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금융제국 네이버

머니투데이 강기택 금융부장 2020.08.14 05:01
글자크기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을 때가 많다. 거꾸로 생각하면 규제가 없거나 규제를 피한다면 혁신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규제받는 자와 규제받지 않는 자가 경쟁하면 후자가 언제나 유리하다.



금융시장의 헤게모니를 놓고 은행을 위시한 금융기업과 빅테크의 한판 싸움이 벌어졌다. 금융기업들은 인터넷은행을 세우고 증권사를 인수하면서 정공법으로 치고 들어오는 카카오보다 ‘절묘’와 ‘교묘’ 사이에서 규제를 회피하는 네이버를 눈여겨본다.

금융당국이 혁신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깔아놓은 판은 네이버에 이롭다. 예컨대 금융위원회가 급여이체와 카드결제, 보험료, 공과금 납부 등을 할 수 있는 ‘종합지급결제사업자’를 둔다. 예금과 대출만 할 수 없는 준은행이다. 1호 사업자로 네이버가 꼽힌다.



네이버는 규제를 덜 받는 준은행 수준에서 멈출 생각은 없는 듯하다. 은행의 고유업무인 예금과 대출을 하기 위한 우회로를 찾았다.

‘미래에셋대우 CMA(자산관리계좌) 네이버통장’은 예금보장만 안 될 뿐 사실상 예금통장이다. 네이버의 핀테크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이 대출심사와 모집인을 맡아 미래에셋캐피탈이 파는 대출도 실은 ‘네이버대출’이다. 대출심사 위탁의 근거는 금융위원회의 ‘지정대리인’ 제도다. 네이버파이낸셜이 미래에셋캐피탈의 지정대리인 자격으로 대출업에 발을 내디뎠다.

월 1250만명인 네이버페이 결제고객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에셋대우 CMA계좌로 흡수될 것이다. 대출대상은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에게 그치지 않고 점차 넓어질 것이다. 이런 그림 없이 미래에셋 계열사들이 네이버와 제휴했을 리 없다.


네이버는 카드업 영역도 잠식할 채비를 끝냈다. 30만원 한도라고 하지만 금융당국이 후불결제의 길을 터줬다. 소비자들의 ‘편의’와 ‘요구’를 발판 삼아 후불결제 한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10월에 마이데이터 사업자로 선정되면 네이버는 더 막강해진다. 은행·증권·카드사들이 보유한 금융데이터는 네이버가 다 가져다 쓸 수 있지만 네이버는 네이버파이낸셜의 데이터만 내주면 된다. ‘내것은 안 주고 남의 것은 내것’처럼 쓰니 질 리 없는 게임이다.

전방위로 금융업에 뛰어들면서 네이버는 은행법, 여신전문금융업법 등 규제가 강력한 법은 다 피해갔다. 규제가 느슨한 전자금융업법만 적용받는다. 금융당국이 ‘동일기능, 동일규제’를 말했지만 다른 법으로 같은 규제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열거한 것에서 감지되듯 네이버의 전략은 ‘한발 걸치기’다. ‘경계’(警戒)를 하지 않도록 하면서 ‘경계’(境界)를 허무는 것이다. 카카오가 보이스톡을 할 수 있으면서도 문자메시지 서비스만 하면서 통신당국의 규제와 통신사의 견제를 돌파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망중립성 등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마다 SK텔레콤, KT 등 통신 대기업들과 싸우며 이들의 영역을 야금야금 먹어치운 노하우와 전투력은 금융분야에서 요긴하다.

네이버파이낸셜과 미래에셋대우, 미래에셋캐피탈이 어떤 배타적 계약을 했는지 모르나 그것과 무관하게 네이버와 손잡은 금융기업과 그렇지 않은 금융기업의 격차는 언젠가 터질 이슈다. 네이버가 더 많은 금융회사의 통장과 대출을 치우치지 않게 팔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네이버에 입점하는 금융기업이 많아질수록 네이버의 플랫폼 경쟁력은 높아진다.

한국 언론사들이 네이버 플랫폼에 종속돼 뉴스를 공급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했듯 금융기업들도 같은 운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기업들이 네이버의 뉴스스탠드처럼 뱅크스탠드, 카드스탠드, 캐피탈스탠드에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들어가는 걸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광화문]금융제국 네이버


핀테크를 육성하고 빅테크를 끌어들여 소비자 편익과 금융혁신을 도모한다는 명분에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규제받지 않는 자의 승자독식이 야기할 부작용엔 유의해야 한다. 금융당국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