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금지냐 재개냐…'국민청원만 3000개' 청와대에 쏠린 눈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20.08.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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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오는 9월15일 '6개월 공매도금지' 종료를 앞두고 금융당국의 고민이 깊어진다. 공매도가 재개되면 오랜만에 상승세를 탄 증시가 주저앉을 수 있다는 개인투자자들의 걱정이 커지면서다.

지난 3~4월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폭락장에도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의 직접투자 열풍은 지수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처음으로 개인이 주도하는 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개인투자자들은 국내증시에 '큰 손'으로 떠올랐다.



공매도 금지는 개미가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때문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공매도가 재개되면 '주식을 다 빼야된다'는 엑소더스(Exodus·대탈출) 움직임이 감지된다.

공매도(空賣渡)란 타인으로부터 주식을 빌려 시장에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이를 되사 차익을 실현하는 투자법이다. 주가가 떨어질때 수익이 나기 때문에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공매도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주가가 하락세일 때는 공매도가 급증하면서 추가 하락을 부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시장 혼란이 이미 예고된만큼 투자자들의 눈은 금융당국을 너머 'BH'(Blue House·청와대)를 향한다. 이미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매도'를 키워드로 한 국민청원만 3000개가 넘는다. 대부분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공매도 처벌강화에 더해 아예 공매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좁히기 어려운 간극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임시 금융위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금융위는 이날 6개월간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 시장 전체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 금지 등 시장안정조치를 발표했다. 2020.3.13/뉴스1(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임시 금융위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금융위는 이날 6개월간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 시장 전체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 금지 등 시장안정조치를 발표했다. 2020.3.13/뉴스1
상황을 보면 공매도 금지 연장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증시 활황에 굳이 변수를 만들 필요가 없다. 공매도 재개가 주식시장에 밀려든 개인 자금을 대거 유출시키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금융당국이 선뜻 공매도 재개를 선택하기 어려워진 이유다.


하지만 장기간 공매도가 중단되면서 기업실적과 주가가 지나치게 큰 괴리율을 보이며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신용융자를 통해 주가상승에 배팅할 수 있듯이 공매도도 정반대의 투자전략수단으로 허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양측이 팽팽한 논쟁을 거듭하는 가운데 금융투자업계 뿐만 아니라 학계와 금융당국도 "결국 변수는 BH에 있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공매도에 대해 서로간 입장 조율이 쉽지 않은 만큼 정치적·정무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전망이다.

◇BH를 주목하는 이유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연설을 하고 있다. 2020.7.16/뉴스1(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연설을 하고 있다. 2020.7.16/뉴스1
금융당국이 아닌 BH, 곧 문재인 대통령을 주목하는 이유는 학습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금융세제 개편안이 대폭 수정되는 과정이 단적인 예다.

지난 6월25일 정부가 발표한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방향'에 투자자들과 업계의 불만이 쏟아지자 문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달 17일 문 대통령은 "이번 개편안은 개인투자자들의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며 사실상 개편안을 대폭 수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로부터 5일후 당초안보다 세제혜택의 범위와 내용을 크게 확대한 세법개정안이 발표됐다.

문 대통령이 직접 개인투자자 지키기에 나섰던 선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적잖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동학개미가 이슈가 되면서 최근 (BH) 기류도 좀 바뀐 분위기"라며 "개인들이 공매도에 대한 불만히 가장 많다. 어떻게든 (공매도를) 손을 봐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반면 오히려 정치적 결정에 따른 포퓰리즘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앞장서서 주식시장 버블을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며 "거품이 너무 커지기 전에 공매도로 한번씩 터뜨려줘야 한다. 개인투자자들이 싫어한다고 경제적으로 타당한 정책적 판단을 뒤집어 엎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다가오는 결정의 시간
공매도 금지냐 재개냐…'국민청원만 3000개' 청와대에 쏠린 눈
금융위는 모든 방안을 열어두고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오는 13일 개최하는 공매도 관련 토론회도 그 일환이다. 토론회는 학계, 업계, 투자자 등 각 분야별 다양한 패널로 구성돼 바람직한 규제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세계시장에서 기준으로 통용되는 규범)의 잣대로 보면 금지 명분이 약하다. 각 국가별로 공매도 규제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주요 선진국들은 공매도 금지조치를 아예 시행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영국·독일·일본은 코로나19 폭락장에도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았다. 유럽의 그리스·오스트리아·스페인·벨기에·프랑스·이탈리아 등 EU(유럽연합) 6개국은 지난 3월19일을 전후해 두달 간 전(全)종목에 대한 공매도 금지를 시행했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금융위 공무원들은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당시 외환정책을 잘못 시행했기 때문에 사실상 (IMF의) 신탁통치를 받았다는 트라우마가 있다"며 "대외적인 신인도가 떨어지면 자신들이 죽는다는 생각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중요시 여기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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