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180조원 투자는 당초 예상됐던 투자 100조원을 2배 가까이 웃도는 규모였다. 삼성이 3년 동안 벌어들이는 영업이익 대부분을 재투자하겠다는 의미였다. 고용 계획도 기존에 세웠던 2만~2만5000명 채용보다 약 2배 많은 수준이었다. 달성 가능성에 물음표가 뒤따르는 게 당연했다.
지난 과정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뜻밖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이 삼성만이 아니라 전세계 유수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2년 전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슈퍼호황을 누렸던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반토막낸 뒤 올 들어서도 이렇다할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다.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는 현재진행형 난제다. 경영 구심점 역할을 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주요 전·현직 경영진마저 3년 반 이상 이어지는 사법 리스크에 여전히 온전한 행보를 보이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대내외 악재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약속을 지켜가는 것을 두고 "과연 삼성"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악 여건에서도 불확실성 돌파…4대 성장축 선제투자
이런 과감한 투자는 실적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시스템LSI(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매출이 총 8조1200억원을 기록, 반기 기준으로 처음 8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6조7900억원)보다 20% 증가한 수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11일 1조740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25만6000L)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수주 실적이 공시 기준 1조7887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실적(3083억원)의 6배에 달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0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QD(퀀텀닷) 개발에 13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2년 전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 바이오와 함께 4대 미래성장사업으로 꼽은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부문에서는 이 부회장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3개월 사이 2차례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등 경쟁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업 본분은 고용·투자"…삼성 위기극복 DNA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6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의 전장용 MLCC 생산 공장을 찾아 MLCC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역량강화를 돕는 스마트팩토리 지원 사업으로도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1070개사를 지원했다. 2022년까지 1000억원을 투입해 2500개사 지원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협력사와의 상생을 위해 2018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반도체 부문 우수 기업에 누적 기준으로 인센티브 1927억원을 지급한 것도 눈에 띈다.
전세계 경제가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마이너스 성장하는 상황에서도 삼성이 대내외 악재를 딛고 투자·고용 계획을 실행에 옮긴 배경은 이 부회장의 강한 의지라는 게 재계의 평가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에도 "기업의 본분은 고용 창출과 혁신 투자"라며 "2년 전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밝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위기 국면에서 더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결실을 맺어온 삼성 특유의 경영 DNA가 다시 한번 발휘되고 있다"며 "여러 논란이 있지만 우리 경제에 삼성이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