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은파', 유튜브도 장악한 힙한 언니들의 핫한 수다

이여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8.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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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방송캡처 사진출처=방송캡처


제대로 ‘청출어람’ 했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의 기세를 이어받아, 디지털 스핀오프 격인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의
인기 또한 뜨겁다.



‘매운맛’ 버전이라 불리는 유튜브 본방송은
누적 조회수 1000만을 돌파했고, ‘순한맛’인 지상파 버전까지 심야 예능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나 혼자 산다’에서 만들어진 관계성 서사를 그대로 이어, 기존의 시청자층을 끌어모은 것은 예상대로 성공적이었고 유튜브 방송용으로 구성된 편집점 또한 신선한 포인트로
다가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는 조지나(박나래)와 사만다(한혜진), 그리고
마리아(화사)가 있다. 이
세 명의 조합이 아니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여은파’. 개그우먼과 모델, 가수까지 각각의 영역에서 홀로 뛰던 이들은 어떻게
그런 완벽한 시너지를 내게 된 걸까.

‘여은파’의 발단은 박나래의 집. 그의 생일을 맞아 ‘80년대 글램룩’의 컨셉트로 의상을 차려입은 세 멤버는, 박나래의 드립에 의해 즉석에서 ‘조지나’, ‘사만다’, ‘마리아’를 만들어냈다. MBC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과 ‘싹쓰리’가 유행시킨 ‘부캐’와 같은 맥락. 제2의
이름을 얻은 이들은 제한적이었던 기존 예능에서의 역할과 이미지를 벗은 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막말’도 서슴지 않고, 행동은 더욱 자유분방하다. 먹고 싶은 만큼 먹고, 하고 싶은 대로 논다. 의도된 각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드립’과 ‘행동거지’들은 당연한
듯 ‘빅 웃음’을 유발하며
SNS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수많은 ‘짤’들을
생성해냈다.



각자 맡은 캐릭터는 생동감이 넘친다. 지금 가장 뜨거운 코미디언 답게, 조지나로 분한 박나래는 ‘여은파’를 앞에서 이끈다. 쉴
새 없이 ‘드립’을 치고,
야한 농담도 거리낌 없이 뱉는다. 한밤중 한혜진이 한강으로 이들을 데려가자, 박나래가 “흔들리는 차가 있는지 보라”는 화두를 던지고, 화사는 “습기
찬 차가 있으면 백방(?)이다”라고 받아치며 레전드 ‘썸네일’을 만들어냈다. 뜬금없이 “오늘 같은 날은 버드와이X”라며 대놓고 PPL을 자랑하며 돌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혜진과 화사가 박나래의
발언의 수위에 대해 지적하면, “이건~ 유튜브! 유튜브!”라며 매운맛을 아낌없이 뿌린다. 그러면서도 큰 손으로 잔칫상을 차려 친구들을 지속적으로 불러모으고, 한혜진과
화사의 중간다리 역할로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것도 박나래의 몫이다.

사진출처=방송캡처사진출처=방송캡처
작은 체구를 꽉 채우는 개성 강한
패션들은 조지나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 ‘고스룩’ ‘펑크룩’ 등 독특한 컨셉트에 맞춰 스스로를 한껏 치장하고, 유행보단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화장한다. 누군가를 의식하기보단 입고 뽐내는 행위 자체를 즐기며, 자신의 욕망에 당당하고 솔직한 박나래의 태도는 웃음과 함께 큰 해방감을 선사한다. 실제 모델이 직업인 한혜진이나 화려한 퍼포먼스 의상에 익숙한 화사가 “아무리
빡세게(?) 꾸며도, 박나래 표 조지나 패션을 이기지 못한다”는 건, 또 하나의 재미난 소스가 된다.


제일 키가 큰 사만다 한혜진은,
‘아무말’을 내뱉는 조지나에 맞선 최고의 ‘리액셔너’다. ‘츤데레’한 컨셉트에
맞게 시종일관 ‘틱틱’댈 뿐 아니라 조지나의 과감한 말과
행동, 의상을 한껏 놀리며 케미스트리를 선보인다. 이들의
극본 없는 ‘티키타카’를 보고 있자면, 육성으로 깔깔거리며 웃게 되는 게 당연지사. 묘하게 서로를 괴롭히는
것 같으면서도, 지극히 서로를 챙긴다는 점이 이들의 ‘티키타카’가 깔깔대는 웃음 포인트로 소비될 수 있는 이유다. 한혜진은 겉으로는
가장 세 보이는 맏언니지만, 시종일관 두 동생들에게 놀림당하기도, 은근
슬쩍 져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덕분에 그간 슈퍼모델 한혜진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매력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음원 차트를 시뜨겁게 달구며,
가요계에서는 소위 ‘센 언니로’ 통하는 화사도
이미 커리어가 ‘만렙’인 언니들 앞에서는 그저 귀여운 막내일
뿐이다. 자신의 장기를 살려 카리스마 있는 댄스를 선보이면 언니들에게
“잘한다, 잘한다”하고 어화둥둥 칭찬받고, 조용히 있는 듯하면서도 툭툭 던지는 촌철살인 멘트들은 재미를 유발한다. 박나래와
한혜진이 쉴 새 없이 떠드는 와중에도 꿋꿋이 고기가 구워지는 철판만 보고 있는다거나, 뭐든 잘 먹고
잘 따라하며 잘 웃는 모습들은 ‘엄마 미소’를 제대로 유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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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말과 행동들은, 이들이 ‘찐친’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특히
최근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던 ‘한혜진 병문안 파티’ 에피소드에서
이 장점은 여실히 발휘됐다. 급성 맹장염 수술로 집에서 요양중인 한혜진의 집에, 박나래와 화사는 기껏 위문한답시고 찾아가지만, 보란 듯이 곱창을
사 간다. 한혜진에게 “언제 다 낫냐?”고 물으면서도 계속 곱창에만 집중하자 한혜진은 “궁금하긴 한 거지?”라고 아픈 배를 겨우 부여잡고 웃는다. 죽만 먹는 한혜진 옆에서 ‘막창 먹방’에 열을 올리던 화사에게 박나래는 “그만 좀 X먹어”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화사는 태연하게 “저 사실 그날이에요”라고 맞받아친다. 이러한 솔직한 모습들이 실제로 친구네 집에 놀러
간 듯한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정겨움과 친숙함을 유발하는 것이다. 박나래가 매번 에피소드를 함께하는
한혜진에게 “징글징글하다”며 “저 언니랑 이제 거리두기 할 거야!”라고 말해도 웃음이 나고, 말도 안 되는 ‘콩글리시’로
대화를 걸어도 알아서 잘 받아치는 ‘현실 케미’는 이들의
가장 큰 무기. 어떤 룰이나 미션을 적용하지 않은 채, 그저
쉴 새 없이 먹고 아무 말을 떠드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힘인 것이다.

이영자가 여성 코미디언으로서 최초로 ‘연예대상’을 수상하기 전 까지만 해도,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철저히 남성 출연자들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렇기에
외모도, 직업도, 키도, 성격도
다른 세 여성이 연대하며 깔깔대는 모습은 최근의 사회 분위기를 대변하기도, 시청자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과 같은, 각종 미션과 룰을 통해 살아남는 남성 출연자들의 모습이나, ‘라디오스타’와 같이 독설을 날리는 패널들이 재미를 끌던 때는 지났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던 조지나와 사만다, 마리아가 모여 투닥거리기도,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자기 일처럼 공감하고 웃어주기도 하는 모습에 여성 시청자들은 단박에 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여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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