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규제개혁이 기업환경 개선의 시작이다

머니투데이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2020.08.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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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


경영학에서 흔히 인용되는 이론 가운데 '붉은 여왕 가설'이 있다. 이 이론은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엘리스'에서 엘리스가 붉은 여왕과 나무 아래를 달리는 장면에서 유래한다.



엘리스는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나무를 벗어나지 못하자 붉은 여왕에게 이유를 물어본다. 붉은 여왕은 "여기에서는 힘껏 달려야 제자리야. 나무를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2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라고 답한다.

이 일화는 경영학에서 경쟁기업보다 빠르게 발전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가설로 재탄생했다. 영원한 1등은 없고 생존을 위해서는 경쟁기업보다 몇 배는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 정부가 앞다퉈 과감한 규제개혁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이 대목과 이어진다. 자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더 빨리 달려 이길 수 있도록 짐을 덜어주는 것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규제 신설을 동결하고 '투 포 원 룰'(2 for 1 rule)을 도입해 규제 1개를 도입하면 기존 규제 2개를 폐지하도록 했다. 영국도 부처별로 할당된 규제비용을 강제로 감축해야 하는 '기업규제비용 감축목표제'를 도입해 기업 활동을 돕고 있다. 일본은 규제개혁과 지원을 통한 리쇼어링(해외기업의 본국 복귀) 정책으로 외국에 진출한 기업을 다시 자국으로 불러들인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외국의 상황과 거꾸로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가 정책수요자,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규제개혁 만족도를 보면 2018년 70점에서 2019년 67.9점으로 만족도가 오히려 하락했다. 국내로 유턴한 기업의 수도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적다.


정부가 추진 중이거나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을 보면 규제개혁에 대한 만족도가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인다. 정부가 입법을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대표적인 법안으로 꼽힌다. 특히 상법 개정안의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대주주 보유주식의 의결권 제한 강화 등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갈라파고스 규제'다.

다중대표소송의 경우 우리와 비슷한 법체계를 가진 대륙법 국가에서 도입한 사례가 일본뿐이다. 일본마저도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소송제기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시행하고 있지 않다.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나라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일감 몰아주기 대상 확대, 지주회사 의무지분율 강화 등이 모두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기업 집단 규제 강화 정책이다. 외국의 경쟁당국은 지주회사 전환이나 순환출자 여부 같은 대기업 지배구조에 관심이 없다.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담합, 불공정거래행위 등 시장 경쟁을 해치는 위법행위만 규제한다.

상황이 이런데 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의 상황은 정부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다. 21대 국회 회기 시작 이후 한달 동안 발의된 법안 1126건 중 규제를 신설·강화하는 법안(377개)이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148개)의 2.5배에 달한다. 내용 면에서도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보다 규제 강도가 더한 의원입법안이 많다.

결국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 기업에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족쇄를 채우고 남들보다 2배 더 빨리 뛰라고 재촉하는 상황인 셈이다.

근시안적인 단기성과에 치중한 '갈라파고스 규제' 양산은 필연적으로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이는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경기침체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전세계가 자국 기업의 짐을 덜고 경쟁력을 키우는 데 혈안이다. '붉은 여왕'의 일침을 되새길 때다. 기업환경 개선의 출발점이 '갈라파고스 규제'를 과감하게 혁파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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