후 제품생산까지의 안정화기간도 상당히 소요돼 이를 감안해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EUV 장비 주문에 나서기 때문이다.

반도체 주가 궁금하면…이 회사에 물어봐!
지난달 15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한 ASML은 3분기에도 실적 개선세는 이어갈 것이라는 희망적 견해를 밝혔다. 이는 내년 3분기 정도엔 반도체 경기가 좋을 것이라는 희망적 신호로 읽힌다.

피터 베닝크 CEO는 2분기 33억 2600만 유로(한화 약 4조 6657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분기보다 30% 가량 실적이 개선된 내용을 발표한 후 "3분기 매출도 36억~38억 유로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의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서도 "2020년이 성장의 해가 될 것이라고 밝힌 연초 전망에 변함이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1년 후의 시장을 미리 보여준 셈이다.

장비분야에서 ASML이 시장의 바로미터라고 하면 소재 부문에서는 웨이퍼 분야가 시장의 흐름을 보여주는 잣대다.

반도체 제조의 핵심 소재인 웨이퍼 시장은 일본 신에츠화학(信越化学)과 섬코(SUMCO)가 각각 32%와 25%의 시장을 차지할 만큼 일본 기업이 절대적이다. 뒤를 이어 대만의 글로벌웨이퍼즈가 17%, 독일의 실트로닉 13%, 한국의 SK실트론이 12% 가량을 나눠 갖고 있다.

모든 반도체 제조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들로부터 웨이퍼를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매출 추이가 반도체 생산 규모를 헤아릴 수 있는 가늠자다. 보통 웨이퍼가 생산 라인에 투입되며 그로부터 약 45일(한달반) 후에 칩이 패키징돼 나온다. 고객들에게 가는 시간까지를 감안하면 1~3개월 정도의 단기적인 시장은 웨이퍼 출하량에서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사진제공=국제반도체장비협회(SEMI)/사진제공=국제반도체장비협회(SEMI)
국제반도체장비협회(SEMI)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전세계 웨이퍼 출하량은 31억 5200만제곱인치로 1분기의 29억 2000만제곱인치에 비해 8% 가량 늘었다.

이는 지난 2018년 32억 5500제곱인치로 출하량 고점을 찍은 뒤 5분기 연속 하락추세에서 지난 1분기에 이어 두분기 연속 반등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1분기 이후 5분기만에 30억 제곱미터를 넘어선 것이어서 주목된다.

전세계 웨이퍼 시장 55% 차지 일본 신에츠, 섬코 실적은 반도체 단기 지표
다만 지난 2분기 전세계에 출하된 웨이퍼의 면적은 늘었으나, 대표 기업인 신에츠의 섬코의 실적이 떨어진 것이 이채롭다. 출하량이 늘어나면 실적이 개선되는 게 일반적인데 매출과 이익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공급불안을 우려한 선취매 물량으로 인해 재고가 넘치면서 현물시장이 제품가격이 떨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지난 12일 실적을 발표한 섬코의 반기매출(1~6월)은 직전 해의 1564억 8700만엔(이하 한화 약 1조 7420억원)에서 올해(1~6월) 1471억 4200만엔(약 1조 6380억원)으로 약 6% 줄었다. 경상이익도 지난해(1~6월) 327억 1900만엔(약 3642억원)에서 올해는 226억 5000만엔(약 2521억원)으로 30.8% 감소했고,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229억 7900만엔(약 2558억원)에서 168억 2100만엔(약 1873억원)으로 26.8% 떨어졌다.
/사진제공=섬코(SUMCO) 홈페이지/사진제공=섬코(SUMCO) 홈페이지
이는 고정거래선 가격이 안정을 보인데 반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현물시장에서의 가격이 하락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웨이퍼 사업을 포함한 신에츠화학공업의 실적(4~6월)도 지난해 3862억 1100만엔(약 4조 2993억원)에서 같은 기간 3593억 3900만엔(약 4조1억원)으로 약 7% 떨어졌고, 경상이익은 1089억 200만엔(약1조2123억원)에서 952억 3800만엔(약1조 602억원), 순이익은 840억 2800만엔(약 9354억원)에서 693억 1200만엔(약 7716억원)으로 각각 12.5%와 17.5% 떨어졌다.

이를 감안하면 롱텀으로 보면 6개월 이후의 반도체 시장은 ASML의 실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데 반해, 향후 1~3개월 이내 반도체 시장은 웨이퍼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침체가 예상된다.

탁승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본부장은 "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올 3분기와 4분기는 지난 2분기보다 좋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에 개선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컨센서스다"고 말했다.

세계 유일의 EUV 생산업체인 ASML의 3분기 실적 호전에 대한 기대와 신에츠와 섬코 등 웨이퍼 업체들의 실적 악화가 보여주는 세계 반도체 경기 전망이다.

/자료제공=일 라쿠텐증권/자료제공=일 라쿠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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